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이주영(71) 전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는 “내가 뭘 잘한 게 있다고…”라며 부담스러워했다. 그는 2014년 4월 16일 일어난 세월호 참사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었다. 국가적 참사가 벌어졌을 때 고위공직자의 처신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했지만 그는 “이런 상황에서 내 자랑 하는 것처럼 들릴 것 같다”며 망설였다. 정치권이 이태원 참사의 책임공방을 벌이고 있는 시기, 세월호 참사 때 이 전 장관의 모습을 떠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던 참이었다. “이렇게 일한 사람이 있었다고 기록해두는 의미로 생각해달라”고 설득해서야 인터뷰가 성사됐다. 이 전 장관은 5선 국회의원(16~20대)·해수부 장관·국회부의장을 지냈다.

이 전 장관은 2014년 3월 9일 해수부 장관에 취임해 2014년 12월 물러났다. 그는 대중적으로 그리 인기 있는 정치인은 아니었다. 해수부 장관을 맡을 당시 경남 창원·마산에서 4선을 지낸 친박계 중진 의원이었지만 그를 잘 모르는 국민들도 많았다. 그가 해수부 장관에 취임한 뒤 41일밖에 되지 않았던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역설적으로 세월호 참사는 정치인 ‘이주영’의 이름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였다.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 몇 달간 수염과 머리를 자르지 않아 화제가 됐다. “죄스러운 마음에 깎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전 장관은 세월호 참사 당일 진도로 내려갔다. 가족들로부터 멱살 잡히고 “너도 바다에 빠져 죽어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그때마다 “죄송합니다. 제가 죄인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136일 동안 하루도 진도를 떠나지 않았다. 세월호 실종자 수색 작업이 진행되는 7개월여 동안 진도군청의 빈 사무실에 간이침대를 두고 김밥을 먹으며 지냈다. 매일같이 진도체육관과 팽목항을 오가며 실종자 가족들과 소통했다. 그는 참사가 발생한 직후 사의를 밝혔지만 청와대는 그를 유임했다. 그해 6월 교육부 장관과 안전행정부(현 행정안전부) 장관이 사퇴했다. 그는 12월이 되어서야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실종자 수색 작업을 지휘해야 하는 책임도 있었지만 세월호 실종자 가족 중 일부가 그의 유임을 요청할 정도로 진정성을 보였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이 전 장관이라면 참사 이후 공직자의 책임과 태도에 대해 나름 할 말이 있을 것 같았다. 지난 11월 8일 그가 고문변호사로 있는 서울 서초동의 한 로펌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이태원 참사 다음날 새벽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했다고 한다. 이 전 장관은 세월호 참사 이후 8년 만에 또 이런 비극이 일어난 것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세월호 이후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사고니까… 안타까운 마음”이라면서 “국가적인 책임을 다 못한 것에 나 역시 책임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죄스러운 마음은 여전하다”고 했다. 그는 말하기를 조심스러워하고 있었다.

- 세월호 이후 8년 만에 또 이런 참사가 발생했다. 이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뭘 해야 한다고 보나. "위험 요소가 있는 여러 경우를 다 살펴보고 대비를 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 해상 운송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였다. 그 이후 그런 운송기관 관련 안전만 생각하고 또 다른 종류의 위험 요소들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이번 참사의 원인이라고 본다. 이번에는 위험 요소가 잠재된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점검해 보는 것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 국가애도기간이 끝나자 야당은 거세게 책임 추궁에 나서고 있다. 특히 행안부 장관의 책임을 묻는 여론이 높은데. "대형 참사로 많은 희생자가 나온 경우에 정부는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이번 이태원 참사 직후 행안부 장관이 행안부나 경찰에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발언했는데, 이는 미숙한 판단이었다. 책임에는 법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이 있다. 법적인 책임은 현재 수사 중이니까 그 결과에 따라 나올 것이다. 다만 그 이전에 민심 수습 차원에서 정치적인 책임이 필요하다."

이상민 장관이 사의를 표명할 필요가 있다는 말로 해석됐다.

- 참사가 벌어졌을 때 장관이 물러나는 것만이 책임지는 자세라고 볼 수 있나. "정치적·도의적 책임은 과감할 정도로 지는 게 민심 수습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장관은 일단 사의를 표명하고…. 대통령이 판단하면 된다."

