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신세계가 복합쇼핑몰 개발을 추진했다가 지역 상인과 정치권의 반대로 무산된 광주 서구 이마트 광주점과 신세계백화점 광주점 일대. photo 이동훈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광주 복합쇼핑몰’ 공약의 파장이 크다. 윤 후보의 ‘복합쇼핑몰’ 언급 직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호남 지역 득표율 목표를 기존의 25%에서 30%로 상향조정했다. 윤 후보의 ‘복합쇼핑몰’ 발언이 호남 지역 2030세대의 가려운 곳을 정확히 긁어줬다는 판단에서다. 반대로 그간 광주를 표밭으로 삼아왔던 더불어민주당은 급소를 찔린 기색이 역력하다. 급기야 민주당 측은 “광주 복합쇼핑몰을 반대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사실 윤석열 후보의 ‘광주 복합쇼핑몰’ 발언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복합쇼핑몰’의 범주를 어디까지로 보느냐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수 있지만, 6대 광역시 중 하나인 광주에는 비록 초보적 형태지만 ‘복합쇼핑몰’이 이미 몇 군데 존재한다. 지난 2월 21일 찾아간 광주 서구 광천동의 광주종합버스터미널(광천터미널). 광주의 대표관문 중 하나인 광주종합터미널은 고속·시외버스터미널과 함께 대형서점(영풍문고), 영화관(CGV), 갤러리, 식당가가 한데 모여 있는 곳이다. 또 같은 부지에 있는 백화점(신세계)은 물론 길 건너에 있는 대형마트(이마트)와도 지하보도로 이어져 초보적 형태의 복합쇼핑몰로 부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광주 서구 풍암동의 광주 월드컵경기장 내에 있는 롯데아울렛 광주월드컵점도 규모는 작지만 복합쇼핑몰의 일종이다. 당초 롯데마트가 있던 곳을 2008년 재단장해 중저가 이월 상품 등을 취급하는 아울렛(롯데아울렛)과 가전양판점(롯데하이마트), 완구전문점(토이저러스), 전문식당가, 문화센터 등이 들어선 복합쇼핑몰 형태로 확대재편한 곳이다. 롯데아울렛은 택지지구로 조성된 광주 수완지구에도 한 곳이 더 있다. 수도권과 부산권을 중심으로 들어선 스타필드나 롯데몰만큼은 아니지만, 딱히 복합쇼핑몰이 아니라고 규정짓기도 애매한 곳들이다. 창고형 할인매장은 지난 1월 21일, 광주광역시청 등 관공서가 몰려 있는 상무지구에 ‘롯데마트 맥스(Maxx) 상무점’이 문을 열면서 갈증이 해소됐다.

광주에 있는 이들 복합쇼핑몰은 2009년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 서울 영등포 경방 타임스퀘어 등장과 함께 시작된 본격적인 ‘몰링(Malling)’을 하기에는 수준이 한참 떨어진다. 유스퀘어는 1992년 금호고속이 광주 광천동에 세운 광주종합터미널에 수십 년간 증축과 리모델링을 통해 주변에 신세계백화점, 이마트와 얼기설기 인위적으로 붙여놓은 집합체에 불과하다. 롯데아울렛 광주월드컵점과 광주수완점도 기존 롯데마트를 증축한 뒤 아울렛과 영화관(롯데시네마) 등 기능을 추가해 각각 2008년과 2012년 롯데아울렛으로 확대재편한 데 불과하다.

지난 1월 광주 최초의 창고형 할인매장으로 문을 연 ‘롯데마트 맥스 상무점’도 기존의 ‘롯데마트 상무점’ 건물 내부를 리모델링해서 간판만 바꿔 단 데 그쳤다는 평가다. 같은 날 찾아간 이곳은 기존 대형마트를 개조한 곳이라 그런지 창고형 할인매장이라고 하기에는 층고와 상품매대의 높이도 낮을뿐더러, 상품 가짓수(SKU)도 많이 부족해 보였다. 업계 선발주자인 코스트코나 이마트 트레이더스 매장과 비교했을 때 부족한 점들이 많아 보였다.

2015년부터 신세계가 추진했던 광주 복합쇼핑몰 예상조감도. 건물 귀퉁이 빌딩이 금호월드다. photo 신세계

신세계 개발 타진 광주종합터미널

이러한 현주소는 바꿔 말하면 호남 최대 도시 광주에는 여전히 최신식 복합쇼핑몰이 들어올 공간이 있다는 말과 같다. 광주에서 복합쇼핑몰이 들어설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은 역시 광주 시내 중심가인 광주종합터미널 일대다. 2019년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신세계는 2015년부터 광주종합터미널 옆 이마트 광주점 자리에 백화점과 대형마트, 특급호텔 등이 어우러진 복합쇼핑몰을 계획했었다. 하지만 주변 상인들의 조직적 반발과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반대로 계획을 접었다. 지난 1월 화정 아이파크 아파트 공사 중 외벽붕괴 사망사고가 난 곳이 바로 옆이다.

