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해리스 전 주한 미국대사가 재임 중 한·일 갈등과 관련한 인신 공격을 받은 데 대해 “인종 차별(race baiting)에 놀랐다”고 했다. 일본계 미국인인 그는 재임 중 친여(親與) 지지자들에게서 ‘일제 총독'이라는 말을 들었다. 퇴임 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그동안 쌓인 섭섭함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임기를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는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와 부인 브루니 브래들리 여사가 21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VIP 주차장에서 내려 공항 건물로 들어서고 있다. 2021.1.21연합뉴스

해리스 전 대사는 5일(현지 시각) 공개된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한·일 간에 역사적 갈등이 불거졌을 때 개인적으로 그렇게 많은 공격을 받을 줄 몰랐다”며 이같이 말했다. 해리스 대사는 미국인 부친과 일본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시아계 미국인 최초의 해군 대장 출신으로 미 태평양함대사령관, 태평양사령관을 지내고 2018년 7월 주한 미 대사에 임명돼 2년 6개월 동안 재직했다.

재임 기간 한·일 갈등이 격화하면서 친여 지지자 일부는 그가 일본계라는 점을 부각하며 “일본놈 피가 흘러 찌질하다” “일왕에게서 훈장 받고 주한 대사 부임한 X”라고 비판했다.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도 그를 ‘조선 총독’에 빗대 외교적 결례 논란이 일었다. 해리스 대사는 지난해 인신 공격의 소재가 됐던 콧수염을 면도했다. 또 이 같은 고초를 겪고도 퇴임 직전 “아름다운 나라에서 보낸 시간을 언제나 기억할 것”이라며 “무슨 일이 있어도 미국은 한국 편에 서겠다”고 밝혔다.

한편 해리스 전 대사는 재임 중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세 차례 만난 것에 대해 “어렸을 때 공상과학 소설을 읽곤 했는데도 이런 일은 상상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에서 자신의 카운터파트였던 정경두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해서는 “모든 사안에 동의하지는 않았다”면서도 “이런 게 하나하나 쌓여 우정으로 발전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