세월호 침몰사고 16일째였던 2014년 5월 1일, 희생자 가족들이 정부의 늑장대응에 항의하며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이주영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가운데)이 이 자리에 나와 가족들의 요구사항을 말없이 듣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상민 장관, 일단 사의표명해야”

윤석열 대통령은 참사 직후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고, 엿새 동안 시민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1월 5일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이태원참사 추모 위령법회에 참석해 “국민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라면서 “슬픔과 아픔이 깊은 만큼 책임 있게 사고를 수습하고, 무엇보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큰 책임이 저와 정부에 있음을 잘 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정권 인사들의 잇따른 설화로 참사를 대하는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이태원 참사 직후 “경찰,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 가능한 문제가 아니었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외신 기자간담회에서 농담을 하며 웃는 모습을 보여 구설에 올랐다. 국민의힘 소속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참사 발생 이틀 뒤인 지난 10월 31일 “이건 축제가 아니다. 축제면 행사의 내용이나 주최 측이 있는데 내용도 없고, 그냥 핼러윈 데이에 모이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봐야 한다”면서 “저희는 전략적인 준비를 다 해왔다.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고 말해 무책임한 언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 여권 일부에는 '세월호 때처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에 당해선 안 된다'는 인식이 퍼져있는 것 같다. "세월호 당시 야당의 정치적 영향력이 희생자 가족들한테도 많이 미치긴 했다. 이후 좀 과하다 싶은 요구들이 나왔다. 이번 이태원 참사를 두고도 그런 요구들이 나온다면 국민들이 '저건 아니다'라고 판단하실 거다. 내각 전원 사퇴나 대통령 퇴진 같은 과한 정치적 요구에는 국민이 판단을 내려줄 것이다."

- 보수층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시발점이 세월호 참사였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래서 이태원 참사 이후 대처에 방어적인 모습을 보이는 건 아닌가. "세월호 참사 당시 사안이 과도하게 정치화된 것에 대한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는데, 윤석열 정부 취임 8개월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또 이런 참사가 일어났으니 그럴 수 있다. 책임을 섣불리 수용하고 인정하다 보면 또 세월호 때와 같은 깊은 늪에 빠질까 우려하는 것 같다. 그러나 책임을 방기한다는 인상을 주는 건 보수 세력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다. 적정한 수준에서의 책임은 받아들여야 한다."

“책임 방기 인상은 보수세력에 도움 안 돼”

- 장관 취임 40여일 만에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는데 책임지라고 하니 개인적으로는 억울하지 않았나. "운명이다. 다 받아들여야 한다. 사고 직후 현장에서는 '너가 죽였다. 너도 죽어라' 이런 얘기들도 들었다. 여기저기 붙잡혀 끌려가는 수모도 겪었다. 한번은 진도군청에서 수습본부 회의를 하고 있는데 가족들이 들어와 의자와 집기를 집어던지곤 했다. 해수부 참모들은 '봉변당하실 수 있으니 피해 있는 게 좋겠다'고 했지만, 봉변당하면 당하는 대로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족들이 요구할 게 있어 찾아왔는데 장관이 어디 도망가 있다고 하면 되겠나."

-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과 소통이 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을 텐데. "다이빙벨을 투입하면 구조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데 왜 거부하느냐는 가족들과 오후 5시 반부터 그 다음날 아침 9시까지 밤새 토론을 한 적이 있다. 해경이 구조에 다이빙벨은 별 효과가 없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해주지 않았다. 결국 밤 11시 반쯤 해경청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다이빙벨을 투입해라. 투입해서 직접 가족들에게 보여줘라. 그리고 최대한 협조해라.' 이렇게 해서 수습이 됐다."

당시 이 전 장관은 이튿날 아침 다이빙벨이 투입될 때까지 가족들 텐트에 앉아 밤새 대기했다. 2014년 4월 25일 새벽이었다.

“나, 해경차장, 해수부 기조실장 이 세 사람은 가족들 텐트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실종자 가족들과 다 같이 안 자고 대화를 나눴다. 새벽 4~5시가 되자 가족들이 먼저 ‘장관님 그냥 좀 누우세요. 이제 밖에서 안 보이니까 눈 좀 붙이세요’라고 하시더라. 그래도 가족분들이 안 자고 계신데 (그럴 수 없어) 꼬박 밤을 새웠다. 그러면서 함께 아이들 이야기를 나눴다. 부모한테 참 잘하고 효성 지극한 아이들이었는데 이렇게 되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가족들이 ‘장관님은 자녀들이 어떻게 되시냐’며 나에 대해서도 물어보시더라. 인간적으로 통하다 보니 그때부터 장관을 믿어주는 분위기가 생겼다.”

