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선후보는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까. 당내 비주류였던 이 전 후보는 지난해 10월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되면서 명실상부한 당의 중심이 됐다. 하지만 대선에 패배하면서 이 전 후보는 이제 재기를 위해서는 당내 세력부터 다시 규합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다음 대선까지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고, 그 사이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16일 이 전 후보는 대선 패배 뒤 민주당 의원들과 지역위원장들에게 전화를 걸어 “고생하셨다”고 격려하고, “제가 부족했다. 나 때문에 졌다”는 미안한 심경과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 전 후보는 대선 패배 뒤 경기도 성남의 집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최근 이 전 후보에게 “너무 실망하지 마시라”는 격려 문자를 보냈다는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 전 후보로부터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답신만을 받았다고 전했다.
대선에 패배한 민주당은 빠르게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다. 당장 지방선거가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윤호중 비대위를 두고 의견이 둘로 갈린 상황이다. 대선에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선에 책임이 있는 윤 위원장을 당의 간판으로 세우는 게 맞느냐는 반발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당내에서는 지방선거 때 이 전 후보의 재등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김두관 의원이 대표적이다. 김 의원은 지난 3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지선(지방선거) 출마자 3158명이 이재명 비대위원장을 원한다”며 “(이 전 지사도) 비대위원장으로 지방선거를 이끄는 것을 다시 한번 신중히 검토해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수진(동작을) 의원도 김 의원과 비슷한 의견을 냈다.
하지만 이 전 후보의 지방선거 등판은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윤호중 비대위를 엎느냐 마느냐 싸움이 난 판에 대선에 진 후보가 나서는 건 아무래도 좀 그렇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며 “지방선거가 지나고 당이 큰 위험에 처하거나 할 때 후보가 다시 등판할 것”이라고 말했다. 완전히 추대 형식으로 당이 한마음이 되어 이 전 후보를 추대해도 될까 말까인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 나서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권지웅 민주당 비대위원도 지난 3월 14일 TBS 라디오에서 “후보께서 직접 움직이시게 되면 대선의 연장선으로 이 국면이 진행될 것”이라며 “좀 다른 사람들이 역할을 해서 이 위기나 어려움을 좀 극복해내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총선 때 세력 갖추고 재등판 유력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이 전 후보가 이번 지방선거에 등판할 확률은 높지 않다. 시기적으로도 이 전 후보에게 등판 시점이 좋지 않다. 지방선거는 시점상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초다. 국정지지율이 높은 대통령 임기 초의 특성상 민주당이 고전할 가능성이 높다.
통상 임기 초에 치러지는 선거는 여당이 정권 덕을 보는 경우가 많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5월 10일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6월 1일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컨벤션 효과를 바로 누릴 것”이라며 “그런 상황에서 당내 상황까지 분열되어 가면 지방선거는 너무 힘들어진다”고 내다봤다.
그렇다면 이 전 후보는 언제 다시 모습을 드러낼까. 가장 유력한 시점은 2024년 국회의원 총선 때라는 시각이 많다. 총선은 윤석열 정부 3년 차에 치러진다. 자연히 정권에 대한 평가 성격을 띨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대표 시절 이 모델을 택했었다.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 패한 문재인 당시 후보는 선거 직후에는 바로 잠행을 택했다. 2013년과 2014년까지 문 전 후보의 모습을 중앙 정치 무대에서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그의 복귀는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의 재보궐선거 참패를 계기로 이루어졌다. 2014년 7월 국회의원 15석이 걸린 재보궐선거가 치러졌는데,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이 총 15석 중 11석을 석권하면서 압승한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4석만을 가져가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고, 선거 직후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그리고 문 전 후보는 이듬해인 2015년 2월 당시 문희상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치러진 전당대회에서 새 당대표로 선출됐다. 중앙 무대에 복귀한 문 대표는 차근차근 당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우선 “당의 체질을 바꾸겠다”며 혁신위원회를 꾸렸다. 혁신위 위원장은 훗날 문재인 정부에서 사회부총리를 지내는 김상곤 위원장이 맡았다. 그리고 대중적 인지도가 높던 조국 서울대 교수가 이 혁신위 위원으로 포함되면서 중앙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다. 친문 세력의 전면 등장이었다.
문 대표가 중심에 서면서 당명도 더불어민주당으로 바꿨다. 당시 영입된 외부 출신 인사 중 한 명인 손혜원 홍보위원장이 새 당명을 지었다. 이외에도 표창원 경찰대 교수, 양향자 삼성전자 상무 등 수많은 새로운 인재들이 문 대표를 통해 영입됐다.
민주당이 친문 정당으로 탈바꿈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16년 총선이었다. 문 대표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영입해 치른 2016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을 이끌고 123석을 확보해 원내 제1당으로 발돋움했다. 문 대표 입장에서는 의석 수보다도 내용이 더 좋았다.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를 맡았던 안철수 대표는 자신의 세력을 이끌고 국민의당을 새로 창당해 떨어져 나갔다. 새로 당선된 이들은 대부분이 문 대표를 통해 영입된 ‘문재인 키즈’였다. 이후 김종인 위원장은 당에서 나갔고, 더불어민주당은 완전한 친문 정당으로 탈바꿈했다.
이러한 ‘문재인 모델’로 비춰보았을 때 이재명 전 후보는 민주당을 어떻게 장악해 나갈까. 우선 당내 상황만 보면 2012년 패배한 문재인 당시 후보보다 나쁘지 않다. 우선 성적표가 좋다. 박근혜 당선인에게 3%포인트 이상 차로 진 2012년의 문 후보에 비해 이재명 후보는 윤석열 당선인에게 0.73%포인트 차이로 졌다. 당 핵심 보직인 사무총장직도 이 전 후보의 측근인 김영진 의원이 그대로 갖고 있다. 김 의원은 이 전 후보의 최측근인 ‘7인회’ 중 한 명으로, 대선 때도 당 사무총장과 선대위 총무본부장을 맡았었다.
반면 이 전 후보가 더 불리한 점도 있다. 사법 리스크다. 윤석열 당선인의 취임 뒤 검·경의 칼날이 이 전 후보를 향할 수 있다. 윤 당선인은 앞서 ‘대장동 의혹’에 대해 “국민이 다 보시는데, 부정부패 진상을 확실히 규명할 수 있는 어떤 조치라도 해야 한다”며 사실상 수사를 예고한 바 있다. 이미 취임 전부터 경찰이 이 전 후보의 옆집을 경기주택도시공사(GH) 직원들의 합숙소로 이용했다는 의혹을 조사하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방선거 성적표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려운 선거가 될 것”이라며 “선거 결과가 나온 뒤 당이 큰 위험에 처할 경우 자연스럽게 이 전 후보의 등판이 요구되는 시점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