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규명위)가 지난해 천안함 폭침 사건 재조사 안건을 별다른 논의도 없이 졸속 처리한 것으로 20일 확인됐다. 당시 회의에서는 천안함 ‘좌초설(說)’을 주장해 온 신상철씨에 대해 “특별한 사실을 아는 사람”이란 보고가 있었지만 아무런 이견(異見)이 나오지 않았다.
본지가 입수한 회의록·속기록에 따르면 규명위는 지난해 12월 정기 회의에서 천안함 폭침 사건 재조사 안건을 상정했다. 천안함 음모론을 폈던 신씨의 진정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실무자는 “이 사건은 일명 천안함 사건으로서 희생자가 상당히 나왔다”며 “본 건 진정인께서는 ‘특별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진정인 적격이 갖춰져 있고, 각하 사유에 해당하지 않아 조사 개시 결정으로 보고드린다”고 했다. 이 위원장을 비롯한 5명의 규명위원은 그대로 받아들였고 회의 막바지에 안건들을 묶어서 일괄 의결했다.
이 위원장이 “오늘 회의는 영상으로 진행돼 도장으로 의결서 서명을 대체하는 것에 동의해주시겠습니까”라고 묻자 일부 위원이 “동의합니다”라고 답변하는 식이었다. 천안함 폭침사건 재조사가 이렇게 결정된 것이다.
당시 회의에 올라온 군 사망 사고 안건은 모두 220건에 달했다. 위원회는 2시간 만에 모든 의결을 완료했다. 안건이 하나 처리되는 데 30초씩 걸린 셈이다.
규명위원들은 회의 시간 상당 부분을 신변잡기식 대화에 할애하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코로나 때문에 워크숍에 위원님들을 모시고 가지 못했다”고 운을 뗐다. 의결이 끝난 뒤에는 “코로나가 생겨서 식사도 대접 못 하고, 우리 위원님들 건배사도 못 듣고 해서 서운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회의에 배석한 위원들을 한 명씩 거명하면서 “○○위원님 건배사를 최대한 빨리 듣도록 기도 많이 해주시면 좋겠다”고도 했다.
2010년 민·군 합동조사단이 ‘북한의 소행’으로 확정한 천안함 폭침 사건 재조사 결정이 알려지자, 전사자 유가족들은 “나라가 미쳤다”고 했다. 천안함생존자예비역전우회 전준영 회장은 “몸에 휘발유 뿌리고 청와대 앞에서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최원일 전 천안함장(예비역 해군 대령)도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에 돌입하기도 했다.
여론이 들끓자 규명위는 지난 2일 임시회의를 열고 천안함 폭침 사건 재조사 안건을 각하했다. 이 위원장은 개회를 선언하면서 “우리가 조사 개시한 사건 중에서 천안함 사건이 있었다”며 “최근에 유족분들이 여러 가지 ‘좋은 말씀’을 많이 주셔서 긴급하게 회의를 열게 된 것”이라고 했다. 5개월 전 천안함 재조사에 의견을 내지 않았던 위원들도 “우리 위원회에서 조사할 사안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럼에도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이 위원장은 이날 “천안함 사건의 전사 장병 유족, 생존 장병들과 국민께 큰 고통을 드려 송구하다”면서 자진 사퇴했다.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은 “즉석요리 하듯이 천안함 재조사 결정을 끝내고 건배사 운운하는 대목은 참담하기까지 하다”며 “위원장 사퇴로 덮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