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러시아를 전격 방문했다. 코로나 19 이후 최초로 정상외교를 재개하면서 그 대상으로 러시아를 택한 것이다. 지난 9월 10일 오후 전용열차 편으로 평양을 출발한 김정은은 12일 오전 두만강 북·러 국경을 넘어 러시아 경내로 진입했고, 이날 오전 러시아 하산역에서는 김정은을 위한 환영식이 열렸다. 지난 7월 27일 북한이 ‘전승절’로 부르는 ‘정전협정체결일’에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평양을 전격 방문해 김정은과 만난 데 이어, 불과 두 달 만에 김정은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육중한 몸을 움직인 것이다. 김정은과 푸틴 간의 만남은 지난 2019년 4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처음 만난 이후 4년5개월 만이다.

탈북 고위 외교관 출신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러시아 국방장관이 북한을 찾은 지 두 달 만의 정상회담”이라며 “결국 러시아 국방장관이 김정은과 만났을 때 초보적으로 합의된 무기거래를 두 정상이 굳히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북·러 간의 무기거래는 북한의 군사기술이 획기적으로 강화되는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음은 김정은이 러시아에 도착한 9월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태영호 의원과의 일문일답.

- 김정은이 코로나 이후 처음 정상외교를 재개했다. 배경은 무엇인가. "무기거래다. 최근 북한과 러시아 간의 전통적 관계가 완전히 변했다. 지금까지는 북한이 러시아에 매달리고 러시아는 뒤로 처진 상황이었다. 북한이 '식량을 달라' '인력을 받아달라' '군사지원을 해달라' '빚을 좀 탕감해달라'고 하면, 러시아 입장에서는 못사는 동생이 자꾸 찾아오니까 시끄러워하는 분위기였다. 최근에는 상황이 바뀌어 러시아가 더 적극적이다."

- 북·러 관계가 극적으로 변한 까닭은. "정상회담이 두 달 만에 급조된 것은 러시아의 절박함과 필요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푸틴이 흔들리고 있다. 바그너그룹 용병반란이 푸틴의 철권통치 아래서 일어났다는 것에서 러시아 국민들의 전쟁피로감, 군부 내의 반발 등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러시아군 장성들이 공개적으로 푸틴에 대한 비판을 했다고 들었다. 지난 시기에는 없던 일이다. 푸틴으로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빨리 마무리하든지, 아니면 뭔가 화끈한 것을 보여줘야 한다."

- 그래서 푸틴이 택한 것이 북한인가. "푸틴이 우크라이나에 전략무기를 쓸 수는 없지 않나. 재래식 전쟁이라 현 시점에서 판세를 뒤집을 수 있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40~50년 전인 1970~1980년대에 생산했던 포탄, 방사포 이런 종류의 무기밖에 없다. 러시아는 그간 전략적인 전쟁만을 준비하다 보니 전략핵무기, 핵폭격기, 핵잠수함 등은 많지만 이런 '근육'들을 쓸 수가 없다. 결국 낡은 재래식 무기만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재래식 무기의 생산을 보장하는 우방은 중국이 있지만, 중국은 한발 빼면서 못하겠다고 한다. 결국 재래식 무기를 줄 수 있는 러시아의 남은 우방은 북한이 유일하다."

- 북한이 구형 무기를 러시아에 주면 무슨 문제가 생기나. "북한이 러시아에 줄 수 있는 것은 낡은 무기지만, 이에 대한 대가로 푸틴이 김정은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최첨단 무기다. 군사정찰위성은 북한이 최근 계속 실패했다. 푸틴이 조그만 '팁'이라도 주면 금방 성공할 것이다. 북한이 올해 들어와 성공하지 못한 고체연료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역시 러시아에는 일도 아니다. 북한이 3000t급 전술핵잠수함을 진수했는데, 구조적으로 봤을 때 문제가 많다. 이것도 러시아가 좀 도와준다면 김정은은 금방 극복할 수 있다. 주고받는 등가관계에서 생각한다면 김정은으로서는 러시아와 회담으로 얻는 성과가 대단히 크다."

- 북한이 러시아에 주는 무기가 신뢰성이 있을까. "물론 러시아가 생산하면 더 잘 만들 것이다. 하지만 북한 무기는 러시아에 비해 저렴하다. 푸틴의 입장에서는 같은 예산을 가지고 더 많이, 더 빨리 살 수 있다. 북한의 창고에 이미 비축돼 있는 무기를 열차로 가져와 쓰면 된다. 재래식 무기라는 것은 쉽게 말해 다량으로 소모하는 소모품이다. 푸틴 입장에서 무기를 빠르고 대량으로 가져올 수 있는 곳은 북한뿐이다."

- 북·러 간의 급속한 밀착에 한국이 빌미를 제공한 것 아닌가. "우크라이나에 직접적인 무기제공국은 유럽 국가들이다. 푸틴이 진짜 제재를 하려면 유럽과 모든 경제관계를 끊을 것이다. 이는 푸틴도 유럽도 견딜 수 없는 상황이다. 푸틴은 그간 유럽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해도 슬며시 눈을 감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왜 윤석열 정부가 한·미·일 관계를 강화해 신냉전 구도를 가져오느냐'고 문제를 제기한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선제적으로 관계를 구축하지 않으면 우리가 오히려 당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대응을 잘하고 있다. 우리가 중립을 지켰다한들 푸틴이 김정은과 손을 안 잡았겠느냐. 푸틴은 지금 김정은한테 의지할 수밖에 없다."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지난 9월 13일(현지시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보스토치니 우주기지 로켓 조립 격납고를 둘러보고 있다. photo 뉴시스

-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간 협력이 재개될 수 있다고 보나. "정황상 특징들만 살펴보자. 러시아 국방장관이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 북한으로 날아갔다. 그만큼 긴박하다는 얘기다. 코로나19 때는 러시아가 평양에 있는 대사와 참사 등 대사관 직원 5명인가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사관을 비우다시피 했었다. 러시아 국방장관이 다녀가자마자 러시아가 평양대사관에 20여명을 급파했다고 한다. 이후 북한과 러시아 사이에 정상회담이 급속히 추진됐다."

