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선 직후부터 매주 주말마다 서울에서 대규모 반정부 집회를 주도하는 한 시민단체의 출범 및 운영에 종북 성향 단체에서 활동했던 인사들이 관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진보진영에서도 이들 인사의 면면을 두고 이 시민단체가 여론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는 지난 1~2월 방첩당국이 민주노총 압수수색 과정에서 반정부 투쟁 선동 지시가 담긴 북한 지령문을 다수 발견한 사실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시민단체는 해당 북한 지령문에 적시된 투쟁 구호를 집회에서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논란이 일자 “북한 지령문 발견 사실은 가짜뉴스”라며 “투쟁 구호는 우리가 직접 만들어 쓰던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종북 논란 ‘황선’이 발대식 축사
지난 1~2월 국가정보원과 경찰청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민주노총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북한 지령문과 충성맹세문을 발견했다. 북한 지령문에는 ‘국민이 죽어간다’ ‘퇴진이 추모다’ ‘이게 나라냐’ 등 구체적인 투쟁 구호까지 적시하며 반정부 투쟁을 선동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구호들은 시민단체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이 집회에서 줄곧 사용하던 것으로 촛불행동 측은 압수수색 결과가 보도된 이후 “이 구호는 우리가 직접 만들어 사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눈여겨볼 점은 촛불행동 측 구성 인사의 면면이다. 촛불행동 측의 현 집행부는 물론 초창기 출범 과정에 과거 종북 성향 단체에서 활동했던 NL(National Liberation·민족해방) 계열의 주사파(주체사상을 이념으로 삼은 운동세력) 인사들이 관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촛불행동은 주말마다 앞서의 구호를 비롯해 ‘김건희 특검도입’ ‘윤석열 대통령 퇴진’ ‘검찰 독재 타도’ ‘친일굴욕외교 규탄’ 등을 외치며 반정부 집회를 열고 있다. 2016년 박근혜 정부 당시의 촛불항쟁을 계승해 적폐청산·사회대개혁을 이뤄내자는 취지다. 이들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으로 적게는 1만여명, 많게는 10만여명의 시민들이 올라와 참여한다.
외견상 촛불행동은 일종의 연대기구로서 여러 시민단체, 유튜버, 회원 등이 교류하며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촛불행동을 이끄는 건 ‘촛불전진’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촛불행동은 2021년 9월 ‘검언개혁 촛불행동연대’로 발족하여 온라인 집회만 이어오다 지난 대선 직후 지금의 ‘촛불행동’으로 개명해 운영되고 있다. 촛불전진은 당시 운영위원회 회의를 통해 이 검언개혁 촛불행동연대의 초기 활동 내용의 대부분을 결정했다. 촛불전진, 촛불행동 집행부와 발기인 명단에는 공통된 인사도 더러 있다. 촛불전진 측은 “촛불행동이 발족할 때부터 가입단체로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두 조직의 관계를 잘 알고 있는 정치권 한 관계자는 “둘은 별개 조직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핵심 조직인 ‘촛불전진’이 대중조직인 ‘촛불행동’을 이끄는 식”이라고 말했다.
촛불전진은 촛불행동 발족보다 앞선 2021년 4월 110명이 참여한 발기인대회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는데, 여기에는 과거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종북 논란을 일으킨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당시 축사에 나섰던 황선씨가 대표적이다. 황씨는 1998년 한국대학 총학생회연합(한총련) 대표로 평양에서 열린 ‘8·15 통일 대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정부 승인 없이 방북했다가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및 회합·통신 혐의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2014년엔 재미동포 신은미씨와 통일 토크콘서트를 연이어 개최해 종북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한총련은 1990년대 이적단체로 규정됐던 단체다. 운동권에서 황씨는 그의 남편 윤기진씨와 함께 대표적 종북 성향 인사로 꼽힌다. 이런 황씨는 당시 발기인 대회에서 축시 ‘가자’를 낭독하기도 했다.
