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오른쪽)가 지난 2월 16일 충남 천안 단국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손평오 국민의당 논산·계룡·금산 지역선거대책위원장 빈소를 조문,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와 대화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국민의당 선거 유세 버스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당원 2명이 숨지는 사고가 지난 2월 15일 발생하자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곧장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빈소를 지켰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도 지난 2월 16일 저녁 각각 예정된 일정을 마치고 직접 충남 천안에 마련된 고 손평오 논산·계룡·금산 지역선대위원장의 빈소를 찾아 안 후보와 독대했다. 이날 윤 후보의 조문은 특히 큰 주목을 받았다. 지난 2월 13일 안 후보가 윤 후보를 향해 단일화 경선을 제안한 이후 처음 대면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이날 윤 후보는 25분간 안 후보와 독대한 뒤 “안타깝고 불행한 일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의 위로라도 드렸다”면서 “여러분이 추측하는 다른 이야기(단일화 관련)는 나누지 않았다”고 말했다. 두 후보가 빈소에서 단일화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고는 했지만, 정치권에서는 불행한 이번 사고가 야권 후보 단일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날 두 후보가 독대를 통해 심적 교류를 나누고, 이를 바탕으로 단일화 논의에 진전이 생길 것이란 이유에서다.

20대 대선이 20여일 남은 현재 정치권의 시선이 가장 집중된 이슈는 단연 ‘야권 후보 단일화’다. 야당은 물론 여당 소속 정치권 관계자들의 눈과 귀도 온통 단일화 관련 소식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최근 정치권 사람들을 만나면 “단일화 어떻게 될 것 같냐”는 주제가 가장 자주 대화 소재에 오른다.

역대 대선마다 단일화는 늘 선거판을 흔드는 주요 변수였다. 1997년 대선에서는 DJP연합, 2002년 노무현·정몽준, 2012년 문재인·안철수, 2017년 (성사되진 않았으나) 홍준표·안철수·유승민 단일화까지. 이번 대선에서 윤석열·안철수의 단일화는 외형만 놓고 보면 1997년 DJP연합, 2012년 문재인·안철수 단일화와 닮았다. 여당 후보(이회창·박근혜)에 맞서 정권교체 여론을 등에 업은 야권 후보들 간의 단일화라는 점에서다.

안 후보가 처음 대선에 도전한 2012년 대선에서 그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단일화에 합의했다. 당시 안 후보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여론조사 대결에서 1, 2위를 다툴 정도로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 지리한 룰 협상에서 문 후보 측과 합의를 보지 못했다. 안 후보 측은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 경선을 주장한 반면, 문 후보 측은 배심원단 평가와 모바일 경선 등을 포기하지 않았다. 안 후보는 결국 “더 이상 단일화 방식을 놓고 대립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며 대선을 20여일 앞둔 시점에서 사퇴했다.

안 후보는 자진사퇴 이후 문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지만, 문 후보는 대선에서 패했다. 당시 여론조사상 박근혜·문재인·안철수 간의 3자 대결에서 문 후보와 안 후보 지지율을 합치면 과반이 넘는 경우가 많았다. 산술적으로만 보면 두 후보의 단일화는 승리를 보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문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로 나서고도 패배한 이유 중 하나는 ‘실패한 단일화’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2012년 대선에서 안 후보 선거를 도왔던 인사는 “안 후보의 자진사퇴는 문재인과도 사전에 협의하지 않은 돌발변수였다”면서 “당시 상황은 문재인이 정당한 승부를 통해 단일 후보로 선출된 게 아니라 민주당이 안철수를 힘으로 찍어 누르는 모양새였다. 그래서 단일화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실패한 단일화가 되면서 정작 과반 득표율은 여당 후보였던 박근혜 후보가 가져갔다는 것이다.

1997년 10월 당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왼쪽)와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문화일보사에서 열린 대선후보 토론회에 참석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photo 연합

단일화의 성공 방정식

2002년 노무현·정몽준의 단일화는 여론조사를 통해 승부를 가려 결정했다. 민주당 노 후보가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승리하자, 당시 한나라당은 “큰 문제없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단일화 이전까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의 양자대결에서는 이 후보가 대체로 5%포인트 앞서 있었다. 하지만 단일화 이후 노 후보의 지지율이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노 후보가 정 후보와의 여론조사 룰 협상 등에서 과감한 승부수를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상황을 아는 정치권 관계자는 “단일화 경선을 한다는 것 자체가 노무현 입장에선 자신의 전부를 걸고 전쟁을 한 것과 다름없었다”면서 “그런 전쟁을 통해 승리했다는 이미지가 ‘시너지’효과를 내 지지율을 단기간에 끌어올린 것”이라고 했다.