이 전 장관에게 세월호 참사 당일에 대해 묻자 그는 어제 일을 떠올리듯 세세하게 기억했다. 오전 8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를 마치고 나온 시간이 9시 10분경이었다. 회의에서 나온 직후 해수부장관실 해양경찰 담당 비서관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곧바로 해경청장에게 전화했다. 오전에 방송 인터뷰 1건과 국회 농해수위 소속 의원들과의 오찬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그는 일정을 취소하고 인천 해경본부 상황실로 향했다. 이후 직접 현장으로 가야겠다고 판단한 이 전 장관은 김포공항에서 무안공항으로 출발했다. 무안공항에선 헬기로 세월호 침몰 해역 인근으로 이동했다. 오후 1시25분경이었다. 뱃머리만 수면 위에 남아 있던 시점이었다.

이 전 장관의 세월호 참사 수습에 대해 모두가 호평하는 것은 아니다. 해수부의 수많은 업무를 제쳐두고 장관이 7개월 동안 진도 현장에만 머무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현장은 실국장에게 맡기고, 장관은 근본적인 대책 마련과 해수부의 산적한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한편에선 그가 유가족들에게 진정성을 보인 모습은 높이살 만하지만, 그 이상 한 일이 무엇이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희생자들을 구조해내지 못했다는 책임은 그에겐 원죄나 다름없었다. 이 전 장관은 세월호 참사 직후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하지만 당시 청와대에서 “사고 수습부터 해놓고 보자”며 만류했다. 이 전 장관은 범정부사고대책본부장을 맡아 수습 현장을 지휘했다.

“2014년 6월 개각이 이뤄질 때 당연히 나도 사퇴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유임이었다. 내가 왜 유임이냐, 사퇴해야 하지 않느냐고 청와대에 말했다. 어쨌든 수습을 끝내고 보자는 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많은 분들은 어떻게 해수부 장관을 유임시킬 수 있냐고 의문을 가졌다. 나라고 장관 자리가 좋아서 하고 있는 것처럼 비쳐지고 싶었겠나. 짧은 입장문을 발표했다. ‘지금은 수습의 중요성 때문에 일단 그 책임을 다하라는 명령으로 알겠다. 이 수습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뒤에 제 책임에 상응하는 처신을 하겠다’고 밝혔다.”

- 7개월여 동안 현장에서 매일같이 통곡하는 소리를 들으며 있었을 텐데 정신적으로 괴롭진 않았나. "희생자 가족들의 안타까운 마음하고 똑같은 자세로 임하려고 했다. 그리고 이런 희생을 불러온 데는 '그 책임이 나한테 다 있다. 내가 죄인이다. 내가 그 희생에 대한 죄인'이라는 자세로 수습했다. 가족분'들에게 조금이라도 거짓되거나 과장된 정보를 제공해선 안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일관해서 버텼다."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책임이 나한테 다 있다’는 자세로 수습”

- 참사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살면서 이렇게 내놓고 많이 울어본 적은 처음"이라고 했던데. "가족들이 슬픔에 겨워서 울면 공감이 돼서 같이 울었다. 그런 울음들이… 여러 차례 있었다."

이 대답을 듣다가 “원래는 눈물이 별로 없는 편이었는지” 묻고 있었는데 더 이상 답을 들을 순 없었다. 이 전 장관은 그새 목이 매어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이 전 장관은 해수부 장관에서 물러난 지 8년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몇몇 유가족과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했다. 그는 “안타까운 마음은 세월이 흘러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생활하며 겪는 어려움에 대해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거나, 다른 자녀들이 결혼할 때 참석했다고 한다. 인터뷰를 마치려는데 이 전 장관은 또 “혹시 이 인터뷰가 뭘 잘했다고 자랑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질까 걱정된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 중 자랑할 만한 내용이 있나 싶었다. 수많은 생명을 구하지 못한 책임, 그리고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이어도 누군가에겐 자랑처럼 들릴까 걱정해야 하는 현실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와 헤어지고 나오니 국회 운영위 국정감사에 참석한 대통령실 수석들이 ‘웃기고 있네’라고 필담을 나눈 장면이 포착돼 실시간 기사에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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