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활동가 간판을 단 인사가 이번 4·7 재·보궐 선거 기간 중 여당 후보의 선거 행사에 참여하고, 야당 후보 사퇴를 요구하는 등 사실상의 정치 활동을 하고 있다. 정치 활동과 시민단체 활동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사자는 “단체의 정책에 우호적 후보를 지원하고, 비판적 후보를 비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의 사퇴를 요구했다. 안 소장은 “오세훈 후보가 처가의 내곡동 땅 셀프 보상 해명 등 온갖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있다”며 “시장은커녕 정치인 자격도 없다. 즉각 사퇴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안 소장이 있는 민생경제연구소를 포함해 20여 시민단체가 참여했다. 이들은 오 후보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발했다. 정치권에선 시민단체가 특정 후보를 겨냥한 사실상의 ‘낙선 운동’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안 소장은 3월 31일 오후엔 서울 관악구 서울대입구역 인근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의 토크 콘서트에 출연했다. 박 후보가 이세돌 전 바둑기사와 함께 시민과 대화하는 행사였다. 박 후보 선거 유세 차량 위에서 마이크를 잡은 안 소장은 “K 민생대책의 완성은 감히 박영선 후보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오 후보는 용산 참사가 철거민 때문에 발생했다는 엄청난 망언을 했다”며 “이런 사람들이 다시 서울시장이 되면 나는 너무나 슬플 것 같다. 박 후보를 엄청나게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안 소장은 그날 오전엔 서울 중구 시청 앞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대한 입장 발표 공동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전국먹거리연대 등 급식 관련 시민단체들이 참여한 이 기자회견 역시 오 후보의 사퇴를 주장하는 발언이 나왔다. 안 소장은 “무상급식을 반대했던 오세훈 후보는 시장 자격이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선관위는 “단체의 설립 목적과 관련된 기자회견을 일회성으로 실시한 점 등을 고려하면 현재 상태에서는 공직선거법에 위반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선관위는 “특정 후보자를 낙선시킬 목적으로 기자회견을 반복적으로 실시하는 등 집회에 의한 선거 운동에 이르는 경우 공직선거법에 위반될 수 있다”고 했다.
서울대 박원호 정치학과 교수는 “최근 몇몇 시민단체의 정치화, 권력화는 단체 스스로 존재의 이유를 부정하는 꼴”이라며 “특히 시민단체가 선거를 앞두고 한 후보의 개인사 혹은 특정 발언에 대해 꼬투리를 잡고 네거티브 공세를 펼치기보다는, 시민단체가 갖고 있는 전문성을 통해 후보의 정책을 검증하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일 것”이라고 했다.
안 소장이 속한 민생경제연구소에서 공동 소장을 맡았던 임세은씨는 작년 5월 청와대 신임 청년소통정책관에 임명됐고, 그해 9월엔 청와대 부대변인으로 선임됐다. 참여연대 사무총장 출신인 안 소장은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대변인을 맡아 촛불 집회를 주도하기도 했다. 2016년 총선 때는 새누리당 의원들을 상대로 낙선 운동을 펼쳐 1심 벌금 300만원, 2심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은 바 있다. 안 소장은 지난 26일엔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신임 이사로 선임됐다. 민언련은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에 대한 편향적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안 소장은 본지 통화에서 정치 편향 논란에 대해 “그런 비판은 맞지 않는다. 모든 시민단체는 자신들이 제안하는 정책에 따라 우호적인 후보를 지원할 수 있고, 그것을 거부하는 후보를 비판할 수 있다”며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시민단체의 역할은 아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