1997년 대선에서는 김대중과 김종필 후보가 이른바 ‘DJP 연합’에 합의했다. 김대중은 김종필에게 공직 배분과 총리직을 약속했고, 득표율 40.27%로 이회창(38.74%)을 꺾고 당선됐다. DJP 연합은 내각제 개헌 무산과 대북 정책에 대한 이견 등으로 임기 끝까지 가지는 못했다. 다만 DJP 연합 없이 충청권의 표가 분산됐다면 당시 김대중의 승리는 장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현재 주목받는 윤·안 단일화를 두고도 이 DJP 연합 모델이 현실적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안 후보와 국정 운영 권한을 공유하고, 6월 지방선거에서 공천권 일부를 안 후보에게 양보하자는 주장이다. 대선 이후 국민의힘·국민의당이 합당하면 안 후보에게 당권을 쥐여주자는 목소리도 있다.

이번 대선에서 단일화가 성사된다면 어떤 모델에 가까울까. 물론 안 후보가 독자 완주할 가능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윤 후보 입장에선 앞선 사례들을 종합해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윤 후보가 지지율이 높고 당이 크다는 이유로 안 후보를 ‘찍어 누르는’ 모양새를 보인다면 2012년 문재인 후보의 전철을 밟기 쉽다. 안 후보가 자진사퇴한다고 해도 그의 지지율이 윤 후보에게 오롯이 흡수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2002년 노무현의 단일화는 당초 정몽준과 지지율 격차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측면도 있다. 다만 당시 노무현은 룰 협상 등에 대범한 승부수를 걸었고, 여기서 승리해 단일 후보로 결정되자 지지율이 대폭 상승해 당선될 수 있었다. DJP연합은 김대중이 김종필에게 확실한 지분을 약속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종합하면 단일화를 통해 승리한 노무현, 김대중은 저마다의 결기와 양보가 있었던 셈이다. 이런 점에 비춰보면 윤 후보는 현재 단일화에 대해 아무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언론 인터뷰에서 “후보끼리 마음만 맞으면 단 10분 안에 커피 한잔 마시면서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 사실상 전부다.

이번 대선의 단일화 국면은 안 후보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안 후보는 지난 2월 13일 온라인 기자회견을 통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공식적으로 단일화를 제안했다. 당시 안 후보는 “야권 후보가 박빙으로 겨우 이긴다고 하더라도 식물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압도적 승리를 위해서는 단일화 방식이 두 당사자와 지지자들은 물론이며 아직 후보를 정하지 못한 국민들도 동의할 수 있는 합리적 방식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안 후보는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합의했던 100% 여론조사 방식으로 단일화 경선을 치르자고 윤 후보에게 제안했다.

2002년 12월 18일 17대 대선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왼쪽)와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가 서울 명동에서 공동 유세를 벌이는 모습. photo 연합

안 후보가 단일화 포문을 연 이유

안 후보는 대선 출마 이후 거의 모든 인터뷰 때마다 “대선 완주” 또는 “안일화(안철수로 단일화)”를 주장해왔다. 그런 그가 돌연 먼저 윤 후보에게 야권 후보 단일화를 제안한 이유에 대해 안 후보는 “제가 완주한다고 그렇게 계속 이야기를 해도 정말 집요하게 단일화 꼬리만 붙이려고 하니, 그렇다면 차라리 선제적으로 제안해서 국민의 판단과 평가에 모든 것을 맡기고 제 길을 굳건하게 가는 것이 안철수의 이름으로 정권교체를 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안 후보의 ‘선제적 제안’을 두고 정치권에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왔다. 안 후보가 단일화 여부에 대한 공을 윤 후보 쪽으로 넘기고, 향후 단일화가 결렬될 경우의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렸다. 정권교체 여론에 비해 지지율이 낮은 윤 후보로선 야권 단일화를 고심할 수밖에 없다. 100% 여론조사 방식의 경선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보는 안 후보의 자신감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안 후보의 기자회견 워딩 그대로 이해하면 된다. 특히 언론에서 ‘단일화 할 거냐 말 거냐’만 물으니까, 안 후보도 선제적 제안을 통해 정권교체에 대한 진심을 드러낸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윤 후보 측과의 사전 물밑 교감이나 막후에서 이뤄진 협상은 없었다”면서 “국민의힘이 100% 여론조사 방식의 경선을 받지 않으면 안 후보는 원래대로 독자 완주하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당사자인 국민의힘 반응은 일단 회의적이었다. 윤석열 후보는 “고민해보겠지만 좀 아쉬운 점도 있다”고 첫 반응을 내놨다. 권영세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장은 “단일화 방식에 있어서는 안 후보님 제안에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권 본부장은 “지금은 통 큰 단일화가 필요하다”면서 “정권교체를 이룰 가장 확실하고 바른 길이 무엇인지 헤아려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권 본부장이 언급한 ‘통 큰 단일화’란 사실상 안 후보의 자진사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안 후보의 단일화 제안이 나온 직후 페이스북에 손오공이 부처님 손바닥에 놓인 사진 한 장을 올리며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하는 게 아니라, 역시나 했더니 역시나 한다”며 비판적인 메시지를 냈다. 이준석 대표는 지난해부터 “야권 단일화를 주장하면 ‘거간꾼’으로 간주해 일벌백계하겠다”는 메시지를 내올 만큼 단일화에 부정적이었다. 이 대표는 안 후보와의 개인적 악연과는 별개로, 정치 공학적 단일화는 득표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에서 부정적 메시지를 내왔다.

