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 힘 의원총회에서 고별사를 마친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이덕훈 기자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0일 주호영 국민의힘 당대표 권한대행을 향해 “안철수를 서울시장으로 만들려고 작당했었다”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은 또 무소속 홍준표 의원과 가까운 장제원 의원을 향해서는 “홍준표의 꼬붕(‘부하’라는 뜻의 일본어)”이라고 했다. 이에 주 원내대표와 장 의원도 “김 전 위원장의 오해” “김종인은 노태우의 꼬붕”이라 맞받았다. 야권에선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거치며 서로 간에 쌓인 감정이 폭발했다”는 해석과 함께 양측 간에 국민의힘 주류 자리를 둘러싼 쟁탈전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전 위원장은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주 대행은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안철수를 후보로 만들려던 사람”이라며 “(당시) 나한테는 차마 그 말을 못 하고 뒤로는 안철수와 작당을 했다”고 했다. 이어 “내가 그런 사람들을 억누르고 오세훈을 후보로 만들어 당선시켰는데, 또 (합당 같은)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주 대행이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 국민의힘 후보인 오세훈 시장이 아닌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밀었고, 선거 후에도 안 대표와 합당을 추진하는 게 그 방증이란 주장이다.

김 전 위원장과 주 대행 간에는 서울시장 선거 때부터 갈등이 있었다. 김 전 위원장은 야권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안 대표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연달아 냈다. 이에 안 대표가 김 전 위원장을 가리켜 “상왕(上王)”이라고 했고, 급기야 김 전 위원장이 안 대표를 향해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되받는 등 감정 싸움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안 대표를 미는 일부 국민의힘 중진급 인사들이 오 시장을 향해 후보직 사퇴를 종용했다고 김 전 위원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국민의힘 김종인(오른쪽)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대표 대행이 작년 12월 3일 국회에서 열린 당 비대위 회의에 나란히 참석한 모습. 배경의 문구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3년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혼외자 논란으로 물러났을 때 청와대를 비판하며 소셜미디어(SNS)에 쓴 것이다. /이덕훈 기자

김 전 위원장은 이런 움직임의 배후에 김무성·이재오 전 의원 등이 있고, 주 대행도 이들과 연계돼 있다고 의심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이 전 의원은 오 시장과 안 대표 간 후보등록일(3월 18일) 이전 단일화가 무산되자 기자회견을 열어 “김 위원장은 즉각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김 전 위원장은 이런 움직임이 오 시장이 승리하면 자신의 리더십이 강화될 것을 꺼린 국민의힘 옛 주류 세력의 공격으로 본 것”이라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이 장제원 의원을 “홍준표 꼬붕”이라며 비난한 것도 이런 차원이란 해석이 나온다. 장 의원은 김 전 위원장이 안 대표에 대해 ‘사감(私感)’을 갖고 핍박하고, 향후 국민의힘을 배제한 채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정권 창출에 나서려 한다며 ‘노욕에 찬 정치 기술자’라고 비판했었다. 그런데 김 전 위원장은 이를 홍 의원 복당에 부정적인 자신을 공격하려는 의도라고 본 것이다. 홍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과정에서 안 대표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양측의 충돌은 안 대표를 두고 갈라진 묵은 감정이 터져 나온 측면이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야권 세력 내 주도권 쟁탈전이란 게 정치권의 대체적 시각이다. 김 전 위원장은 재임 중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사태에 대해 사과했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이는 영남 출신이 중심이 됐던 국민의힘 주류를 중도적 세력으로 교체하려는 시도로 해석됐고, 이에 영남 인사들이 반발하면서 충돌이 벌어진 측면이 있다”라고 했다. 주 대행과 김무성·이재오 전 의원, 홍준표 의원은 모두 영남 출신이다.

주 대행은 이날 “선거 승리를 위해 단일화가 깨지지 않는 쪽으로 노력했을 뿐 특정인을 도운 적이 전혀 없다”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이 이날 차기 당대표 출마가 유력한 주 대행을 정면 공격하고 나오면서 당대표 선거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거론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김 전 위원장이 당대표 선거에 나설 초선 의원이나 제3의 후보를 보이지 않게 지원할 가능성도 주목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