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8일 연임 의사를 이사회에 밝힌 구현모 KT 대표이사 사장. photo 뉴시스

올해로 민영화 20주년을 맞은 KT 대표이사 선임을 앞두고 윤석열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2020년 3월부터 국내 최대 통신기업 KT를 이끌어 온 구현모 현 사장이 지난 11월 8일 대표이사 재도전 의사를 밝힌 가운데, 정부·여당을 중심으로 새 인물을 선호하는 기류가 뚜렷하다. 하지만 KT 대표이사를 선임하는 KT 이사회는 이른바 ‘친노(親盧)·친문(親文)’ 인사들 다수가 포진하고 있어 상당한 마찰음이 예상된다.

여권 일각에서는 윤석열 정부 출범에도 불구하고 친노·친문 계열 인사가 국가기간통신망 사업자인 KT의 새 수장에 뽑힐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감돈다. 방송통신 업무에 정통한 국민의힘 한 의원은 “KT 이사회가 아직 바뀌지 않아서 전 정부 측 인사들 다수가 포진해 있다”며 “통상적으로는 KT 사장 선임 때 정부 의중을 물어서 결정해 왔는데 지금은 사장 추천위 인사들과 조금 단절된 상태”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의 한 고위 관계자도 “골치 아픈 문제”라며 “구현모 사장 이슈에 대해서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을 아꼈다. 이와 관련 KT 홍보실의 한 관계자는 “KT 이사회는 구현모 대표의 연임에 대한 우선심사를 결정해 현재 후보심사를 진행 중”이라고만 했다. 연임 여부를 결정할 우선심사 결과는 이르면 12월 초·중순경 나올 것으로 보인다.

구현모 연임 도전에 불편한 기류

여권 일각의 우려처럼 KT는 물론 KT 자회사의 경영을 좌우하는 이사회 곳곳에는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이른바 ‘친노·친문’ 인사들이 대거 사외이사로 등재돼 있다. ‘원조 친노’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 때 ‘왕수석’으로 불린 문재인 전 대통령과 함께 ‘왕특보’로 불린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전 정무특보)을 비롯해,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경제정책수석과 통계청장을 차례로 지낸 김대유 이사, 김대중 정부 때 과학기술부 차관, 노무현 정부 때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장을 차례로 지내고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서 활동한 유희열 이사 등이 대표적이다.

KT의 대표이사 선임은 이들 사외이사들이 각기 위원으로 있는 ‘지배구조위원회’와 ‘대표이사 후보심사위원회’를 거친 뒤 내년 3월경 주주총회에서 최종 확정된다. 지배구조위원회에서 사내 부사장급 이상 인사들과 경영능력이 검증된 외부인사를 대상으로 대표이사 후보군을 심사해 추려낸 뒤, 대표이사 후보심사위원회에서 새 대표이사를 추천하는 식이다. 여기서 낙점된 인물은 주주총회에서 최종 승인을 받는다.

내년 3월 임기만료를 앞둔 구현모 사장은 지난 11월 8일 이사회 측에 연임 의사를 전달했고 1차 관문인 ‘우선 심사대상’으로 선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KT 정관에 따르면, 지배구조위원회에서 우선 심사대상으로 선정된 현 대표이사에 대한 연임을 승인하면 구현모 사장은 대표이사직을 연임할 수 있다. 일종의 ‘현직 프리미엄’인 셈인데, 오는 12월경 연임이 승인되면 이후 사내외 대표이사 공모절차는 자동무산되고 KT는 ‘구현모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게 된다.

현재 KT 지배구조위원회는 유희열 전 과기부 차관이 위원장으로,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위원으로 포진하고 있다. 우선 심사결과 구현모 대표의 연임이 불발되더라도 이들 ‘친노·친문’ 사외이사들은 대표이사 후보심사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친노·친문 인사들의 손에서 국가기간통신망 사업자인 KT의 새 수장이 사실상 결정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임기 막판에 곳곳에 심어둔 ‘알박기 인사’에 정부가 지분을 가진 공기업마저 장악하지 못해 국정동력을 좀처럼 찾지 못하는 여권으로서는 KT 마저 ‘빼앗기지’ 않을까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여권 일각에서는 정권교체 이후에도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전현희)와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한상혁) 등에서 보이는 기형적 ‘동거정부’ 양상이 KT에서마저 되풀이될 것이란 걱정도 나온다.

KT 자회사에도 ‘친노·친문’ 포진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총자산 42조원으로 재계서열 12위의 ‘통신공룡’ KT는 줄잡아 50개에 달하는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한데 모회사인 KT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KT 자회사 곳곳에도 야권 성향 인사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디지털 위성방송 사업을 하는 KT 스카이라이프에는 한겨레신문 사장 출신인 정영무 이사와 문재인 정부 초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을 지낸 김용수 이사가 지난 3월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됐다.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출신으로 정세균 전 총리의 특보를 지낸 한상익 이사 등도 지난해 3월부터 사외이사로 활동 중이다.

