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농림축산식품부·외교부·기상청 청사. 문재인 정부 초 이들 3곳 기관에서도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photo 뉴시스·기상청

문재인 정부 초 농림축산식품부·외교부·기상청에서도 이전 정권에서 임명된 산하 기관장들에 대한 퇴임 압박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전직 기관장들은 당시 “표적 감사, 예산 절감, 일방적 사장 공모 등의 부당한 방식으로 압박을 받았다”고 주간조선에 밝혔다. 이 같은 퇴임 압박은 2017년 5월 19대 대선이 끝난 직후 이뤄졌는데, 당시 이들의 임기는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을 남겨놓고 있었다. 지난 2018~2019년 환경부와 산업부 등을 중심으로 불거진 이전 정권 임명 기관장을 상대로 한 퇴임 압박 의혹, 즉 ‘블랙리스트’ 의혹이 정부 부처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모양새다. 이에 따라 최근 재개된 검찰의 블랙리스트 수사가 미칠 파장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은 지키고 싶었는지 우회적으로 압박”

주간조선이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 등을 활용해 이전 정권에서 임명됐다가 문 대통령 취임 초 중도 퇴임한 공공기관장들을 직접 접촉한 결과, ‘윗선’의 압박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진술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새롭게 확인된 부처만 농림축산식품부(농림부), 외교부, 기상청 등 3곳이다. 현재까지 정치권 고발로 블랙리스트 의혹을 샀던 부처는 지난 3월 20대 대선 직후 검찰이 강제수사에 나선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를 비롯해 환경부, 국무총리실, 통일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 교육부, 보훈처, 원자력 관련 기관 등이었다.

이번에 새롭게 확인된 농림부의 경우 각 산하 기관장을 밀어내기 위해 수개월에 걸쳐 표적 감사를 벌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8~2019년 국무총리실과 과기부가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산하기관에 대한 표적 감사를 벌였다는 의혹과 유사하다. 지난 2016년 10월 농림부 산하 기관장으로 임명됐다가 2018년 2월 임기 1년 8개월을 남기고 중도 퇴임한 A 전 사장은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감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임기가 남아 나름 조직 기틀을 다잡고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었다. 근데 정권이 바뀌자 감사가 시작되더라. 3개월 가까이 지속됐다. 감사원, 국조실, 지방기관 등 여러 곳에서 감사를 진행했고 관련 문서도 쉬지 않고 날아왔다. 통상적인 감사가 아니었다. 혼자 생각하기로 현 정부와 코드가 맞지 않아 그런가 보다 해서 차라리 ‘그만두라고 직접 말을 해달라’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근데 이에 대한 언급은 없고, 감사만 지속했다.”

급기야 A 전 사장은 일방적인 후임 사장 공모 지시를 내려받기까지 했다. A 전 사장에 대한 거취나 의중에 대한 논의 없이 이뤄진 조치였다. A 전 사장은 “‘라인’을 통해서 내려왔다”며 “나는 없는 사람이 돼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참 비겁한 사람들이라 느껴졌다. 정무직 특성상 정권이 바뀌면 언제든 자리를 비킬 생각도 하고 있었고 그게 맞는 거라 봤다. 그런데 나가란 말은 끝까지 안 하더라. 법은 지키고 싶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A 전 사장은 결국 ‘개인사유’로 중도 퇴임 의사를 밝혔다. 그는 자신이 책임졌던 곳 외에 농림부 산하기관에서도 이런 일이 만연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잘되고 있는 해외 사업 예산 삭감”

비슷한 시기 외교부 산하 3대 기관으로 꼽히는 한국국제협력단·한국국제교류재단·재외동포재단도 예외는 아니었다. 외교부 산하기관 전직 고위 간부의 증언에 따르면, 외교부의 경우 인사과에서 직접 기관장 퇴임을 지시하기도 했다. 지난 2015년 7월 이들 3개 기관 중 한 곳에 이사로 임명됐다가 2017년 9월 중도 퇴임한 B 전 이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치적 끈이 있다거나 이전 정권과 관련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외교부에 새로 등장한 실세들이 구 정권에서 채용됐다고 지목해 오해를 받아 나오게 됐다. 그 과정에서 압박이나 위협도 있었다. 나중엔 사표를 내달라며 사표 양식을 직접 내려보내기도 했다. 처음엔 외교부 국장급을 통해 연락이 오다 담당 부서에서까지 연락이 왔다. 몇 주간 고민하다 결국 그만뒀다.”

그는 “감사도 당연히 있었다. 감사 거리는 사실 없었는데…”라며 “말을 안 들으면 조직 전체에 여러 데미지를 줄 가능성도 있었다”라고 했다. 결국 그는 임기 10개월을 남겨놓고 퇴임했다. 사유는 ‘의원면직’이었다.

기상청 산하기관도 마찬가지다. 기상청 산하 C 전 원장은 2016년 4월 취임했다가 2018년 4월 임기 1년을 남겨놓고 중도 퇴임한 바 있다. C 전 원장은 자신의 퇴임 사유와 관련해 “환경부 장관 관련(환경부 블랙리스트) 영향도 약간 작용했겠지만 국회에서 당시 소속 기관에 대한 압박이 있었다”며 “잘 진행하고 있는 해외 사업에 대해 헐뜯고 예산을 깎는 식이었다”라고 말했다. C 전 원장은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조직에 더 도움이 되겠다는 판단을 했고, 이에 ‘개인사유’로 퇴임 의사를 밝혔다. 같은 시기 기상청 산하 여타 기관장도 임기 1년을 남겨놓고 동시에 중도 퇴임했다.

