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리더십이 위기에 처하자 반사이익을 얻은 정치인이 있다. 유승민 전 의원이다. 유 전 의원은 지난 대선과 경기도지사 선거 경선에서 연이어 탈락하며 정치적 위상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경기도지사 경선에서 초선 의원이었던 김은혜 전 의원에게 패배한 것은 유 전 의원의 정치적 미래를 더 암담케 했다.
그런데 최근 윤 대통령의 지지율 급락, 이준석 전 대표의 당원권 정지 6개월 중징계 등 당이 극심한 내홍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유 전 의원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유 전 의원이 차기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1위를 기록했다는 여론조사가 나올 정도였다.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지난 8월 6~8일 만 18세 이상 10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차기 국민의힘 대표로 적합한 후보를 물은 결과, 유 전 의원은 23.0%를 얻어 1위였다. 이어 2위로는 이준석 전 대표(16.5%), 안철수 의원(13.4%), 나경원 전 의원(10.4%), 주호영 의원(5.9%), 김기현 의원(4.4%), 정진석 의원(2.6%), 권성동 원내대표(2.5%), 장제원 의원(2.2%) 순이었다.
당대표 선거는 무엇보다 당원의 뜻이 중요하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이 전 대표가 18.6%, 유 전 의원이 12.5%였다. 보수층에서도 이 전 대표가 19.1%, 유 전 의원은 12.2%로 1, 2위를 다퉜다. 중도층과 진보층에선 유 전 의원이 각각 30.4%, 33.7%를 얻었다.
해당 여론조사에 대한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한쪽에선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내 ‘윤핵관’ 리더십에 실망한 여론이 ‘반윤’인 유 전 의원과 이 전 대표에게 쏠렸다는 분석이 나왔다. 반면 유 전 의원이 중도층과 진보층에서 높은 지지율을 얻은 것을 두고 ‘역선택’에 의한 결과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윤핵관이 대안 될 수는 없어”
현재 정치권에서 유 전 의원이 차기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거나, 혹 출마하더라도 당선될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는 드물다. 다만 보수층 사이에서도 당내 윤핵관 그룹의 리더십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윤핵관으로 꼽히는 당내 의원들의 경우 윤 대통령의 정치적 소통 창구라는 것 외에, 자체적인 지지세는 그렇게 크지 않다”면서 “윤 대통령과 이 전 대표의 갈등 상황을 얼른 정리해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면서도, 그 대안으로 윤핵관 의원들이 적합하지 않다고 보는 보수층 시각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했다.
유 전 의원은 지난 대선 경선에서 윤 대통령과 맞붙었던 후보(홍준표·유승민·원희룡) 중 현 정권에 가장 날 선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선 당시 윤 대통령과 지지율 1, 2위를 다툰 홍준표 대구시장의 경우 최근 이 전 대표에 대해 “모두가 합심해 윤 정권이 안정되고 잘하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 민심과 당심”이라면서 “더 이상 이준석 신드롬은 없다”고 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의 경우 지난 대선후보 경선 직후부터 선대위 정책본부장을 맡으며 윤석열 정부의 핵심 참모 역할을 맡아왔다.
일각에선 지난 지방선거에서 인수위 대변인을 맡고 있던 김은혜 전 의원이 경기도지사에 출마해 유 전 의원과 맞붙은 것을 친윤 그룹의 ‘정치적 응징’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유 전 의원은 경선 패배 직후 소셜미디어에 “윤석열 당선자와의 대결에서 졌다”면서 “권력의 뒤끝이 대단하다. 공정도, 상식도 아닌 경선이었다”고 했다. 유 전 의원은 “2016년 진박감별사들이 칼춤을 추던 때와 똑같더라”면서 경선 과정에 친윤 세력의 입김이 상당 부분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대선 기간 윤 후보의 운전과 수행을 지근거리에서 했고 현재는 대통령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황모씨가 김은혜 후보 캠프에서 일한 것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황씨는 윤 대통령의 오랜 지인의 아들이다.
국민의힘의 한 전직 의원은 “당시 김 전 의원의 경기도지사 출마는 사실상 윤 대통령과 윤핵관 핵심 의원들의 의중이 결정적이었다고 본다”면서 “초선의 김은혜 의원이 대선주자급 유 전 의원과의 경선을 이길 수 있던 배경에는 ‘윤심’이 거기에 쏠렸다고 본 당내 여론이 가장 컸다”고 했다. 이 전직 의원은 이런 평가를 덧붙였다. “개인적으로는 김 전 의원의 도지사 출마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정확히는 김 전 의원을 선거에 ‘내보내는’ 상황에 반대였다. 유 전 의원은 합리적 보수를 지향하는, 보수층 내에서도 지지 그룹이 확실하게 있는 인물이다. 그런 정치인을 권력 핵심이 내치는 것보다 국민의힘의 전체적인 ‘파이’를 위해 활동할 공간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었다. 대선 승리 직후 윤핵관 그룹이 너무 강경하게 나간 것은 아닌지…. 결과적으로 유 전 의원이 장외에서 주목받는 지금 같은 상황이 윤핵관 의원들 입장에선 더 껄끄러울 것이다.”
“생각 다를수록 자리를 내줘야”
유 전 의원은 최근 언론과의 접촉은 피하고 있지만, 소셜미디어를 통해 윤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이어왔다. 지난 7월 26일 윤 대통령이 권성동 원내대표에게 “내부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바뀌니 달라졌다”고 보낸 텔레그램 메시지가 노출됐을 당시 유 전 의원은 해당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공유했다. 지난 8월 5일 윤 대통령이 낸시 펠로시 미 의회 하원의장과 만나지 않은 것을 두고는 “결국 패싱했다”면서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미국 의회의 대표를 패싱한 것이 어찌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냐”고 비판했다.
지난 8월 17일 윤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유 전 의원은 “이 정권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낮은 가장 큰 이유는 대통령 본인에게 있다”면서 “대통령의 생각, 말, 태도가 문제”라고 윤 대통령을 정면 비판했다. 유 전 의원은 그러면서 “대통령 본인이 바뀌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라며 “그런데 대통령이 현 상황을 정말 심각하게 생각하고 모든 걸 바꿀 각오가 되어 있는지, 오늘 기자회견으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유 전 의원이 향후 어떤 정치적 행보를 보일지 현재로선 미지수다. 정치권 안팎에선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이준석 전 대표와 신당을 창당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과 윤핵관 그룹에 대한 비토 여론이 커질수록 유 전 의원이 보수층의 대안으로 존재감이 커질 것이란 예상이다. 다만 유 전 의원과 바른정당-바른미래당 시절을 함께한 정치권 인사는 “제3당을 만들고 이끌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유 전 의원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라면서 “지난 총선에서 결국 양당으로 흡수되어버리긴 했지만, 차라리 그때 합리적 개혁보수의 노선을 끝까지 걸어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 아쉬운 생각도 든다”고 했다. 국민의힘의 전직 중진 의원은 “윤 대통령이 자신과 결이 다른 이 전 대표와 유 전 의원 모두 품는 ‘통 큰’ 모습을 보였으면 좋았을 것”이라면서 “생각이 다른 그룹일수록 한쪽에 자리를 내주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현명한 선택”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