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 장관은 지난 4월 10일 윤석열 정부의 초대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지명된 이후 줄곧 부처 폐지 로드맵을 마련해왔다. 부처 폐지를 위해 부처 장관을 맡은 셈이다. 그 결과 지난 10월 6일 발표된 정부조직 개편방안에는 여가부를 폐지하고 지금의 업무를 보건복지부로 이관해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신설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김 장관은 이제 부처 폐지 계획을 일선에서 실행하는 일뿐 아니라 국민에게 왜 굳이 부처를 개편해야 하는지 납득시켜야 하는 역할도 맡게 됐다. 21년째 엄연한 독립 부처로 일해온 여가부에 왜 칼을 대야 하는지, 동시에 최근 격화된 젠더갈등에 대한 책임과 분쟁 해결에서의 역할은 신설 기구가 해나갈 수 있는지 등 여가부 폐지론에 대한 비판과 의혹은 대다수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야당의 반대와 다수 여성단체의 반발도 넘어야 할 산이다. 지난 12월 7일 김 장관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만났다.
김 장관의 주장에 따르면, 여가부를 폐지하는 이유는 오히려 ‘기능 강화’를 위해서다.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고 전달체계가 없는 여가부에서 벗어나 복지부의 집행 기능을 함께 사용하게 되면 지금의 업무를 더 효율적으로 펼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부모가정, 위기 청소년 등 취약계층과 가정폭력, 성폭력 등 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업무가 여가부의 주요한 과제인 만큼 전국적으로 깔려 있는 복지부의 인프라로 ‘원스톱 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 여가부의 설명이다. 나아가 여가부 업무의 또 다른 한 축인 가족 정책은 저출산 및 인구 대책으로 확대된다.
김 장관은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는 영유아부터 노인까지 모든 생애주기를 통합해 다루기 때문에 34조원이 넘는 예산을 쓰게 될 것”이라며 “지금 1조5000억원 예산을 갖고 있던 부처가 30조원 이상의 예산으로 자체 사업을 하는 본부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사실상 여가부와 복지부 일부의 업무가 통합되는 셈이다. 통합 이후에 대국민 서비스의 역할이나 기능이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가 관건인 것 같다. "그렇게 만들려고 합치는 거다. 여가부 내부에 들어와서 본 가장 큰 한계는 전달 체계(서비스 수요자와 공급자를 잇는 경로)가 없다는 점이다. 여가부가 하는 업무를 전국에 퍼뜨리거나 알리지를 못하는 거다. 예를 들어 고용부는 지자체마다 고용노동청을 두고 전국적으로 고용부가 하고자 하는 사업, 실업급여나 고용 서비스 제공 등을 집행한다. 우리 부처는 특히 취약계층 지원업무가 많아 그런 인프라나 서비스 체계가 중요한데도 그런 부분이 부족하다. 그렇다 보니 우리 공무원들이 발로 뛰는 수밖에 없다. 개별적으로 고생을 많이 하는 거다. 전체 인원이 300명도 안 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 여가부에서 자체적으로 전달체계를 확대하면 되지 않나. "만드는 데 굉장히 오래 걸릴뿐더러, 복지부 대상과 일부 연령층의 중복도 생긴다. 복지부 인구정책실에서 아동, 노인, 보육 및 인구정책을 담당하는데 여가부에서는 청소년을 주로 하고 가정 양육도 관할하고 있기 때문에 일부 연령에서 중복 업무가 많이 생긴다. 그러면 기존에 갖춰져 있는 복지부 인프라를 같이 쓰면 시너지 효과도 나고 훨씬 효율적이지 않을까. 일례로 우리 여가부에서 운영하는 가족센터, 한부모나 조손가정 등 취약가족 지원 업무를 하는 센터가 지금 전국에 244개 있다. 그런데 복지부 업무를 중점적으로 수행하는 전국 읍면동 보건복지팀은 3000개가 넘는다(3312개). 이러한 망을 같이 이용하는 동시에 지원도 각종 기존 복지제도나 의료 지원 수단과 연계해서 펼치면 체감상 상황이 훨씬 나아질 것이다."
- 업무가 중복된다 해도 20년간 여가부가 해온 역할이 있는데 굳이 쪼갤 이유가 있나. "여가부의 시작도 복지부였다. 사실 20여년 전에 김대중 정부에서 여성부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어떤 '보이스'를 내라는 뜻에서 만들어진 측면이 크다. 당시의 여러 사회적 가부장적 문화에 대해서 계속 (정부에서) 푸시를 하면서 사회 전체의 양성평등 문화를 제고하는 역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제 그런 역할은 어느 정도 됐다고 본다. 오히려 MZ세대를 중심으로는 남성의 역차별도 거론되고 있다. 남녀와 세대 전체를 아우르는 양성평등의 관점을 실현하려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 임금격차 등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이 남아있는데 '여성'을 지운다는 우려도 있다. "그간 여성의 지위 향상 등을 위한 추진체계로서 그 상징성이라는 의미가 있었지만, 이제는 목소리로 일하는 시대를 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는 여가부가 오히려 성별 갈등을 심화시켰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간 여가부가 여성에만 특화된 '여성 정책'을 추진해온 점이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난 20년간 여가부가 호주제 폐지, 친고죄 폐지, 양육비이행관리원 설립 등 여성의 지위 향상에 큰 역할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다만 장기적으로 세대 및 젠더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단어 자체보다 대승적으로 양성평등 정책을 추진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본다."
