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다가오면 특별히 관심몰이를 하는 지역들이 있다. 거물급 정치인이 출마를 준비하거나 기존 현역 의원의 퇴출 등으로 공석이 생긴 지역들이다. 또 정치색이 짙은 영호남 지역에서 치열한 당내 경선이 예상되는 곳들도 주목받기 마련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현재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는 지역 중 하나는 경북 경산이다. TK(대구·경북) 대표 지역인 대구 수성구와 맞닿아 있고 단 한 명의 국회의원만 당선되기 때문에 경선 단계에서부터 늘 혈전이 일어나는 지역구이다. 보수 성향이 짙은 지역이지만 과거에는 야당색이 강해 ‘야로 지역’으로 불리기도 했다. 특히 이번에는 ‘친박계 좌장’으로 평가받는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정계 복귀 행보를 보이면서 지역 정가는 벌써부터 긴장 속에 달아오르고 있다. 실제 최근 기자가 돌아본 경산에선 최 전 부총리 등판설과 함께 총선 출마 예정자들에 대한 얘기가 한창이었다.
경산은 1988년 제13대 총선부터 제16대까지 네 번의 선거에서 모두 초선의원이 당선된 특이한 정치 이력을 갖고 있다. 그만큼 당내 경선 자체가 치열했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지역에서 최 전 부총리는 17대 국회의원 당선 이후 내리 4선을 한 유일한 정치인이다. 친박계 좌장으로 불리며 ‘박근혜 후광’을 받은 덕분이라는 얘기가 있지만 실제 지역에선 최 전 부총리가 지역 예산을 많이 끌어와 눈에 확연히 보이는 SOC 사업을 대거 성공시키며 민심을 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최 전 부총리가 4선을 지내며 확 달라진 경산을 두고 ‘최경환의 도시’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박근혜 정부 ‘국정 농단’ 사건에 연루돼 복역해온 최 전 부총리는 올해 대통령 신년 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이와 함께 그의 내년 총선 출마를 점치는 관측이 강하게 대두됐다. 이에 부응하듯 최 전 부총리는 지난 6월 30일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이준석 전 대표 등 국민의힘 인사들과 만나며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내년 총선을 겨냥한 ‘보수대통합’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굵직한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며 사실상 정계 복귀 의사를 밝힌 셈이다.
“최경환 키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산 지역 내에서도 그의 정계 복귀를 암시하는 여러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기자가 경산에서 만난 한 지역 정가 관계자는 “시·도의원 같은 ‘최경환 키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며 “최경환 헤게모니가 다시 시작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산은 여전히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정서가 있다”며 “최 전 부총리는 박정희, 박근혜 후광으로 4선까지 하면서 눈에 보이는 일을 많이 했다. 그래서 시민들 사이에서는 일 많이 한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있고, 최 전 부총리에 대한 향수도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최 전 부총리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오세혁 전 경북도의원은 주간조선과 통화에서 “최 전 부총리는 요즘 서울에 머무르면서 과거 청와대 쪽 인사 등 지인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걸로 알고 있다. 경산에는 한두 달에 한 번씩 내려와서 지역민들을 만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다만 그는 최 전 부총리의 내년 총선 출마와 관련해서는 “아직 총선 출마를 언급하기는 조심스럽다”면서도 “최 전 부총리의 예전 지역사무실에는 측근들이 상주하면서 지역과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 전 부총리의 정계 복귀 움직임에 긴장하는 것은 당연히 현역의원 쪽이다. 지역 정가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 과정에서 경산 시장 후보를 놓고 최 전 부총리 측 인물과 현역인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이 미는 인물이 맞붙어 세력이 명확히 갈렸다고 한다. 이런 구원까지 있는 상황에서 최 전 부총리의 정계 복귀는 현역인 윤 의원에게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지역 정가에서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윤 의원의 지지를 얻으며 당선된 조현일 경산시장이 윤 의원 측의 대표적 인물로 알려졌다. 때문에 일각에선 현역 시장이 돕는 만큼 윤 의원의 재선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도 있다. 윤두현 의원 지역사무실 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윤 의원께서 특별한 국회 일정이 없으시면 주말마다 지역에 내려와서 의정활동을 하고 계신다”며 “지역 행사나 일정을 가리지 않고 다 참여하시려고 노력하고, 만나자고 하는 사람들도 마다하지 않고 다 만난다”라고 말했다. 특히 “지역 내 AI와 ICT 기반 시설 확충을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면서 “경산 지역에 젊은 인재들이 많이 유입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내년 총선 전망과 관련해서는 “현재 시장님과 윤 의원님이 마음이 잘 맞는다”며 “총선에서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전망했다.
현역 윤두현 vs 용산 조지연, 누가 대항마?
