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선은 타인의 눈에는 어떻게 각인되고 있을까. 해외 언론이 전하는 한국의 20대 대선 모습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진흙탕 싸움’과 같은 낯 뜨거운 지적이 나오고 ‘한국 유권자들이 (대선을) 혐오스럽다고 얘기한다’는 인용도 더해진다. ‘역겨운(distasteful)’이라는 원색적 표현을 쓰는 곳도 있다. 일부 외신은 정책적 평가를 하지만 ‘무당’이나 ‘역술’이 등장하는 자극적 선거를 해괴하다는 듯 서술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 “누가 되든 한국 경제 변화 없다”
‘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왜 미국에 중요한가’. 지난 1월 26일 미국의 대외정책을 다루는 권위지인 ‘포린어페어(Foreign Affair)’가 뽑은 제목이다.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이랬다. “이번 선거가 여야의 견해 차이를 넘어 실질적인 외교정책의 차이가 있는 첫 한국의 선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포린어페어가 지목하는 정책의 차이는 후보 간에 나타난다. 대북 문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 에너지와 기후 문제, 중국과의 관계 등에서 모두 다르다고 본다. 원자력 문제의 경우 야당 후보가 승리하면 다시 한번 핵에너지 시장에서 한국이 중요한 플레이어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중국과의 관계도 마찬가지. “한국의 보수파는 중국의 경제적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전략적 명확성’과 그에 따른 정책을 주문하고 있지만 집권 여당은 바이든 행정부에 합류하는 데 있어서 더 신중하다”는 게 글을 쓴 빅터 차의 분석이다. 빅터 차는 조지타운대학교 교수로 부시 행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한반도 담당을 맡기도 했다.
간간이 한국의 대선 소식을 전해오던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2월 8일 자 기사를 통해 ‘스캔들’ ‘말다툼’ ‘모욕’으로 이번 선거를 총체적으로 집약했다. 토지개발 비리 의혹과 무당이 등장하는 선거 드라마가 후보들의 가족으로까지 확대되는 과정을 기사로 풀어냈다. 특히 이번 대선이 ‘차악을 뽑는 선거’라는 혹평을 받고 있기에 선택한 후보의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유권자가 결과에 불만족할 것이라는 게 워싱턴포스트가 내린 결론이다.
경제 전문지 ‘포춘’은 지난 2월 25일 자 기사에서 이번 대선이 기술 강국인 한국에 줄 영향을 진단했다. 포춘이 내린 결론은 이랬다. “두 주요 정당 모두 한국 경제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해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누가 되든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진 않는다.” 특히 선거 때마다 모든 후보가 대기업을 개혁하겠다고 약속하지만 아무도 그 서약을 이행하지 않았고 이번에는 그런 개혁을 하는 시늉조차 후보들이 하지 않는다고 포춘은 지적한다. 특히 “한국 경제는 크게 변했지만 보수주의자들조차 국가가 경제를 지배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게 이 매체의 시각이다.
영국 “MSCI지수? 적절한 선거 소재”
유럽에서 한국은 자주 다루는 소재가 아니다. 그나마 영국 매체들은 좀 더 관심을 갖는 모양새다. 지난 2월 13일 자 일간지 ‘더타임스(The Times)’의 일요판은 후보들의 부인들까지 대선판에 끌려 들어가는 모양새에 주목했다. 이 매체는 이번 대선이 한국의 35년 민주주의 역사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선거’로 불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더타임스는 이번 대선을 이렇게 소개한다. “한국의 문화는 전 세계를 휩쓸었는데 엘리트들의 추잡한 면이 드러나고 있는 새로운 쇼가 열리고 있다. 2022년 대선이다.”
일간지 ‘텔레그래프(Telegraph)’는 색다른 시각에서 대선을 바라봤다. 탈북자 문제와 연결했다. 지난 2월 26일 자 기사에서는 대선 결과를 유심히 지켜보는 탈북자를 소개했다. 그는 탈북자 시민단체서 일하는데 현 정부가 전단 살포 등에 제약을 건 탓에 윤석열 후보의 당선을 바라고 있다. 텔레그래프는 “탈북자들은 좌파정당이 대북 관계에 있어서 자신들을 아픈 부분으로 여기기 때문에 관련 정책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탈북민이 갖는 불안정에도 주목했다. 탈북자 월북 사건에서 보듯 “탈북자를 향한 보이지 않는 편견과 차별이 한국에 있지만 이번 선거가 그런 문제에서 변화를 가져오진 않을 것”이라는 게 텔레그래프의 지적이다.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는 정책 평가에 나섰다. 지난 2월 17일 자 기사가 주목한 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MSCI 편입 공약이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지수는 일종의 펀드 성과 측정의 기준이다. 펀드들은 MSCI가 내놓는 지수에 따라서 기계적으로 주식을 사고팔게 된다. 특히 선진국 지수를 벤치마크로 활용하는 펀드 규모가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에 한국이 MSCI에 편입될 경우 해외자금이 안정적으로 국내 증시에 유입될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한국이 MSCI 지수에서 1.6%의 가중치를 가질 것이라고 계산하면 약 440억달러의 외국 자금이 한국 주식으로 유입되는 것을 뜻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여기에는 위험도 있다. 정부가 신경 쓰는 재벌기업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선진지수 편입은 국가적 자부심을 당혹감으로 바꿀 수 있다. 기업이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경영되는지를 살피는 조사가 이뤄질 수도 있는데 여기에 재벌이 희생자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이 문제가 선거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적절하다”는 게 파이낸셜타임스의 시각이다.