광주종합터미널 일대는 주변 상권과 유동인구 등을 봤을 때 여전히 복합쇼핑몰 입점 가능성이 가장 큰 곳 중 하나로 꼽힌다. 신세계도 유통 빅3(신세계·롯데·현대백화점) 가운데 가장 먼저 광주에 진출했을 정도로 호남 지역에 나름의 애정을 갖고 있다는 평가다. 신세계가 신세계백화점 광주점을 지역에 세금을 납부하는 현지법인 형태로 개설한 것은 지난 1995년. 라이벌인 롯데백화점 광주점(1998년)에 비해 빨랐다.

신세계는 그간 서울 반포 호남선 고속터미널(센트럴시티), 인천종합터미널, 동대구 고속·시외터미널, 대전 복합터미널 등 버스터미널을 낀 복합쇼핑몰 개발에 유독 강점을 보여왔다. 신세계 광주점은 광주종합터미널 부지 일부를 임차해 입주해 있는 터라, 2019년 인천종합터미널을 롯데에 빼앗긴 것처럼 쫓겨날 염려가 상존하고 있어 자체 부지 확보가 시급한 상황이다.

복합쇼핑몰 입점에 따른 주변 상인들의 반발은 신세계가 넘어서야 할 과제다. 신세계가 복합쇼핑몰 조성을 추진한 이마트 광주점 바로 옆에는 ‘금호월드’라는 전자도매상가가 있다. 서울 광진구 테크노마트와 유사한 전자도매상가로 광주를 연고로 하는 금호건설이 개발해 분양한 곳이다. 금호월드 일부 상인들은 과거 신세계가 바로 옆 이마트 자리에 복합쇼핑몰을 추진하려 하자 지역 정치권과 함께 결사 반대한 바 있다.

‘금호월드’ 상가 외벽에는 ‘호남 최대의 복합쇼핑몰’이란 간판도 걸려 있었는데, ‘복합쇼핑몰’이 새로운 ‘복합쇼핑몰’의 등장을 가로막는 일이 벌어진 셈이다. 인근에서 만난 한 주민은 “금호월드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신세계백화점이나 이마트에 비해 매장관리가 잘 안되다 보니 별로 찾는 사람도 없다”며 “오히려 바로 옆이 복합쇼핑몰로 개발되면 상가를 찾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늘지 않겠느냐”고 했다.

롯데가 눈독 들인 광주송정역

광주송정역 일대도 복합쇼핑몰 개발설이 꾸준히 나오는 곳 중 하나다. 호남선 모든 열차가 정차하는 광주송정역은 광주의 대표관문 중 한 곳이다. 하지만 이날 찾아간 광주송정역 일대는 호남 최대 기차역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남루하기 그지없었다. 역사 규모 자체도 동대구역이나 대전역 등 다른 광역시 관문역에 비해 협소할뿐더러, 역 앞 대로변은 렌터카 주차장 등 공터로 쓰이는 실정이었다. 지방소도시에서도 쉽게 찾기 힘든 여인숙이 역 근처에서 여러 곳 눈에 띄기도 했다.

광주송정역 일대도 지난 2015년 호남고속철 1단계 개통 때부터 동대구역 역세권에 들어선 신세계백화점 대구점처럼 복합개발이 추진돼 왔다. 특히 광주송정역 바로 남쪽에 광주지방철도경찰대와 코레일 전기사업소, 승무센터 등으로 쓰이는 옛 임시역사 건물은 국유지로 당장이라도 징발이 가능하다. 광주송정역 서쪽에 접한 금호타이어 공장도 유력한 곳 중 하나로 꼽힌다. 중국 기업인 더블스타에 지난 2018년 매각된 금호타이어는 광주와 전남 함평 사이에 조성한 빛그린국가산단으로 이전을 추진 중이다. 공장 이전만 가시화되면 광주송정역과 연계한 대규모 복합쇼핑몰 개발이 가능하다는 평가다.