- 여가부에서 오래 일한 공무원들은 조금 서운할 수도 있겠다. "(그런 마음이) 없지는 않을 것 같다. 내게 와서 직접 서운함을 말 못할 수도 있고. 하지만 또 큰 부처에 가서 더 많은 예산으로 적극적으로 일해보고 싶다는 분들도 분명히 계시는 걸로 안다. 우리 과장님들과 계속 간담회도 하고 점심도 하면서 어떻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맞는지 등 얘기를 나눠 보려 한다."
- 여성과 평등을 전담하는 부처를 폐지하는 것 자체가 국제적 트렌드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있다. 1995년 '베이징 행동강령' 이후 유엔은 '적절한 예산과 인력을 보장받는 여성 정책 전담 기구를 설치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유엔이 양성평등 관련 기구를 두라고 권고한 것은 사실이지만, 반드시 '여성 정책'만 수행하는 독립부처를 설치하라고 한 것은 아니다. OECD 중 양성평등 업무를 추진하는 국가 30개 중에 현재 한국 포함 9개국(뉴질랜드·이스라엘·캐나다 등)만이 여성·평등이라는 이름으로 단독 부처를 갖고 있다. 기능적으로 연결된 다른 부처에서 양성평등 패러다임을 고루고루 적용하는 식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여가부에서 조사한 결과 OECD 국가 중 독립부처에서 양성평등 업무를 추진하는 국가 30개 중 21개국이 복지·고용 등 여러 분야와 접목된 기구를 활용해 양성평등 정책을 추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 선진국으로 꼽히는 독일(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 핀란드(보건사회부), 노르웨이(문화평등부), 스웨덴·덴마크(고용부) 등도 모두 복지 및 고용부와 접목한 부처 형태로 양성평등 업무를 추진한다.
취약계층 및 폭력 피해자 등 지원 업무가 여가부 주요 업무의 큰 축이라면 다른 하나는 출산과 가족, 즉 인구문제다. 여가부는 그간 보건부가 내놓는 저출산 대책에 ‘양성평등 관점을 강화하라’는 등의 권고를 발표하는 식으로 극히 제한적으로만 관여해 왔다. 김 장관은 저출산 대책 및 인구문제에 대해서도 복지부 산하에 신설되는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가 30조원이 넘는 예산을 활용하는 인구문제 해결의 ‘총아’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출산 문제에 보다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일종의 컨트롤타워 성격을 겸하게 되는 셈이다.
- 여가부의 양성평등 정책과 인구문제 대책이 어떻게 연결되나. "사실 인구문제가 양성평등과 배치되는 걸로 생각되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양성평등이 기저에 잘 깔려야 인구문제가 해결된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거나 육아휴직 등 보육 서비스를 걱정 없이 쓸 수 있으려면 남녀가 함께 일하고 돌보는 문화가 확산해야 한다. 젊은 세대가 결혼을 선택으로 생각하는 등의 인식 변화를 정책에 충분히 반영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필요하다. 인구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다부처일 수밖에 없다. 일자리, 주거, 성평등…. 복지부 산하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는 이러한 것을 통합하면서 인구문제의 총아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 기존처럼 양성평등의 메시지를 내는 거라면 부처의 장관으로 목소리를 내는 게 더 강하지 않을까. "장관이 있다고 해서, 국무회의에 가서 발언권이 있다고만 해서 강력한 부처가 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대표적으로 예산이 확 늘어난다. 지금 여가부 예산은 1조5000억원인데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는 34조원이 넘을 걸로 예상된다. 영유아부터 노인까지 관할하게 되기 때문이다."
- 일부 여성단체들은 한부모지원 업무 등을 도우면서 재정난을 호소하는데, 예산이 늘어나면 이런 부분 지원도 확대되나. "향후 상황을 지켜봐야 하긴 하지만, 당장 지원금보다도 각종 인프라와 안전망을 결합해서 업무를 하게 되면 그런 지원이 많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 지자체, 기존 여가부 인프라를 모두 결합해서 전국적으로 일종의 안전망 '혈맥'이 갖춰지면서 넓어지는 거다. 현장의 여성단체 관계자들도 행정복지센터를 통해서도 한부모 등 여가부 서비스를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부처 개편에) 찬성하는 경우도 있었다. 반대하는 단체도 있는데 그분들하고도 또 많이 얘기를 할 생각이다."
- 정부조직법 개편안이 통과되면 장관은 복지부 산하 본부장으로 가게 되나. "그건 아니다. 나는 이제 여성가족부 마지막 장관으로 되지 않을까. 물론 향후 국회 논의를 지켜봐야겠지만."
- 결국 야당에서 개편안에 동의해주지 않으면 추진이 어렵다. 야당 의원들과도 논의하고 있는가. “정치권에서도 현재 여가부 상태로는 한계가 있고, 개편 필요성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정도로만 말하겠다. 일단 여가부 폐지는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국무위원으로서 정무적으로 공약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 대통령이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공약이기도 하고. 앞으로 국회 논의를 잘 지켜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