114번호안내 업무를 하는 KT CS에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최측근으로 충남도 정무부지사를 지낸 윤원철 이사와 19대 대선 때 민주당 선대위 공보특보를 지낸 최재왕 전 대구신문 사장이 지난 3월 사외이사로 재선임됐다. 특히 충남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노사모 사무국장을 지내고 노무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 행정관으로 일한 윤원철 이사는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스폰서인 고(故)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의 불법정치자금 사건 때도 안희정 전 지사와 함께 이름이 오르내렸다. 이후 별건의 뇌물죄로 징역 1년의 유죄판결을 받았는데도 KT 자회사의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KT CS와 유사한 업무를 하는 KT IS에는 대구여성회 공동대표 출신으로 민주당 정책위 부의장을 지낸 정종숙 민주당 대구 북구갑 지역위원장이 2021년부터 사외이사로 활동 중이다. KT의 금융계열사인 BC카드에는 이강철 전 수석의 동생인 이모씨가 최근까지 부사장으로 재직했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이 부사장은 KT가 벌였던 인수합병(M&A) 자금줄을 총괄한 파워자리에 있었다”며 “형인 이강철, 구현모 KT 사장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사내에 소문이 자자했다”고 했다. BC카드 홍보팀의 한 관계자는 “몇 해 전에 회사를 떠난 분”이라며 “개인 신상정보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KT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KT는 친노·친문 인사들이 장악하고 있는 사실상의 해방구”라며 “KT가 새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통신정책에 선도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이사회를 장악한 친노·친문 진영 인사가 선호하는 인사가 새 대표로 선임되면 말짱 도루묵”이라고 했다.

KT 사외이사로 있는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photo 뉴시스

국민연금이 최대주주

통신업계 맏형인 KT는 체신부와 한국전기통신공사, 한국통신 시절을 거쳐 2002년 민영화를 단행해 주식회사로 탈바꿈한 상장기업이다. 국민연금(12.68%)이 최대주주라고 하지만 정부 지분을 완전 매각한 터라 정부·여당이 주식회사 대표이사 선임에 개입해 감놔라 배놔라 할 명분 자체는 없다.

다만 KT는 민영화된 이후에도 SK텔레콤이나 LG유플러스처럼 오너가 확실한 다른 경쟁 통신회사들과 달리 이른바 ‘주인 없는 회사’라서 정부·여당의 눈치를 많이 봐온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는 정부·여당과 이른바 ‘코드’가 맞는 인사들이 주로 KT 대표이사를 맡아 왔다.

김영삼 정부 때 정보통신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내고 이명박 정부 때 KT를 이끈 이석채 전 회장이나, 삼성전자 반도체총괄사장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1월부터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3월까지 KT를 이끌었던 황창규 전 회장이 대표적이다.

황창규 전 회장의 후임자로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12월 대표이사 사장에 내정된 구현모 사장은 남중수 전 사장 이래 11년 만에 내부승진 케이스였다. 2009년 KT와 이동통신 자회사 KTF가 합쳐져 ‘통합 KT’로 출범한 이후 첫 내부 출신 인사였다. 황창규 전 회장의 비서실장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당시 여권과도 별다른 접점이 없었다.

구현모 사장은 2020년 3월 취임사에서도 “KT그룹을 외풍(外風)으로부터 흔들리지 않는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취임 일성을 밝힌 바 있다. 전임자인 황창규 전 회장 때까지 ‘회장’이었던 대표이사 직함을 ‘사장’으로 한 단계 낮추고 연봉을 삭감한 것도 구현모 사장이다.

하지만 1인 지배체제 타파를 명분으로 대표이사 직함이 회장에서 사장으로 바뀌면서 각종 연줄을 타고 정치권에서 투하된 사외이사들의 발언권은 오히려 더 커졌다는 평가다. 이사회에 포진한 친노·친문 진영 인사들의 발언권이 더욱 커진 것도 이 즈음이다. 정치권에서 수혈된 인사들이 KT 수장까지 쥐고 흔들 수 있는 권한이 생긴 것이다.

황창규, ‘친노·친문’ 사외이사 수혈

친노·친문 진영 인사들이 KT에 대거 수혈된 것은 황창규 전 회장 때의 일로 구현모 사장과는 무관하다는 지적도 있다. 황창규 전 회장은 “반도체 메모리 용량이 1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이른바 ‘황의 법칙’으로 유명한 삼성전자 스타경영인 출신. 황창규 전 회장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KT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한 뒤 2017년 1월 연임에 성공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때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사퇴압박에 시달렸다.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과 김대유 전 경제정책수석 등 노무현 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KT 이사회에 대거 수혈된 것도 이 즈음이다. 이강철 전 수석과 김대유 전 수석은 황창규 전 회장 시절인 2018년 3월 KT 사외이사로 최초 선임됐고, 구현모 사장 재임 중인 2021년 3월 임기 3년의 사외이사로 재선임됐다. 이강철 전 수석과 김대유 전 수석이 KT 사외이사로 들어올 때, 노무현 정부에서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도 사외이사 후보로 거론됐었다. 하지만 ‘바람막이’ 논란이 불거지자 본인이 고사하면서 최종 명단에서는 제외됐다.