프랑스 “AI 후보와 딥페이크 민주주의”
프랑스 언론에서 한국 대선의 기사를 찾아보는 건 쉽지 않다. 일간지 ‘르파리지앵(Le Parisien)’은 김건희씨 녹취록에 관심을 보였는데 다른 언론들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매체가 대선에서 빚어진 의혹과 사건을 소개하는 정도에 그쳤다. 그중 시사주간지 ‘렉스프레스(Lexpress)’가 주목한 건 한국의 IT 기술과 선거의 만남이었다. 윤석열 캠프가 만든 AI 후보를 소개했는데 관련 웹페이지가 수백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한 점과 제작과정 등을 기사에 담았다. 렉스프레스는 딥페이크 기술과 선거의 상관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이 매체는 “한국 선거관리위원회는 잘못된 정보를 유포하지 않는 조건으로 AI 아바타를 허용했지만 이런 딥페이크 기술은 잘못된 정보를 전파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우려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문제 전문 월간지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Le Monde Diplomatique)’는 2월호에서 한국 대선에 두 꼭지를 할애했다. 한국이 당면한 사회적 의제에 집중했는데 먼저 ‘권력의 관문에서의 보편적 소득’이란 기사는 이재명 후보의 기본소득을 다루고 있다. 2007년 대선에서 처음 소개된 기본소득이 한국 내에서 꾸준히 발전하게 된 과정, 기본소득당이라는 정당의 출현, 경기도에서의 기본소득 실험, 그리고 이 후보 반대 진영의 ‘유토피아적 발상’이라는 비판 등을 언급한 뒤 이 후보의 기본소득 구상을 프랑스 사회당 대선후보였던 브누아 아몽의 정책과 비교했다.
또 다른 기사인 ‘한국 모든 계층의 부동산 위기’를 보면 프랑스인의 눈으로도 한국 대선의 핵심 쟁점이 집값 폭등과 가계부채라는 걸 알 수 있다. 이 기사는 자영업자가 취업인구의 4분의1을 차지하는 한국적 특수성의 불안을 비판하며, 현 정부와 정반대의 경제 정책 노선을 표방하는 윤석열 후보의 움직임을 소개했다.
독일 “복지국가 논의 벌어지는 한국”
독일의 유력 매체 ‘디차이트(Die Zeit)’가 주목한 것도 기본소득이다. 지난 2월 17일 자 기사로 이재명 후보와의 인터뷰가 실렸다. ‘청년을 위한 기본소득’이라는 기사에서 디차이트는 이재명 후보의 기본소득과 기본금융 정책을 소개하며 “한국처럼 설득력 있는 자본주의 국가는 거의 없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사실일까라는 게 이번 대선 캠페인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진단한다. “이번 선거에서 기본소득 정책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이제는 복지국가로의 전환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라고 설명한다.
일본 “이재명이 대일 강경파다”
일본 포털에는 우리 언론도 일본어 번역 기사를 공급한다. 자연스레 한국 대선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달받을 수 있다. 일본 언론의 관심은 차기 정부의 대일 정책에 몰려 있다. ‘아사히신문(朝日新聞)’처럼 우리네 대선을 별도 섹션으로 운영하는 매체도 있을 정도다. 지난 2월 18일 자 아사히신문은 이재명·윤석열 캠프 관계자를 서울에서 직접 만나 ‘새 정부가 대일 외교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직접 묻기도 했다. 지난 2월 14일 자 ‘마이니치신문(每日新聞)’은 “중국의 야망과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동아시아 불안정 때문에 두 동맹국과의 긴밀한 공조가 필요하다”며 “이재명·윤석열 두 후보 모두 일본과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식민지 역사와 영토 문제 등 오랜 분쟁까지 해결할지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다만 이 신문은 “이재명 후보가 일본에 더 강경하다”고 결론짓는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움직임도 주목받는데 영문 매체인 ‘재팬타임스(Japan Times)’는 “올여름 참의원 선거 전까지는 일본의 정책 전환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시다 총리가 새로운 상대에 서둘러 대처하는 것이 역효과를 일으키거나 선거 이슈를 만들지도 모를 위험이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중국 “반중 발언? 정책 실행 못 한다”
중국 언론의 한국 대선 보도는 중국의 이익과 맞닿는다. 선거 동향 정도를 전하는 기사를 제외하면 한국 대선을 언급하는 기사는 크게 두 부류다. 하나는 반중 정서와 관련해서다. 지난 2월 10일 ‘환구시보(擐球時報)’는 이재명 후보의 ‘중국 어선 격침’ 발언, 윤석열 후보의 ‘한·미 동맹 강화’ 기고문을 보도했다. 환구시보는 “친중 성향이던 이재명 후보의 태도가 바뀐 건 한국 내 반중 정서를 의식해서”라고 분석했다. 다른 하나는 한국의 대중국 정책이다. 지난 2월 25일 환구시보의 영문판 ‘글로벌타임스’는 뤼차오 랴오닝대 교수의 칼럼을 실었는데 제목이 이랬다. ‘한국 선거운동의 발언이 미래 대중 정책을 암시하는 건 아니다’.
칼럼은 주로 한·중 관계에 비판적인 윤석열 후보를 중심으로 흐른다. “윤 후보의 선거운동 기간 발언은 지나쳤지만 한국 유권자들의 반중 감정을 배경으로 한 발언이다. 한국의 선거는 미국과 유사해 정치인들이 선거운동 중 한 발언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며 당선되더라도 향후 정책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윤 후보와 국민의힘 모두 미국이 주도하는 반중 클럽에 가입할 경우 생길 불이익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정책에 있어서는 매우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이 칼럼이 내린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