광주송정역 일대는 과거 롯데가 눈독을 들인 바 있다. 신세계와 달리 롯데는 기차역과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한 역세권 개발에 강점을 보여왔다. 롯데백화점 본점(을지로입구역)과 잠실점(잠실역) 등 연매출 1조원대 점포는 모두 역사를 끼고 있다. 서울역(롯데아울렛), 영등포역(롯데백화점), 청량리역(롯데백화점), 대구역(롯데백화점)처럼 직접 민자(民資)역사 형태로 복합쇼핑몰을 개설한 곳도 적지 않다.

게다가 광주의 구도심인 동구에 있는 롯데백화점 광주점은 신세계백화점과의 경쟁에서 열세에 있어, 또 다른 지역기반 조성이 절실한 상황이다. 반면 광주송정역 일대는 복합쇼핑몰로 개발할 경우, 광주는 물론 전남·북까지 모두 영향권에 둘 수 있어 군침을 흘릴 만하다는 평가다. 오는 2025년 무안공항을 경유해 목포까지 호남고속철 2단계 사업이 완료되면 남으로는 전남 목포, 북으로는 전북 익산까지 상권에 둘 수 있게 된다. 신세계가 복합쇼핑몰 개발을 추진했던 광주종합터미널 일대는 도심 한복판에 있다고는 하나, 철도나 지하철 연결이 안 된다.

광주송정역 복합쇼핑몰 개발 역시 주변 상인들의 반발이 가장 큰 과제다. 광주송정역 일대만 해도 윤석열 후보가 유세 중 ‘복합쇼핑몰’ 언급으로 파장을 일으킨 송정매일시장과 송정오일장 등과 지척이다. 광주송정역 바로 맞은편 매일송정역전시장은 광주시 등이 재래시장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1913 송정역 시장’으로 간판을 바꿔 다는 등 시장 재정비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날 이곳을 찾았을 때는 강추위 탓인지 인적이 뜸했다. ‘광주송정역 제2대합실’로 물품보관함과 출도착 전광판 등을 마련해 놓은 건물도 사실상 방치돼 찾는 사람이 없었다.

복합쇼핑몰 개발 가능 부지 널려

이 밖에 광주시가 16년째 관광단지 조성을 추진 중인 광산구의 어등산 관광단지 부지, 북구의 전남방직과 일신방직 공장부지, 전남 무안공항으로 민간공항과 군(軍)공항 통합이전을 추진 중인 광주공항 부지 등도 복합쇼핑몰 개발이 가능한 잠재부지로 꼽힌다. 어등산 관광단지 부지는 1994년까지 포사격장으로 쓰인 곳으로, 2012년에는 27홀 규모의 골프장도 들어섰다. 광주 시내와 적당히 떨어진 위치에 있어 광주시에서는 오래전부터 쇼핑몰과 특급호텔 등의 유치를 추진해왔다. 하지만 소위 ‘대책위’의 반대로 역시 진척이 없다.

2020년 부동산 개발업체에 넘어간 전남방직과 일신방직 부지는 인근의 기아타이거즈 홈구장인 기아챔피언스필드와 연계한 복합쇼핑몰 개발이 가능하다는 평가다. 서울 영등포 경성방직(경방) 공장터에 들어선 타임스퀘어 같은 모델이다. 하지만 일부 시민단체들이 근대 산업유산 보호를 명분으로 반대하고 있어 쉽지 않다. 반면 광주 지역 복합쇼핑몰 유치를 추진 중인 광주시민회의 측은 “일제시대 우리 여공들이 고생하던 역사의 현장이라는 점을 내세워 보존을 강조하고 있지만, 당시의 시설은 거의 파괴돼 현재 남아 있는 설비들은 대부분 1960~1970년대 이후 지어진 것들”이라며 개발을 주장하고 있다.

광산구에 있는 광주공항은 전남 무안공항으로의 이전이 확정된 바 있다. 국내선 민간공항과 군공항 통합이전이 성사되면 그간 공항으로 인해 고도제한 등 개발이 제한됐던 영산강 유역의 논밭을 비롯해 막대한 부지가 새로 생긴다. 하지만 소음피해가 예상되는 군공항 이전에 반대하는 전남 지역의 반대가 최대 걸림돌이다. 개발가능한 부지는 지천에 널렸는데 다들 이런저런 이유로 추진이 쉽지 않은 셈이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지난 2월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복합쇼핑몰 유치는 지역발전과 소상공인 보호, 시민 삶의 질 제고를 위해 지역사회가 풀어가야 할 현안”이라며 “우리 시와 광주시민은 그런 역량을 충분히 가지고 있고 앞으로 추진과정에서 정치권의 도움이 필요한 사항이 있다면 그때 도움을 요청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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