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김종철(51) 대표가 25일 같은 당의 장혜영(34) 의원을 성추행한 책임을 지고 당대표직에서 사퇴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성비위 사건을 일으킨 데 이어 다시 진보 진영에서 유력 정치인의 성 비위 사건이 터진 것이다.
정의당 젠더인권본부장인 배복주 부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1월 15일 김 대표의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고 피해자는 장혜영 의원”이라고 밝혔다. 배 부대표는 김 대표가 서울 여의도에서 장 의원과 둘이 저녁 식사를 하고 나오는 길에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다고 했다. 김 대표도 이날 입장문을 통해 가해 사실을 인정했다. 정의당은 김 대표의 자진 사퇴 의사 표명과는 별개로 그를 직위해제하고 제명을 포함해 징계 절차를 밟기로 했다.
김 대표는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작년 10월 당대표에 선출됐다. 당대표 선거 과정에서 ‘민주당 2중대 탈피’를 내거는 등 ‘새로운 정의당’ 노선을 표방했다. 그런 만큼 진보 진영에선 김 대표의 성추행 사건을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특히 인권과 양성평등을 강조해온 진보 진영에서 주요 정치인의 성폭력 사건이 잇따르면서 진보 진영 내부의 권위주의 문화와 진영 논리에 바탕을 둔 ‘내로남불’이 원인이란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안희정 전 지사와 오거돈·박원순 전 시장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가 모두 비서 등 부하 직원이었다. 권력관계에서 우월한 위치에 있는 이들이 벌인 성폭력 사건들이다. 김종철 대표도 성추행 피해자가 현역 국회의원이긴 했지만 정의당 안에서 갖는 정치적 위상은 김 대표가 우위에 있다. 정의당 관계자는 “민노당 시절부터 진보 정당에선 ‘당(黨) 우선주의’ 전통이 강했다”며 “여기에 더해 경직되고 독단적인 운동권 문화가 더해지면서 현역 의원조차 당대표에게 성추행당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을 수 있다”고 했다.
한 진보 정치권 인사는 “김 대표 성추행 사건은 남을 혹독히 비판하면서도 자기 통제에는 느슨한 진보 정치인들의 나쁜 사례로 기록돼도 할 말이 없게 됐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은 이날 대변인 논평을 통해 “충격을 넘어 경악”이라며 “정의당은 무관용 원칙으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이런 입장을 두고도 “안희정·오거돈·박원순 사건 때 보인 태도에 비춰 내로남불”이란 비판이 나왔다.
이번 사건은 4·7 서울·부산시장 선거에 변수가 될 가능성도 있다. 정의당은 그동안 보궐선거 원인을 제공한 민주당은 후보를 내선 안 된다고 해왔다. 그러나 당대표가 성추행 사건에 휘말리면서 같은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정의당은 서울시장 후보로 권수정 서울시의원, 부산시장 후보로 김영진 부산시당위원장이 출마했다. 전(全) 당원 찬반 투표 절차가 남아 있지만 단수 후보라 사실상 확정된 상태다. 그러나 정의당의 한 관계자는 “돌발 변수가 발생해 (공천 문제는) 당 전국위원회에서 논의해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정의당이 후보를 내더라도 민주당 등에서 요구해온 범(汎)여권 후보 단일화 압박이 더 강하게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이날 민주당 인사들 사이에선 “김 대표 사건으로 여권 성향 표 분산 우려가 줄었다”는 기대가 나왔다. 반면 국민의힘에선 “범여권의 성 비위가 부각돼 야권 후보에게 유리할 것”이란 반응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