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이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뉴시스

① 민정수석 빼놓고 검찰인사… 누가 어떻게 한건지 아무 설명없어

청와대는 22일 신현수 민정수석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자신의 거취를 일임한 것으로 이번 사태가 일단락됐다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를 설명하면서 ‘일단락’이란 말을 7번이나 했다. 하지만 대통령에 대한 ‘항명’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초유의 민정수석 사퇴 파동이 벌어진 배경과, 이를 봉합하는 과정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없었다. 애초 문제가 된 검찰 인사 조율 과정에서 박범계 법무장관과 신 수석 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또 박 장관이 인사안을 발표하는 과정에 대통령의 재가가 있었는지, 이 과정에서 신 수석을 패싱한 게 맞는지 등에 대해 납득할 만한 해명은 없었다. 이번 사태에서 문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도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신 수석의 향후 거취도 마찬가지다. 신 수석이 곧 물러날 것인지, 아니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대통령 임기 말까지 직을 수행할 것인지 여전히 불분명하다. 여러 의문점이 남지만 문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 누구도 이번 사태에 대해 속 시원한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국민에게 혼란을 준 점에 대해 사과한 적도 없다.

청와대는 이날 신 수석이 휴가에서 복귀해 거취를 대통령에게 일임했다고 밝히면서도 사퇴 파동의 원인이 된 검찰 간부 인사 과정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 박 장관은 지난 7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유임시키고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을 서울남부지검장으로 영전하는 검사장급 검찰 간부 인사를 발표했다. 친(親)정권 검사들을 유임·영전시켜 ‘정권 방탄 인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신 수석은 이 같은 ‘박범계 인사안’에 반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신 수석은 법무부가 인사 발표를 강행하자 지인들에게 ‘창피해서 못 살겠다’ ‘살면서 다시는 박 장관을 볼 일이 없을 것’ 같은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신 수석이 법무부가 발표한 검찰 인사안에 이견을 보인 뒤 사의를 표했다고 인정했다. 신 수석 ‘패싱’ 의혹에 대해서는 “인사 내용에 대한 신 수석과 법무부 간 조율이 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보고되고 발표가 된 것”이라고만 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후에도 대통령에게 인사안을 누가, 언제 보고했는지는 “통치 행위”라며 설명하지 않았고, 이날까지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검찰 간부 인사 발표 과정에서 박 장관이 문 대통령의 재가를 받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박 장관이 문 대통령의 정식 결재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휴일인 지난 7일 오후 인사안 발표를 강행했다는 것이다. 이에 신 수석은 대통령에게 박 장관에 대한 감찰을 요구했지만 문 대통령은 받아들이지 않고 박 장관의 인사안을 사후 승인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박 장관이 신 수석을 패싱한 것은 물론, 문 대통령의 정식 결재나 사전 승인 없이 독단으로 인사안을 관철했다는 의혹이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지난 21일 정만호 국민소통수석 명의로 “사실이 아니다”란 입장을 냈다. 대통령의 재가 시점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대통령의 인사 재가 과정은 통치 행위다. 낱낱이 공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신 수석이 복귀한 이날도 사후 재가 논란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말씀드렸고 (박 장관에 대한) 감찰을 요구했다는 보도도 ‘신 수석이 건의 드린 바 없다’고 본인 입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후 재가가 아니라면 민정수석과 조율이 끝나지 않은 인사안을 어떻게, 어떤 과정을 거쳐 대통령이 재가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박 장관도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관련 질의에 “청와대에서 발표한 내용으로 갈음하겠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검사장 인사를 대통령이 사전 재가하지 않은 상태에서 장관이 독단으로 관철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많다. 그러나 청와대가 이번 인사안에 대한 문 대통령의 구체적인 재가 시점을 속 시원히 밝히지 않으면서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됐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업무보고에 참석해 야당 의원들의 검찰 인사에 관한 질의에 답하고 있다.

