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與野)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관련한 검찰 수사를 둘러싸고 또다시 정면 충돌로 치닫고 있다. 양측의 ‘강대강(强對强)’ 대치가 이어질 경우 연말 예산 정국(政局)도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이 대표의 최측근인 정진상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이 지난 11월 19일 구속되자 안민석 의원과 김용민 의원 등 강경파 야권 의원 7명은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장외 집회에 직접 참석했다. 법원이 정 실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지 15시간 만이었다. 이들은 “야당 죽이기 골몰하는 윤석열은 물러가라” “사건조작 정치검찰 해체하자”는 구호를 외쳤다. 유정주 민주당 의원은 “윤석열 정부는 ‘인간 사냥’을 멈춰라. 멈추지도 반성하지도 않겠다면 그 자리에서 내려와라”라고 했다.
여권은 민주당이 장외 투쟁에 시동을 거는 이유가 이 대표를 향한 검찰 수사와 무관치 않다고 보고 있다. 민주당이 의도적으로 강경 투쟁 국면을 조성해서 정치적 활로를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민주당은 이 대표를 구출하기 위해 아스팔트 위에서 ‘정권 퇴진’을 외치며 결의를 다지고 있다”고 했다. 권성동 의원은 “젊은이들의 죽음에 자신들의 파렴치한 범죄 혐의를 끼워팔기하고 있다”고 했다.
‘정당한 수사’ 시각이 ‘정치 보복’보다 많아
검찰 수사에 대해 이재명 대표도 “유검무죄(有檢無罪), 무검유죄(無檢有罪)”라며 “조작의 칼날을 아무리 휘둘러도 진실은 침몰하지 않음을 믿는다”라며 반발했지만, 여론은 민주당에 불리한 조사 결과가 많다. 지난 11월 초 매일경제·MBN이 메트릭스리서치에 의뢰한 조사에서 검찰 수사에 대해 ‘범죄 관련 혐의에 대한 정당한 수사’란 응답이 51.9%로 과반수였고 ‘야권 탄압이며 정치 보복’이란 답변은 40.2%였다. MBC·코리아리서치 조사도 검찰 수사에 대해 ‘법적 절차에 따른 수사’(50.6%)가 ‘야당 대표에 대한 표적수사’(42.9%)보다 다수였다. KBS·한국리서치 조사도 ‘정당한 범죄 수사’(49.9%)가 ‘정치보복 수사’(43.4%)보다 높았다. SBS·넥스트리서치 조사도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가 48.8%였고 ‘야당 탄압을 위한 정치보복 수사’는 44.8%였다. 야당이 장외 투쟁을 통해 ‘이재명 대표 방탄’을 본격적으로 시도할 경우엔 민심이 우호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조사 결과다.
다만 이 대표 관련 검찰 수사에 대해선 응답자의 정치 성향별로 보는 관점이 크게 달랐다. MBC·코리아리서치 조사에서 보수층은 ‘적법 수사’가 72.6%에 달했지만 진보층은 ‘표적 수사’가 66.2%로 다수였다. KBS·한국리서치 조사에서도 보수층은 ‘정당한 범죄 수사’가 76.2%인 반면 진보층은 ‘정치보복 수사’가 65.4%였다. 이 대표를 향한 검찰 수사를 둘러싼 여야 갈등이 각자 지지층 간 대결로 확산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로 인해 ‘조국 전 장관 사태’가 불거졌던 2019년에 그의 수호와 퇴진을 요구하며 여야 지지층이 거리에서 맞선 이후 3년 만에 다시 광장에서 ‘촛불’과 ‘맞불’ 대결이 펼쳐지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눈에 띄는 것은 진영 대결이 격화되고 있는 것과 동시에 여야 지지층 간 결집도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각 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은 30% 안팎에서 두 달째 횡보 중이다. 여야 정당 지지율도 30% 초반 박스권에 견고하게 갇혀 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은 10월 첫째 주에 29%였고 11월 셋째 주에도 29%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지지율도 모두 33~35%에서 옆걸음만 하고 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이 함께 격주로 실시하는 전국지표조사(NBS)에서도 윤 대통령 지지율은 지난 두 달 동안 29~31%로 큰 변화가 없었다. 여야 정당 지지율도 두 달간 30%대 초반에서 양 당의 차이가 1~3%포인트에 불과했다. 그동안 이태원 참사, 이 대표 측근들의 구속,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도발, 윤 대통령 해외 순방 등 많은 이슈가 있었지만 대통령과 여야 지지율은 모두 콘크리트처럼 굳어져 있다.
여야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깨질 때
하지만 이 대표와 관련한 의혹 사건들의 진상이 밝혀지면서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한다면 야당 내 세력 분화와 함께 콘크리트 같았던 지지층도 균열이 시작될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가 있다. 이 대표에 대한 검찰의 소환 요구와 영장 청구, 체포 동의안 처리 등의 진행은 야당의 위기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 현실화가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상승으로 연결되지 않을 경우엔 여권으로선 난감해질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의미 있게 상승하기 위해선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 문제와는 별개로 경제와 민생, 인사(人事)와 소통, 정책 비전 등 국정 운영 전반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해소시키는 게 필수적”이라고 했다.
현재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여야 지지 구도가 달라질 수 있는 또다른 변수는 이태원 참사 이후 야당 일부 의원들도 동참하고 있는 ‘윤 대통령 퇴진’ 장외 집회에 대한 여론의 향방(向方)이다. 아직까지는 선관위에 등록된 조사회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퇴진이나 촛불집회에 대한 민심을 측정한 결과는 없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현재 분위기는 국정 농단과 관련해 탄핵 찬성이 높았던 2016년 말과는 다르다”며 “이태원 참사의 책임이 대통령으로 집중되지 않는 분위기에서 단지 낮은 지지율을 빌미로 퇴진을 요구한다면 여론의 지지를 얻기 힘들다”고 했다.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중립 의무 위반과 관련해 당시 한나라당 등 야당이 탄핵을 추진했던 때에도 노 대통령은 20%대 낮은 지지율에 시달렸지만 탄핵에 대해선 반대 여론이 훨씬 높았다.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기 직전인 3월 9일 갤럽 조사에서 노 대통령 지지율은 25%에 그쳤지만 야당의 탄핵 추진에는 반대(53.9%)가 찬성(27.8%)보다 두 배가량 앞섰다. 야당이 3월 12일에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일주일 후 갤럽 조사에선 노 대통령 탄핵에 대한 반대(71.1%)가 더 높아졌다. 야당 쪽으로 탄핵 후폭풍이 강하게 불면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비슷했던 정당 지지율도 46.8% 대 15.8%로 벌어졌다.
이번에도 야당이 검찰 수사에 반발하며 정권 퇴진 운동에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대선 불복으로 비쳐서 역풍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대통령 지지율이 낮다고 퇴진 여론이 높을 것으로 보는 건 오산(誤算)”이라며 “야당에 대해서도 안티층이 많아 정권을 향한 ‘무능 프레임’ 공세가 쉽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