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의 진상 규명 지시에 대해 “구체적인 수사 지휘가 아니라 당부였다”는 취지의 답변서를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11일 확인됐다. 이는 대통령의 무리한 수사 지시로 명예가 훼손당했다며 국민의힘 곽상도 의원이 5억원대 민사소송을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앞서 문 대통령은 30대 청년을 모욕죄로 고소했었는데, 이번에는 피고 신분으로 법원에 진술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현직 대통령이 각종 민·형사소송에 직접 나서는 것은 전례가 드물다”는 얘기가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제20회 국무회의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마친후 마스크를 벗고 있다. /뉴시스

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서울 중앙지법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피고 문재인에 대한 청구를 기각하고 소송 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는 판결을 구한다”고 밝혔다. ‘피고 문재인’란에 날인하면서 2019년 3월 18일 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 지시 배경 등을 3쪽에 걸쳐 기술했다. 함께 피소된 조국 전 법무장관이 “상세한 답변은 추후 개진하겠다”고 답변서를 간략히 작성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소송의 쟁점인 ‘특정인을 겨냥한 수사 지시’ 여부는 부인했다. 문 대통령은 “피고는 행정부 수반의 지위에서 국민적 관심이 지대한 사건들에 진상 규명을 당부한 것일 뿐”이라면서 “수사기관 상대로 구체적인 내용의 수사 지휘를 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피고는 위와 같은 당부 중에 원고를 특정하거나 지칭하는 것으로 보일 만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수사 지휘가 아니라 ‘수사 당부’였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당시 문 대통령은 세 가지 사건에 대해 “수사기관이 부실 수사를 하거나 적극적으로 진상 규명을 가로막고 비호·은폐한 정황이 보인다”며 “공소시효가 끝난 일은 그대로 사실 여부를 가리고, 공소시효가 남은 범죄행위가 있다면 반드시 엄정한 사법 처리를 해달라”고 했었다. “검찰과 경찰 지도부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도 했다. 대통령의 지시가 나온 날, 장자연·김학의 사건 검찰 진상조사단은 활동을 2개월 연장했다.

정치권에선 특히 김학의 사건 지시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곽상도 의원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당시 두 달가량의 조사 과정을 거쳐 무혐의가 나올 때까지 950여 건의 언론 보도로 명예훼손을 당했다는 것이 곽 의원 주장이다. 곽 의원은 “최고 권력자가 야당 의원을 염두에 두고 ‘철저 수사 지시’하는 것은 독재 국가에서도 보기가 드문 일”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