지역 정가에선 지난 총선 당내 경선에서 윤 의원과 붙었던 조지연 현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이 의외의 복병이 될 거란 전망도 나온다. 1987년생인 조 행정관은 경산에서 태어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지역 내 젊은 정치인이다. 2013년부터 청와대 대변인실에서 일하다 자유한국당 부대변인, 미래통합당 부대변인 등을 거쳐 윤석열 당선인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도 활약했다. 조 행정관을 잘 안다는 한 경산 시민은 “조 행정관은 어렸을 때부터 정치에 꿈이 있었다”면서 패기 있는 젊은 인재로 평가했다.
지난 경선에서 윤 의원과 조 행정관은 불과 3.8점 차이로 승부가 갈린 바 있다. 윤 의원은 당시 61.9점을 받았고, 조 행정관은 ‘청년+신인’ 가산점 20점을 받아 58.1점을 획득했다. 가산점이 없었더라면 윤 의원이 절대적으로 유리했던 경선이었지만 내년 총선에선 조 행정관이 윤 대통령 라인으로 분류되고 있는 만큼 윤심(尹心)이 얼마나 작용하느냐가 관전 포인트다. 청와대 내 일부 비서관급 인사들이 올 하반기 대거 총선 출사표를 던질 거라는 말도 나돌고 있어 벌써 지역 정가에선 정부 여당이 최 전 부총리의 대항마로 윤 의원과 조 행정관을 저울질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2030은 ‘국힘’ vs 5060은 ‘최경환’
그렇다면 지역 민심은 어떨까. 기자가 만난 경산 시민들의 정서는 정확히 둘로 나뉘는 분위기였다. 젊은 세대는 대부분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을 선호했고, 중장년층 이상 세대들은 ‘최경환’을 그리워했다. 경산시 중방동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헤어디자이너 20대 유모씨는 “저는 정치를 잘 모르는데, 제 친구들은 다 국민의힘 얘기만 한다”며 “제 주변엔 그냥 국민의힘”이라고 말했다. 경산 출신 30대 김모씨 역시 “경산에서는 국민의힘 공천받는 사람이 (국회의원으로) 될 것”이라며 “총선에서 민주당은 어렵고, 최근에 시의원은 좀 (민주당에서)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 전 부총리가 무소속으로 나와도 국민의힘 공천 받는 사람이 될 거 같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중장년층들의 생각은 달랐다. 경산시 하양읍에 사는 한 50대 여성은 “최경환 부총리님이 또 (국회의원 선거에) 나오면 저는 찍을 거예요”라며 “(최 전 부총리가 경산) 지역에서 한 일이 정말 많다”고 강조했다. 이 여성은 최 전 부총리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것과 관련해서는 “그거 아무 상관없어요. 그래도 전 최 부총리님 찍어요”라고 말했다. 경산시 하양읍에서 30년간 백반집을 운영한 한 60대 여성도 “최경환이 나오면 찍어 줘야지. (그동안) 잘했잖아”라며 확실한 지지 의사를 내비쳤다.
최근의 지역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최 전 부총리의 입지가 여전히 탄탄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경북매일신문이 의뢰하고 여론조사 전문기관 ㈜에브리씨앤알이 지난 6월 17일부터 18일까지 2일간 경북 경산시 만18세 이상 유권자 8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제22대 총선 관련 여론조사에서 최 전 부총리는 37.9%를 얻으며 19.6%를 받은 윤 의원을 오차범위 이상으로 따돌렸다. 조 행정관은 4.9%에 그쳤고, ‘지지후보 없음’은 23.9%으로 나타났다. 이 여론조사는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한 무선 100% ARS전화조사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응답률은 5.0%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5%p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한 경산 지역 원로기자는 “지역 내 정치권을 보면 편가르기식 다툼이 자주 일어나고 있는데, 최경환 의원 시절에는 그런 일이 거의 없었다”며 “최 전 부총리가 통합 정치 스타일이라서 지역 정가에서 큰 잡음이 없었던 것 같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변화 중인 경산 유권자
경산은 확실히 국민의힘이냐 최경환이냐로 총선 구도가 정리되는 분위기다. 다만 지난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정당득표율 27.18%를 기록한 것이 또 다른 변수가 될지 주시하는 쪽도 있다. 당시 민주당이 의외로 선전하며 ‘이제 경산도 완강한 보수 성향의 지역으로만 분류하기가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에서 내년에도 민주당 후보 출마가 확실시되고 있어 결국 부동층 유권자 30%의 민심이 어떻게 움직일지가 최종 승부를 가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 총선에선 현역 윤 의원이 소속됐던 미래통합당이 63.75%를 얻은 바 있다.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힘 후보와 최 전 부총리가 이를 나눠 가지게 된다면 민주당 후보의 득표율과 비등비등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지역의 진보성향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선 “더불어민주당 출신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보수의 심장’이라는 대구 수성구에서 3수 만에 깃발을 꽂은 사례를 보면, 경산도 이변이 없을 거라는 법은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경산시 인구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외부 유입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뜻이고, 유권자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래도 국민의힘’을 외치는 젊은 보수 유권층과 최경환 향수를 잊지 못하는 중장년층, 그리고 새롭게 경산에 유입되는 유권자들. 8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내년 총선을 준비하는 출마자들이 경산 유권자들을 어떻게 파고들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