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대장동 개발의혹 사건 전담수사팀이 2021년 9월 29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자산관리사 화천대유 사무실에서 대장동 개발사업의 특혜 의혹과 관련한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뉴시스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 사업에 투자한 ‘천화동인 5호’ 소유주 정영학 회계사가 검찰에 제출한 녹취록에는 화천대유와 그 관계사인 천화동인 1~7호 실제 소유주와 이들 사이의 이익 배분 문제를 짐작게 하는 대화가 담긴 것으로 29일 알려졌다. 화천대유는 대장동 사업 특수목적법인(SPC)인 ‘성남의뜰’에 참여한 자산관리사(AMC)로 성남의뜰 전체 지분의 1%를 보유하고 있다. 화천대유 관계사인 천화동인 1~7호는 성남의뜰 지분 6%를 보유한 투자사다. 화천대유는 최근 3년 동안 성남의뜰에서 배당금으로 577억원, 천화동인 1~7호는 3463억원을 받았다.

화천대유는 언론인 출신 김만배씨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천화동인 1~7호는 김씨 가족과 지인, 2000년대 중반부터 대장동 개발을 추진한 남욱 변호사, 정영학씨 등이 소유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일부는 실소유주가 아니고, 지분 구조도 겉으로 드러난 것과 다를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지분은 차명 보유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정영학씨가 최근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한 관련 녹취록이 실소유주와 지분 구조를 밝힐 열쇠가 될지 정치권이 주목하고 있다.

정씨는 2019년부터 최근까지 김만배씨 등과 나눈 대화를 녹음하고 녹취록 19개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중 일부 녹취록에 화천대유·천화동인을 다른 사람 이름으로 보유한 차명 대주주 존재를 의심케 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한 인사가 “직원들이 내가 실소유주가 아닌 걸 안다”고 하자, “아니 그걸 다른 직원들이 알면 어떻게 하느냐”고 따지는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 (차명 지분으로 얻은 수익을) 현금화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란 취지의 발언도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일각에선 화천대유·천화동인 1~7호 전체 지분 중 약 절반을 특정인이 가지고 있고, 이 중 절반의 실소유주가 따로 있다는 얘기도 돌고 있다.

/그래픽=백형선

녹취록에는 일부 등장인물이 회사를 설립해 자금을 돌리는 방안을 논의한 정황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지분을 비싸게 사주는 방식으로 돈을 만들고, 나중에 회사는 없애버리면 어떻겠냐”는 취지의 발언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 대화를 주고받은 사람 중에는 화천대유나 천화동인 주주가 아닌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차명 대주주에게 수익을 배분하기 위한 위장회사 설립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정씨가 만든 녹취록에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참여한 대화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씨는 민관(民官) 공동 개발 사업으로 추진된 대장동 개발에서 사업자 선정과 수익 배분 구조 등 사업 계획 수립을 주도한 성남시 쪽 인물이다. 김만배씨와 김씨 동업자인 남욱(천화동인 4호 실소유주) 변호사, 정영학씨(천화동인 5호 실소유주) 등의 카운터파트가 유씨란 것이다.

김만배씨는 법조 출입 기자를 오래하며 법조계 인맥을 쌓아왔다. 김씨는 2015년 남욱씨가 대장동 사업과 관련해 정치권에 금품 로비를 벌인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돼 사업에 위기를 맞자, 남씨 변호인을 주선했다는 말도 나온다. 남씨는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후 순조롭게 사업이 진행됐지만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수천억 원의 이익이 생기자, 세 동업자(김만배·남욱·정영학)는 이를 배분하는 문제를 두고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동규씨는 대장동 사업 구조를 설계하면서 민간 사업자가 과도한 개발 이익을 가져갈 수 있다는 공사 실무진의 우려를 묵살했다는 공사 내부 증언도 있다. 성남도시개발공사가 2015년 대장동 사업 시행사를 선정할 당시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공사 임직원 가운데 한 명은 남욱씨 대학 후배인 정민용 변호사였다. 정씨는 올해 1월 ‘유원홀딩스’라는 부동산 개발 회사를 세웠는데 “유씨와 동업 관계”라고 했다.

야권 “녹취록에 일부 이름·금액 등장”… 유력인사 리스트 나돌아

천화동인 5호 소유주 정영학 회계사가 작성해 검찰에 제출한 녹취록에는 대장동 사업 관련자들의 금품 로비 가능성을 의심케 하는 정황도 담긴 것으로 29일 알려졌다. 녹취록에 일부 유력 인사 이름을 거론하는 대목이 있다는 것이다.

정씨는 민관 공동 개발 방식으로 추진된 대장동 사업 관련자들과 한 대화를 녹음하면서 일부 인사가 “챙겨줘야 한다”는 법조계 등의 유력 인사 이름을 따로 기록해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야권 인사는 “정씨가 작성한 녹취록에는 일부 법조계 인사 이름과 금액도 등장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실제 정치권에선 녹취록에 거론된 인사라며 미확인 리스트도 돌고 있다. 거론된 인사들에 대한 금품 로비가 실제 이뤄졌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씨에게 녹취록을 입수한 검찰 수사팀은 이 부분 규명에 수사력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한 법조계 인사는 “대장동 개발 업체가 수천억 원대 수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나 사업 추진 과정에서 금품 로비가 있었는지가 수사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야권을 중심으로 대장동 민간 사업자에게 50억원을 약속받은 유력 인사 리스트가 있다는 말도 돌고 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이날 “그분들의 명예를 위해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지만 제가 본 명단에는 법조계 인사와 이재명 지사와 친분이 있다고 알려진 인사들이 포함돼 있다”며 “더불어민주당은 명단을 확인해 보시고 내부 규명 절차에 돌입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화천대유 측은 이른바 ‘50억 약속 클럽’ 존재 여부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고 관련 보도에 대해서 법적 조치 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는 지난 27일 화천대유 자금 거래와 관련한 조사를 받기 위해 참고인 신분으로 경찰에 출석하면서 “정치권 로비나 도움을 받은 적은 전혀 없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