더불어민주당이 내년도 예산안에서 윤석열 정부가 6조5000억원 규모로 편성한 공적개발원조(ODA) 예산 중 9000억원을 감액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 원내 지도부 관계자는 8일 “역대급 세수 결손 상황에서 부산 엑스포 유치도 실패한 만큼 ODA 예산은 삭감하는 것이 맞는다고 보고 여당과 협의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은 ODA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바뀐 세계 최초·유일 사례로 꼽힌다. 정치권에서는 “문재인 정부서 ODA 확대 방침을 밝혔는데, 정권 바뀌니 반대하나” “‘이재명표 예산’ 증액을 위해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의 역할을 저버리겠다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앞서 정부는 내년도 ODA 예산을 올해(4조5000억원)보다 2조원 증액한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주요 선진국보다 ODA 예산 규모가 크지 않다는 점도 고려됐다. 실제로 2022년 기준 한국의 국민총소득 대비 ODA 예산 비율(0.17%)은 OECD 29개 공여국 가운데 뒤에서 셋째로, 평균치(0.36%)의 절반 수준이었다. 국민 1인당 ODA 액수도 54달러(약 7만원)로 뒤에서 다섯째, 평균치(190달러)의 4분의 1 수준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올해와 내년도 ODA 예산을 크게 늘려 내년도 국민총소득 대비 ODA 예산 비율은 평균치에 근접한 0.3%가 될 전망이었는데, 민주당이 이를 가로막고 나선 것이다.
민주당은 “총지출 증가율이 2.8%인데 반해 ODA 예산만 40% 이상 무턱대고 늘리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최근 당 회의에서 “수혜 대상국의 준비가 안 돼 있는 점을 감안해 ODA 예산을 9000억원 이상 삭감할 예정”이라고 했다. 강훈식 민주당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는 지난달 예산조정 소위원회에서 “나라가 어렵다고 건전 재정 하자면서 밖에다 돈 쓰는 것, 우리나라 국민은 굶어 죽어 가는데 해외에다가 몇 천억씩을 더 쓰자는 것이 제정신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그러면서 지역사랑상품권 예산 7000억원, 청년 미래 세대 예산 5600억원 증액 등을 주장하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표가 될 만한 곳에 돈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내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 수도권 중진 의원은 “ODA 예산으로 편성된 돈은 대부분 한국 기업이 개발 사업을 따내면서 우회적으로 기업에 돈을 푸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며 “불필요한 ODA 예산 삭감은 해야겠지만 ‘우리도 힘든데 다른 나라에 돈을 푼다’는 관점은 근시안적”이라고 했다. 험지에서 근무했던 한 외교관은 본지에 “개도국 상대로는 정무·경제·공공 외교·영사 업무 모두 개발 협력으로 가능한데 이를 ‘퍼주기’ 예산 정도로 착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ODA 예산 삭감은 문재인 정부 국정 기조, 과거 이재명 대표의 발언과도 배치된다. 문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이던 지난해 5월 ‘제15차 세계산림총회 개회식’에서 “한국은 2030년까지 ODA 규모를 2배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시 예산 규모는 4조425억원 수준이었다. 이재명 대표 역시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국제적 협력과 공적개발원조 확대를 통해 한반도 평화와 동아시아 협력을 주도하는 글로벌 선도 국가로서 위상을 확보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대표는 2021년 11월 한 대학 강연에서도 “우리가 혜택을 받아 왔으므로 ODA에 대한 관심을 증대해야 한다”며 당시 정치권의 (코로나) 재난지원금 충당을 위한 ODA 예산 삭감 주장에 대해서는 “옳지 않다”고 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지난 7일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 총지출액에 국회 순증액은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예산 총지출액이 고정된 상황에서 민주당이 ‘이재명표 예산’ 증액을 하려면 ODA 예산 삭감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협의에 따라 9000억원보다는 삭감액이 줄어들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