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filibuster)’는 의회에서 주로 소수파가 다수파의 독주를 막거나 의사 진행을 늦추기 위해 합법적으로 방해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16세기 해적선을 뜻하는 스페인어 ‘필리부스테로(Filibustero)’에서 유래했다. 고대 로마 때 카이사르 집권을 막기 위해 원로원에서 카토가 온종일 연설한 것이 원조(元祖) 필리버스터로 꼽힌다.
우리나라의 첫 필리버스터는 1964년 당시 야당 초선 의원이었던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동료 의원 김준연 자유민주당 의원의 구속동의안 저지를 위해 5시간 19분 동안 연설한 것이다. 최장 기록은 2016년 당시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테러방지법 반대 12시간 31분 연설이다. 이전엔 1969년 박한상 신민당 의원이 3선 개헌을 막기 위해 10시간 15분 동안 발언한 것이 최장이었다. 전 세계적으로는 미국 스트롬 서먼드(Thurmond) 전 상원의원이 1957년 흑인 투표권을 확대·보호하는 ‘공민권법’ 통과에 반대해 24시간 18분 연설한 것이 역대 최장시간 필리버스터다.
우리나라에서 필리버스터는 1973년 국회의원 발언 시간을 규정하는 국회법 조항 신설로 폐지됐다가, 2012년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되면서 재도입됐다. 국내 국회법에선 무제한 토론 방식으로만 필리버스터를 행사할 수 있다. 자리를 비우는 것이 허용되지 않고 의제와 관계없는 발언도 금지된다. 지난 9일 공수처법 개정안 통과에 반대하며 첫 필리버스터 주자로 나섰던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응급 상황에 대비해 기저귀를 차고 연설했다.
반면 미국에선 발언이 의제와 관계 없어도 된다. 성경책이나 동화책, 심지어는 전화번호부나 요리책을 읽는 경우도 있다. 일본 의회에선 기표소까지 천천히 걸어가는 식으로 시간을 끄는 우보(牛步) 전술을 쓰기도 한다. 각종 방법이 동원되지만 필리버스터는 정치적 행동일 뿐 실제 법안 저지 효과는 없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국민적 관심을 모으기 위해 마지막까지 목청껏 연설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