- 북·러 정상회담에 미국의 반발이 심상치 않다. "지금까지 북한과 러시아가 정상회담을 하든 무엇을 하든 미국이 지금과 같은 수위의 반발을 한 적이 없다. 김정은이 러시아 방문을 준비하는 자료는 '뉴욕타임스(NYT)'에서 얻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오직 정보기관만이 얻을 수 있는 첩보다. 미국은 이를 언론에 흘림으로써 나름 북·러 정상회담을 막으려 최선을 다한 것이다. 어제는 미국이 '무기거래를 한다면 큰 실수가 될 것'이라며 재차 러시아에 경고했다."

- 미국의 경고가 양측에 먹혀들까.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전면적 확전으로 가지 않았다. 관리형으로 갔다. 만일 여기에 북한이란 변수가 끼어들어서 푸틴이 전세를 변화시키는 조치를 취한다면 미국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담긴 것이다. 미국 역시 우크라이나에 주는 무기지원을 대폭 확대해서 러시아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다. 두 번째 메시지는 우리와 관련됐다. 김정은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미국으로서는 그림이 딱 나온다. 결국 미국은 푸틴에게 '인력파견'이나 '식량지원' 정도는 눈감겠지만, 역내 안보를 흔들 수 있는 정찰위성, 핵추진잠수함, 고체연료 ICBM 기술이라든지 이런 것을 북한에 준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암묵적으로 형성된 일종의 '레드라인'을 넘지 말라는 경고다."

-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무기거래가 일어난다면 우리한테는 대단한 비상상황이다. 북한의 군사기술이 획기적으로 강화되는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다. 만약 러시아가 군사기술을 제공해서 북한의 핵능력이 강화되면 우리는 ‘캠프데이비드’에서 일어난 수준 이상의 합의를 미국과 또다시 해야 할 것이다. 러시아의 첨단기술이 북한에 넘어가면 우리도 결단을 해야 한다.”

- 한국이 러시아에 쓸 카드가 있을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지금까지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인도적 지원만을 해왔다. 만약 러시아가 북한을 지원해서 한국의 급소를 찌르려고 한다면, 우리도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 그동안 견지했던 무기수출금지 원칙을 허물 수밖에 없다."

- 방러 직전, 북한이 전술핵(核)잠수함 공개 때 딸 김주애 대신 최선희 외무상을 등장시킨 까닭은. "핵잠수함이란 무기를 전 세계에 공개하면서 북한 외무상을 등장시켰다. 이는 이제부터 적극적인 외교행보를 할 것이라는 메시지다. 핵잠수함까지 가진 핵보유국의 지위를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한 외교를 하겠다는 뜻이다. 그 첫 관문이 러시아다. 그래서 최선희 외무상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다."

- 북·러 정상회담을 두고 중국은 조금 관망하는 분위기다. "인도 'G20정상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리창(李强) 중국 총리와 만났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중국을 러시아와 다르게 대할 것이란 '투트랙 전략'을 명백히 보여줬다. 러시아와 중국이 다 있는 다자무대에서 러시아에는 '경고'했지만, 중국에는 '역할'을 주문했다. 러시아와 북한과의 무기거래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중국과의 문제는 장기적인 안보와 공급망 문제다. 중국도 경제적 문제가 있어 한·미·일 결속에 반발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중국도 한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려 하지 않을 것이다. G20 이후에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이 '시진핑 방한'을 거론하지 않았나. 국가안보실장이 그 정도 얘기했다면 중국과도 논의가 됐다는 것이다."

- '9·9절(북한 정권수립일)' 행사 때도 중국 측 사절단의 격이 생각보다 높지는 않았다. "중국도 수위조절 중이다. 더 중요한 것은 '7·27(정전협정체결일)' 행사였다. 정전협정은 그간 북한과 중국이 주인공이었고, 러시아는 들러리였다. 정상대로 하면 중국에서 노병(老兵)대표단이 북한에 가고 동맹관계를 보여야 하는데, 이번에는 러시아 국방장관이 군복을 입고 평양에 갔고, 중국은 사회복을 입은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리훙중)이 갔다. 중국도 북한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어떻게 하면 한국을 자기 쪽으로 끌어들여 실리를 취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중이다. 판이 재밌게 돌아간다."

- 김정은의 방러 다음 행보는 무엇일까. "중국으로 갈 것이다. 북한 외교는 항상 반복된다. 큰 외교적 협상은 미국이나 한국과 하지만, 큰 딜을 하기 전에 중국이나 러시아와 먼저 정상회담을 가진다.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을 하기 전에도 김정은이 중국에 가서 시진핑과 만났다.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먼저 선점하기 위한 것이다. '나한테 큰 뒷배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친미노선으로 가는 것은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내가 힘들어지면 좀 도와달라는 것이다. 북한의 전통적 외교로, 북한에서는 이를 '전략적 소통'이라고 한다."

- 김정은이 중국에 간다면 시진핑이 환영할까. “당연히 흔쾌히 받는다. 중국은 한국이나 미국에 자신이 김정은에게 대단히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어 한다. ‘큰 플레이어’라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김정은이 중국에 간다고 하면 당연히 박수치고 환영할 것이다. 김정은이 중국을 찾는다면, 중국 역시 미국을 상대로 일종의 ‘기브 앤 테이크’ 외교를 할 수 있다. 이게 바로 외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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