C 전 원장은 “명확히 어떤 경위로 압박이 이뤄졌나”라는 질의에 대해선 “글쎄, 그런 건 민감한 사안이라서 제가 이야기하기가 좀 그렇다”라고 답을 피했다.

윗선의 이 같은 퇴임 압박에 대한 이들 기관장들의 이의제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정치권을 통해 문제가 불거졌던 교육부 산하 기관, 특히 이전 정권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주도했던 역사 관련 기관장들은 박 전 대통령 탄핵 때부터 퇴임 가능성이 제기됐었다고 한다.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등이 대표적 일례다. E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은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그 교과서를 쓰지 않겠다고 하는데 내가 있을 필요는 없었다”며 “교과서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부터가 압박이었다”라고 말했다. 교육부 산하 D 전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교육부 국장, 과장이 여러 차례 찾아와 사표 제출을 요구하는 식으로 압박이 이뤄졌다”라고 말했다.

D 전 이사장은 또 “좀 더 예민하게 이야기하자면 당시 청와대 인사들이 모두 기소되고 대통령 본인부터가 수갑 차고 수의 입은 모습이 공개되면서 분위기 자체가 공포스러웠다. 기관장들도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서로 이런 상황을 공유하는 것조차 어려웠다”라고 회고했다. 당시 정권의 부당한 압박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는 이야기다. D 전 이사장은 지난 2019년 국민의힘 측의 블랙리스트 관련 고발로 2시간 가까이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지만, 그 이후 검찰 수사는 진척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와 다를 바 없었다”

산술적으로만 보면 2017년 5월 문 대통령 취임 후 중도 퇴임한 공공기관장은 상당수다. 2019년 초 국민의힘에선 338개 정부 기관장 및 상임 임원을 대상으로 퇴직 현황 파악을 시도한 바 있었다. 당시 집계했던 338개 중 108개 기관 임원 퇴직 현황에 따르면, 2017년 5월부터 2019년 2월 사이 퇴직한 임원 222명 중 82명은 의원면직, 개인사유, 해임 등으로 중도 퇴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공석이 된 자리 중 일부는 현 정권 관계 인사로 채워지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앞서의 B 전 이사는 “박근혜 정부 당시 ‘문체부 블랙리스트’ 등에 대해 거센 비판을 해놓고는 문 정권도 이와 다를 바 없는 행위를 답습했다”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에서 블랙리스트 고발 및 진상조사를 주도하고 있는 김도읍 의원은 “환경부뿐만 아니라 청와대를 비롯한 전 부처에 걸쳐 자행된 블랙리스트 고발사건에 대해 검찰은 신속한 수사로 관련자들에 대해 엄중한 처벌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정권 블랙리스트 의혹, 시작과 그 경위 정권 압박에 수사 뒷걸음… 대선 끝나자 산업부부터 정조준

이른바 ‘블랙리스트’ 의혹은 2018년 12월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의 폭로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김 전 특별감찰반원은 당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 사표 제출 현황 문건’을 공개하며 ‘청와대 차원의 별도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 의혹’ 등을 제기했다. 여기서 ‘블랙리스트’는 공공기관 임원을 현 정부 지지 인사로 교체할 목적으로 330여개 공공기관 임원들의 정치성향과 세평을 담은 문건을 일컫는다.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김 전 특별감찰반원의 폭로를 기반으로 일부 공공기관들 진술을 모았고, 2018년 말부터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 관련자들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여러 차례 고발했다. 김도읍 의원실에 따르면, 국민의힘 측은 2018년 12월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건’ 고발, 2019년 1월 ‘청와대 특감반 330개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작성 수사 의뢰 건’ ‘보훈처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건’ ‘산업부 산하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건’ 고발, 2019년 3월 ‘국무총리실·과기부·통일부·교육부 산하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건’ ‘원자력 관련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건’ 등을 고발했다.

이 중 대법원 유죄 확정판결이 난 건 환경부 블랙리스트 건뿐이다. 청와대 특감반 블랙리스트 작성 수사 의뢰 건은 ‘혐의 없음’으로 결론이 났으며, 원자력 관련 공공기관 및 보훈처 산하기관 블랙리스트 건은 불기소 결정이 났다. 나머지 국무총리실, 과기부, 통일부, 교육부 건은 2019년 일부 참고인 조사만 진행한 뒤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않았다.

검찰이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를 재개한 건, 지난 3월 20대 대선에서 정권 교체가 이뤄지고 나서부터다. 검찰은 지난 3월 25일과 28일 산업부 산하기관 압수수색에 나서는 등 산업부 블랙리스트 수사에 우선적으로 주력하고 있다. 검찰에선 “올 1월 환경부 블랙리스트 건이 대법원 유죄 판결이 남에 따라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를 진행하게 됐다”라는 입장이지만, 정치권에선 “정권 눈치를 보다 대선이 끝나자 수사가 다시 시작됐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향후 검찰 수사망은 앞서 고발된 부처를 비롯해 이번 주간조선 취재로 드러난 농림부, 외교부, 기상청 등 여타 부처로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측 고발장 내용을 근거로 삼을 때 현재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오를 수 있는 기관들은 산업부 산하 남동발전·남부발전·서부발전·중부발전·무역보험공사·지역난방공사·에너지공단·한국광해광업공단,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조세재정연구원·대외경제정책연구원·산업연구원·통일연구원·한국개발연구원·한국교육개발원·한국교육과정평가원·한국노동연구원·한국보건사회연구원·여성정책연구원·한국행정연구원, 과기부 산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한국과학창의재단·한국나노기술원·에너지기술평가원·한국원자력연구원·대구경북과학기술원, 통일부 산하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교육부 산하 동북아역사재단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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