그 결과 졸지에 KT의 실력자로 부상한 이강철 전 수석은 통신이나 경영과는 별반 상관없는 이력의 소유자다. 경영 이력은 야인(野人) 시절 청와대 인근 효자동에서 부인과 함께 횟집을 경영했던 정도다. 2004년 총선과 2005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앞서 수억원의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2009년 구속기소돼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이강철 전 수석은 대구 계성고 후배로 KT의 이동통신 자회사였던 KTF 조영주 전 사장에게 인사청탁을 한 일로 한동안 구설에도 올랐었다. KT가 밝힌 ‘사외이사 활동내역’에 따르면, 이강철 이사는 지난해 이사회 출석률도 84.6%로 100%를 채운 다른 사외이사에 비해 저조했다.

하지만 사외이사 임기가 오는 2024년까지라 이들은 신임 대표이사 선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구현모 사장 역시 현 이사회 멤버들과 관계가 나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한 결격사유만 없다면 황창규 전 회장처럼 연임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구현모 사장 재임 중 KT의 실적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2020년과 2021년 두 해 동안 KT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모두 상승세를 보였다.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4조8980억원과 1조6720억원을 기록했는데, 특히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1.2%나 급증한 수치였다. 주가도 취임 초 1만9700원에서 3만6850원으로 87%가량 급등했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구현모 사장 취임 후 주가도 많이 올랐고, KT가 투자한 ENA(옛 SkyHD)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대박을 치는 등 연임에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했다.

‘쪼개기 후원’이 연임 최대 걸림돌

다만 구현모 사장 연임의 최대 걸림돌은 ‘쪼개기 후원’에 가담한 혐의로 지난 6월 유죄판결을 받은 사실이다. 구현모 사장은 황창규 전 회장 아래서 부서장급 임원으로 근무했을 때 다른 임원들과 함께 ‘상품권깡’을 통해 조성한 돈을 여야 국회의원 99명에게 제공한 이른바 ‘쪼개기 후원’ 혐의로 약식기소돼 벌금형 약식명령을 받았다. 구현모 사장은 이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신청한 상태다. 하지만 ‘쪼개기 후원’의 여파로 뉴욕 증시에 상장된 KT는 지난 2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해외부패방지법 위반으로 630만달러(약 7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는 불명예를 안았다.

KT새노조(제2노조)도 지난 11월 8일 구현모 사장이 연임 뜻을 밝힌 직후, “회삿돈을 빼돌리고 정치자금을 무차별 살포한 범법행위에 연루돼 횡령사범으로 재판받는 자가 자신의 소유 기업도 아닌 소위 국민기업의 대표로 적합한 것인지에 대해 이사회는 분명한 입장을 갖고 연임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이라며 연임불가 뜻을 전달한 상태다. 지난해 10월 25일 터진 KT 통신망 장애사태로 전국 통신망이 마비된 사실도 연임에 발목을 잡는 요인 중 하나다. KT 관계자는 “정치자금법 위반은 2016년 전에 이루어져 대표이사 임기 전의 사안”이라며 “벌금형에 따른 재판이 진행 중이므로 경영계약 조항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에 자칫 연임을 강행하려 할 경우, 남중수 전 KT 사장과 같은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무현 정부 때 KT 사장을 맡았던 남중수 전 KT 사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직전인 2007년 12월 연임이 확정됐는데, 이듬해 납품업체로부터 수억원의 뒷돈을 받은 혐의가 드러나 구속기소됐다. KT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KT 사장 선임을 앞두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식으로 여권에서 누군가가 나서 교통정리를 해줘야 하는데 모두 눈치만 보고 총대를 메는 사람이 없다”며 “주인 없는 회사인 MBC와 같은 사태가 KT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우려했다.

여권 일각에서는 KT 대표이사 선임에 개입하려는 움직임 자체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KT 이사회를 장악한 친노·친문 인사들을 몰아낸 자리에 자기 사람을 심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구현모 사장 연임에 최대 걸림돌로 꼽히는 ‘쪼개기 후원’ 때는 현 여권 실세들의 이름도 후원명단에 오른 바 있다. 대통령실과 여당 내에도 과거 KT에 낙하산으로 투하돼 KT와 인연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KT링커스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이석채 전 회장에게 자녀 채용을 청탁해 대법원 유죄판결을 받은 김성태 전 의원 같은 경우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KT는 국가기간통신망 사업자 가운데 제일 중요한 사업자고, 민영화를 했다고 하지만 업무상으로 모든 것이 정부 사업과 연관돼 있다”며 “통신망과 관련해 완전히 민간회사에 맡길 수도 없고 통신망도 향후 이중화를 해야 하는데 아무에게나 맡길 수 있겠느냐”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KT로서도 정부와 선이 필요하고 여러 고민들을 하고 있을 것”이라며 “만약 인사안을 올린다고 해도 정부 눈치를 보고 사전에 어느 정도 조율을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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