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5일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와 비공개 면담을 하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중재안 재논의 문제와 관련해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권 원내대표는 박병석 국회의장이 제안한 검수완박 중재안을 애초 수용하게 된 배경과, 향후 재논의 추진 방안 등에 대해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당선인은 형사사법 시스템 개편 문제가 중재안 내용대로 졸속 처리돼선 안 된다는 뜻과 함께 권 원내대표가 이런 뜻을 반영해 재논의에 나서달라는 당부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찾았다. 예정에 없던 일정이었다. 취재진 질문에 별다른 답변 없이 인수위 사무실로 들어간 권 원내대표는 윤 당선인과 30분간 면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검수완박 문제와 국무위원 인사청문회 등 원내(院內) 현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면담을 마치고 인수위 건물을 나선 권 원내대표는 취재진이 당선인 면담 여부를 물었지만 답변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중재안 합의 이후 궁지에 몰린 권 원내대표가 윤 당선인에게 SOS를 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이에 앞서 권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민의힘 최고위원 회의에서 “소수당 원내대표로서 국민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중재안을 마련하는 것은 차악의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171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이 검찰의 6대 범죄 수사권을 완전 박탈하는 검수완박을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검찰의 2대 범죄(부패·경제) 수사권과 보완 수사권을 지키는 중재안에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권 원내대표는 최고위원 회의에서 중재안 재논의 방침을 결정한 직후 박병석 국회의장을 찾아가 검찰의 수사 대상 범죄에 선거·공직자 범죄도 추가하는 쪽으로 중재안을 수정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날 권 원내대표가 윤 당선인을 찾은 것은 검수완박 중재안 수용으로 지지층과 법조계 등의 반발이 거세지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권 원내대표는 지난 22일 중재안 합의 직전 있었던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인수위 측도 중재안 수용에 동의했다”면서 동료 의원들을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막상 여야 합의안이 공개되자 인수위 측에선 “구체적으로 듣지 못한 안(案)”이란 반응이 나왔다. 윤 당선인 측과 구체적인 의견 교환이 부족한 상황에서 중재안을 수용했고, 그에 대한 반발이 예상을 뛰어넘자 뒤늦게 조율에 나선 것 아니냐는 얘기다.
윤 당선인은 이번 검수완박 중재안 합의와 관련해 국민의힘 지도부로부터 “국회의장 중재로 합의될 것”이란 취지의 설명을 사전에 들었지만, 구체적인 합의안 내용에 대해선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당선인 측은 취임 전에 국회 입법 문제와 관련해 직접적인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다만 6·1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여야가 충분한 논의 없이 형사사법 체계 개편에 나서는 것에 대해선 문제 의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중재안의 검찰 수사 대상에서 선거·공직자 범죄가 제외된 것은 ‘정치권 범죄의 성역화’란 국민적 비판에 부딪힐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윤 당선인이 이날 배현진 대변인을 통해 “정치권 전체가 헌법 가치 수호와 국민의 삶을 지키는 정답이 무엇일지 깊게 고민하고 정치권의 중지를 모아 달라”고 한 것도 권 원내대표가 이런 입장을 반영해 민주당과 재논의를 이끌어 달라는 뜻을 밝힌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이 검수완박 중재안에 합의한 지 사흘 만에 궤도 수정에 나선 배경에 ‘윤심(尹心)’이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와 관련, 장제원 실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윤 당선인은 ‘검수완박은 부패완판’이라는 생각에 전혀 변함이 없다”고 했다. 장 실장은 국민의힘 지도부가 검수완박 중재안을 재논의하기로 한 것과 관련해서는 “당에 (윤 당선인이) 입장을 구체적으로 전달한 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제 당선인 대변인이 ‘국민이 굉장히 우려하는 것들을 엄중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나. 당에서 잘 헤쳐나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