② 방탄인사로 이 사태 불러놓고… 사과 안해

청와대는 이번 사태에 대한 설명은 물론이고 사과나 유감 표명을 한 적도 없다. 특히 ‘정권 방탄용’으로 의심받는 검찰 인사에 대해, 또 그 인사가 초래한 초유의 민정수석 사퇴 파동에 문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신 수석 ‘패싱’ 논란을 문 대통령이 사전에 알았는지, 알면서도 박 장관의 ‘방탄 인사안’을 재가한 것인지 등에 대해 청와대는 침묵했다. 청와대는 “대통령은 거론하지 말라” “청와대에서 이뤄지는 의사 결정 과정을 낱낱이 공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신 수석이 거취를 일임한 날 문 대통령이 보인 반응에 대해서도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 답변은 전해 들은 게 없다”고 했다.

야권은 문 대통령의 침묵이 의도적인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박 장관 등 친문 강경파가 4월 재·보궐 선거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울산시장 선거 개입, 원전 수사 등을 염두에 두고 정권과 가까운 검사들을 유임시키기로 결정했고, 문 대통령도 이를 결과적으로 추인했으면서 모른 척하고 있다는 것이다.

③ 신현수 계속 靑 근무? 후임 정해지면 교체?

신 수석은 나흘간의 휴가를 마친 뒤 22일 청와대에 복귀해 오전 참모 회의와 오후 2시 문 대통령 주재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신 수석 상황에 대해 “자신의 거취를 대통령에게 일임한 상태에서 정상적으로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신 수석이 사의를 명확하게 거둬들인 것인지, 문 대통령이 그를 임기 말까지 계속 쓰겠다고 결심한 것인지 모두 불분명하다. 청와대가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취를 일임했다는 게 사의를 거둬들였다는 것이냐’는 물음에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명확한 답변을 피한 채 “사표냐, 아니냐, 복귀냐, 반대냐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데, 일단락된 사안으로 이해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신 수석이 지금 사의를 철회했다고 하면 틀린 것”이라며 “사의 철회라고 하면 거취 일임이 맞지가 않는다. 대통령 결정을 기다리는 입장”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그러나 문 대통령이 신 수석을 언제까지 데리고 쓸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거취를 일임했으니 대통령께서 결정할 시간이 남았다고 할 수 있다”고만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언제든 대통령이 신 수석의 사표를 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조만간 사표를 수리할 가능성이 있냐’는 질문에 청와대 관계자는 “그건 대통령의 의중이라서 언제 어떻게 어떤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엔 (어렵다)”고 했다. 신 수석이 사의를 유지한 채 후임자를 찾을 때까지만 근무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이제 사태가 봉합된 만큼 신 수석은 임기 말까지 쭉 갈 것”이라고들 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앞으로도 검찰과 부딪칠 일이 많은데 그나마 검찰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신 수석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 일부에선 정반대 주장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선거 국면에서 민정수석의 역할을 생각하면 친문 핵심과 갈등을 빚은 신 수석과 같이 가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당에선 이참에 신 수석을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며 “신 수석 때문에 재난지원금 등 민생 이슈가 묻히면서 국정 지지율까지 깎아먹고 있다”고 했다.

신 수석이 일단 업무에 복귀했지만 그간 불거진 민정수석실 내부 잡음이 사그라들지도 불투명하다. 청와대는 이날도 신 수석과 갈등을 빚은 것으로 지목된 이광철 민정비서관의 거취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이 비서관은 박 장관, 민주당 친문 강경파 등과 같은 편에 서서 신 수석을 ‘패싱’한 장본인으로 주목됐다. 이 밖에 김영식 법무비서관과 이명신 반부패비서관은 전임 김종호 수석 시절부터 사의를 표명한 상황이다. 후임자가 정해지는 대로 물러날 가능성이 크다. 신 수석과 비서관 2명이 함께 물러난다면 사실상 현 민정수석실은 와해되는 셈이다. 신 수석이 당분간 자리를 지킨다고 해도 친문 강경파들의 ‘어정쩡한 동거’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배준영 대변인은 “박 장관과 신 수석이 병존하는 어정쩡한 상황이 계속되는 한 청와대는 레임덕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