현재 단일화를 바라보는 국민의힘의 시각은 ‘안철수의 자진사퇴’ 또는 ‘다자대결에서의 승리’ 두 가지로 압축된다. 일단 안 후보의 자진사퇴는 국민의힘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결단하라’며 압박하는 모습을 보였다간 자칫 여론의 역풍을 받을 수 있다. 최근 여론조사상 수치로는 다자대결에서 윤 후보의 신승(辛勝)이 가능할 수도 있다. 다만 윤 후보가 승리하더라도 그 이후가 문제다. 180석의 거대 야당을 상대로 ‘식물 대통령’ 처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윤 후보 입장에서 ‘식물’ 처지를 피하기 위해선 압도적인 득표율, 그리고 또 하나의 아군이 필요하다.

2012년 12월 6일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가 서울 중구 달개비식당에서 무소속 안철수 전 대통령 후보와 회동을 마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photo 뉴시스

무엇을 주고받을 수 있나

윤 후보가 지난해 11월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되기 이전부터 그의 측근들은 향후 ‘안철수와의 연대·단일화’를 꾸준히 조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윤 후보도 여기에 긍정적인 반응이었다고 한다. 다만 안 후보가 독자 완주를 강경하게 피력해왔고, 국민의힘도 지난해 연말 선대위의 내홍 등을 겪으며 단일화에 대해 공개적인 논의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20%대까지 떨어진 윤 후보의 지지율을 다시 끌어올리는 일이 무엇보다 급선무였다. 1월 중순부터 윤 후보의 지지율이 다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자 국민의힘 내에선 “단일화하지 않고도 이길 수 있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겉으로 드러난 국민의힘의 반응이 대체로 부정적인 이유는 최근 다자대결에서도 1위를 지키고 있는 윤 후보가 100% 여론조사 방식의 단일화 경선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선대위 관계자는 “밖에선 윤 후보가 혼자서도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며 ‘오만하다’는 비판을 하지만 100% 여론조사 방식을 받으라는 안 후보의 주장도 현 시점에선 무리 아니냐”며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와 현재는 상황이 다르지 않나”라고 했다.

안 후보는 100% 여론조사가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오세훈 후보와 경쟁할 때와 똑같은 방식이므로 국민의힘이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당시 여론조사상 두 후보의 지지율은 박영선 민주당 후보와의 3자대결에서 오세훈 30% 초반, 안철수 20%대 중반대였다. 현재 40%에 육박하는 윤 후보와 7~10%대의 안 후보의 구도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여론조사업체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공동으로 지난 2월 14일부터 16일까지 성인 1012명을 대상으로 한 2022년 2월 3주 차 전국지표조사(NBS) 결과 윤 후보는 40%, 이재명 후보는 31%, 안 후보는 8%의 지지율을 각각 기록했다. 야권 단일후보 적합도를 묻는 조사에선 윤 후보 43%, 안 후보 36%였다. 단일 후보 경쟁력이 있는 후보를 묻는 질문에 윤 후보라는 답이 59%, 안 후보라는 답은 24%였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시간’도 문제다. 무엇보다 투표용지가 인쇄되는 2월 28까지 열흘 남짓 남은 시점에서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제 와서 여론조사로 단일화 경선을 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지난 2월 17일 CBS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주가 지나가면서 여론조사 방식의 단일화는 사실상 불가능해져 가는 것 아닌가”라며 “시기적이든 또는 이미 우리 당의 많은 분이 여론조사 방식의 단일화는 사실상 어렵다고 판단하고 그런 뜻을 모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선대위 관계자는 “후보끼리 합의한다고 해도, 여론조사 룰을 정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가 없다”면서 “과거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의 경우 두 후보가 단일화에 합의를 했는데도 실무진끼리의 룰 협상에만 열흘 넘게 걸렸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안 후보에게 최대한의 예우를 갖춰주면서 정치적 명분을 살려주는 식으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지난 2월 15일에는 국민의힘이 안 후보의 ‘2027 대선 로드맵을 마련해주는 방안을 구상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이준석 대표는 이에 대해 “안 후보가 단일화를 모색하는 이유도 결국에는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명분을 찾는 과정으로 본다”며 “그 과정에서 꼭 그런 경쟁적 단일화보다는 더 나은 명분을 제시할 수 있는 그런 예우가 있지 않겠느냐는 차원의 메시지로 보면 될 것 같다”고 했다. 그간 이 대표의 날 선 발언에 비하면 크게 물러선 입장으로 해석됐다. 국민의힘 선대위 관계자는 “최근 안 후보에게 부인 김미경 교수의 코로나 확진 등 악재가 겹쳤다”면서 “이럴 때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면서 경쟁보다 화합하는 모습으로 단일화가 되는 게 가장 이상적일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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