정치인 중에는 이규민 전 민주당 의원이 참석했는데, 이 전 의원 또한 한총련의 광주전남 지부인 광주전남총학생회연합(남총련) 출신이다. 그는 1990년대 운동권 조직 ‘반미구국전선’을 조직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이적단체 구성 및 이적문건 제작·배포)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발대식 자리에 참석한 건 그가 공직선거법 위반죄로 의원직을 상실하기 직전이었다. 이외에도 ‘우리나라’라는 이름의 NL 성향 민중가요 노래패에서 활동하는 백모씨 등도 동석해 공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촛불행동, 촛불전진 두 단체에서 요직을 겸하는 인사들 중에는 권모씨가 대표적이다. 권씨는 각각의 단체에서 사무국장,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1995년 광운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그가 몸담았던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실천연대)는 2009년 법원으로부터 이적단체로 규정됐다. 당시 실천연대 간부들은 북한 요원과 접촉해 지령을 받고 친북 활동을 한 죄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촛불행동과 촛불전진에서 각각 집행위원·운영위원, 운영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박모씨는 앞서의 황선씨가 운영하는 팟캐스트 ‘미디어공작소 반지하전선’이라는 곳에서 최모씨와 여러 차례 방송을 진행한 바 있다. 최씨 또한 한총련 출신으로, 이적단체로 지정됐던 앞서의 실천연대에서 집행위원장을 역임하다 국보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들 방송의 대부분은 북한 관련 이슈를 주제로 두고 있다.
촛불전진, 독자적 정치세력화 도모
촛불전진 측은 지난해 인터넷신문 ‘자주시보’에 국민주권민주주의라는 주제로 연재 글을 올리기도 했는데, 여기에는 모든 사회·정치 이슈를 반미·통일의 관점에서 해석했다. 자주시보는 2015년 종북 논란으로 폐간된 ‘자주민보’가 발행인 명의만 바꿔 사실상 재창간한 언론으로 평가되는 곳이다. 국민주권민주주의 주제글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들이 나온다. “미국은 한국의 영토주권을 침해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 땅을 군사기지로 쓸 수 있다” “대미굴종외교는 국익을 해친다” “적폐청산을 완수하려면 자주외교와 통일을 병행해야 한다. 적폐세력은 미국과 분단에 기생해 색깔론으로 권력을 잡아 유지해왔다. (중략) 분단을 넘지 않으면 근원적으로 청산할 수 없다” “윤석열 정권과 국힘당은 반통일 분단세력이다. (중략) 이재명 대표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두고도 말 바꾸기를 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한 관계자는 “실제 이 집단의 속성과 인사 면면을 보면 향후 광장에서 어떤 목소리로 어떻게 여론을 오도할지 알 수 없는 일”이라며 “과거 박근혜 퇴진 집회 때와 비교해보면 그때도 이렇게 집회를 주도하는 단체가 있긴 했지만, 그때는 대중의 자발적 목소리가 더 컸다”라고 말했다. 촛불행동은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반년도 채 안 된 시점서부터 지금의 퇴진 집회를 열기 시작했는데, 대중적 공감대가 앞선 움직이라기보다 단체 측 주도가 더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촛불전진, 촛불행동이 상임대표단을 앞세워 주최한 집회에는 일반 시민들 외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까지 함께하는 모양새다.
현재 촛불전진 측은 이른바 ‘국민주권포럼’ ‘국민주권당’ 등의 이름으로 독자적인 정치 세력화까지 도모하고 있다. 이 세력화에 동참하는 단체 중에는 국민주권연대,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등도 있다. 국민주권연대는 매년 ‘김정은 국무위원장 연구발표대회’를 개최하는 등 북한을 추종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대진연은 한총련의 후신으로 종북주의를 표방하며 주한미국대사관, 용산 미군기지 등에 난입한 바 있다.
일련의 내용에 대해 촛불전진·촛불행동 모두에 몸 담고 있는 앞서의 박씨는 “인터넷 홈페이지 내용을 확인하라”고만 여러 차례 이야기하곤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