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지난 1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대국민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대선에서 이슈가 될 만한 공약이나 발언을 내야 하는데, 당부터 그런 기민함이 떨어지는 것 같다. 후보 본인이 누구보다 고민이 많겠지만 ‘또 심상정이냐’며 진부하게 받아들이는 여론을 어떻게 돌파하느냐도 관건이다. 지금으로선 쉽지 않아 보인다.”

얼마 전 정의당 선대위 관계자에게 ‘사람들이 더 이상 심상정을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다’고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이로부터 며칠 뒤인 지난 1월 12일 심 후보는 공식 일정을 중단하고 칩거에 들어갔다. 후보직을 사퇴하는 것 아니냐는 소문도 돌았지만, 정의당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은 심 후보가 선거판에서 마음대로 내려올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 예측대로 심 후보는 칩거 닷새 만인 1월 17일 국회에서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며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심 후보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죄송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날 심 후보의 발언은 대부분이 반성과 자책, 사죄의 메시지였다. 심 후보는 “이 험난한 길을 이어갈 우리 후배 정치인들이 또다시 절벽 앞에 선 막막한 느낌으로 정치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다음 세대 진보가 심상정의 20년을 딛고 당당하게 미래정치를 열어갈 수 있도록 마지막 소임을 끝까지 완수하겠다”고 했다. ‘총선 불출마를 생각하고 있나’는 질문에는 “미래에 대한 어떤 약속을 드릴 계획은 없다”며 “그것은 또 다른 책임과 판단 속에서 이뤄져야 할 일”이라며 확답을 피했다.

심 후보는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진보정당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꼽혀왔다. 양당제 체제의 국회에서 소수정당 의원으로 4선을 했고, 이 중 3선(경기 고양 갑)이 지역구 선거를 통해 쌓아올린 흔치 않은 이력이다. 다만 현재 정의당은 ‘심상정의당’이라는 비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월 12일 국회 기자회견장 배경에도 ‘심상정의당’ ‘욕심쟁이’ 같은 ‘셀프 디스’ 문구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심상정 외에는 정의당의 존재감과 미래를 제시하는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아픈 지적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다.

실제 정의당 선대위의 한 관계자는 “심상정이 정의당을 떠나고 국회를 떠나면, 그 자리(의석수)를 정의당 후배가 채울 수 있을까. 지역구 3선이라는 심상정의 존재감을 따라갈 만한 정치인이 지금 정의당에 있는가. 이런 고민을 정의당과 심상정 모두가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 후보가 이날 기자회견에서 후배 정치인들을 걱정하면서도 총선 불출마 등에 대해 확답하지 못한 건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는 설명이다.

윤석열보다 뒤진 2030 여성 지지율

이런 차원에서 대선후보인 심 후보의 한 자릿수대 지지율은 당 안팎의 답답함을 키우고 있다. 무엇보다 심 후보의 주요 지지층이었던 2030 여성에게도 유의미한 지지율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난 19대 대선 당시 한국갤럽이 조사한 대선후보 예상 득표율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만 19~29세 여성에게 18%, 30대 여성에게는 12%의 표를 얻을 것으로 전망됐다. 방송 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심 후보는 20대에서 12.7%, 30대에선 7.4%를 득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 후보는 총 6.1%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반면 최근 여론조사에서 심 후보의 지지율은 지난 대선 득표율보다 낮게 나타나고 있다.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지난 1월 9~14일 성인 남녀 303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1월 2주 차 여론조사에서 심 후보는 2.0%를 얻었다. 윤석열 40.6%, 이재명 36.7%, 안철수 12.9%에 이어 4위였다.

이 조사에서 심 후보의 2030 여성 지지율을 살펴보면 만 18~29세 여성에겐 8.9%, 30대 여성에겐 1.3%에 불과했다. 주요 후보들의 2030 여성층 지지율은 이재명 후보가 각각 29.6%와 23.7%, 윤석열 후보가 28.2%·36.6%, 안철수 후보는 22.4%·21.5%였다. ‘이대남’만 타기팅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윤 후보보다도 2030 여성층 지지율이 한참 뒤떨어진 것이다. 정당지지도에서도 정의당은 2030 여성층에 7.0%, 4.2%를 얻어 국민의당(8.7%·14.9%)보다 뒤처졌다. 민주당은 각각 28.5%·27.4%, 국민의힘은 27.9%와 34.1%였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러한 여론을 두고 정치권 안팎에선 크게 두 갈래의 분석을 내놓는다. △2030 여성층에서도 정권교체 여론이 높다는 점 △‘2030 여성=페미니스트’라는 인식의 오류 등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등에 대해 민주당과 사실상 발을 맞춰온 정의당에 정권교체를 바라는 여성 유권자들 상당수가 고개를 돌렸다는 지적이다. 또 정의당과 심상정 후보가 강조하는 여성 정책, 페미니즘 이슈 등에 대해 2030 여성 유권자들도 5년 전과 달리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6석 정당 대부분이 심상정계”

정의당과 심 후보가 핵심 지지층이었던 2030 여성의 표심을 잃고 있는 분위기에 대해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렇게 분석했다. “일단 심상정이 새롭지가 않다. 지난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20대 여성의 15%가 기타 후보를 뽑은 건, 대부분 당시 출마한 페미니스트 후보들에게 간 것이다.(방송3사 출구조사 기준 만 18~29세 여성의 15.1%가 기타 후보에 투표했다.) 신지예 전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와 신지혜 기본소득당 대표 등 젊고 새로운 얼굴의 정치인들이 페미니즘을 전면에 걸고 선거에 나왔고, 이들에게 젊은 여성들의 표가 상당 부분 갔다고 봐야 한다. 그들에 대한 투표는 ‘응원’의 의미도 있었다. 원래 진보정당, 소수정당은 당선이나 집권 가능성을 보기보다 ‘응원’과 ‘신념’으로 투표하는 경향이 있는데, 지금 심상정에게 ‘응원’을 해주고 싶은 여론이 과연 있는가.”

결국 정의당으로선 ‘심상정 이후’의 새로운 얼굴을 내세워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심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완주를 공언했지만, 현재로서 정의당의 ‘차기 주자’는 사실상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대목에선 심 후보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의당의 한 관계자는 “지금 류호정이나 장혜영 등 그나마 주목받고 있는 정의당의 신예 정치인들은 심상정계로 꼽히는 이들”이라면서 “6석 의석 정당에 대부분 의원들이 심상정계로 꼽힌다. 심상정과 차별화된 인물을 지난 총선에서 발굴해 경쟁하며 키웠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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