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16일 “여성으로서 첫 외교부 장관이라는 막중한 자리에서 기를 쓰고 다하고 있지만 간혹 ‘여성이기 때문에 이런 건가’ 하는 걸 느낄 때가 있다”고 말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처리부터 최근 전방위 대일(對日) 외교까지 외교부가 주요 현안의 협의·결정 과정에서 ‘패싱(배제)’되고 있다는 논란이 나오자 이런 심경을 토로한 것이다. 외교가에선 “정부의 외교 정책 난맥상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외교 장관이 젠더 문제를 언급한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강 장관은 이날 ‘글로벌 혁신을 위한 미래 대화’ 포럼에 참석해 재러드 다이아몬드 미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가 ‘여성이 역량을 발휘할 환경이 미진하다’고 지적하자 이같이 답했다. 강 장관은 “남성 위주의 기득권 문화 속에서 내가 과연 받아들여지고 있나 하는 질문을 스스로 할 때가 없지 않다”면서 “그럴 때마다 저는 그냥 제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밤에 잘 때 ‘오늘 할 일을 다 했나’에 편한 답을 할 수 있으면 편히 자고 그다음 날을 대비한다”고 했다.
최근 외교부 안팎에선 외교부가 주요 의사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이른바 ‘패싱’ 논란이 거셌다. 강 장관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당시 긴급 안보관계장관 회의에서 배제됐다. 그는 외교·안보 라인 고위급의 비공식 모임에도 자주 초대받지 못했다. 얼마 전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의 일본 방문도 외교부와 충분한 협의 없이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강 장관이 이날 공개 석상에서 젠더 문제를 언급하며 어려움을 토로한 것이다. 3년 반간의 재임 기간 내내 정책 난맥상에 대한 비판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황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강 장관은 “외교부만 해도 간부급 여성이 드물지만 주니어급에서는 다수(多數)”라며 “시간이 흐르면 어쩔 수 없이 여성이 다수가 되면서 많이 바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외교부 조직 문화가 바뀌는 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외교부 안팎에선 "외교 정책에 대한 비판을 왜 여성 문제로 대응하느냐” “리더십을 스스로 깎아 내릴 수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강 장관 취임 후 주영 대사와 외교안보연구소장 등 요직에 여성이 중용됐고, 한·미 관계 현안을 다루는 핵심 부서인 북미 1과장을 비롯해 미·중·일·러 4강국 주무 과장 라인업이 모두 여성으로 채워져 여풍(女風)이 거셌다.
강 장관이 자신에 대한 비판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해수부 공무원 피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패싱당했다’는 지적이 나오자 “저도 회의 개최 통보를 받지 못한 데 대해 문제의식을 느꼈다”며 이례적으로 NSC 상임위원회에 문제 제기를 했다고 밝혔다.
같은 달 26일엔 ‘공관 직원의 성(性) 비위 사건이 잇따르는 것에 대해 책임질 의향이 있냐’는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 질의에 “여러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데 대해서는 장관인 제가 어떤 한계라든가 리더십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외교가에선 “강 장관의 심경 토로가 최근 잦아지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이런 가운데 외교부는 이날 국가정보원과 국회 중심으로 대일 외교가 이뤄지면서 외교부가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강 장관이 지난 13일 박지원 국정원장의 일본 방문에 대해 “충분히 협의했다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패싱론이 급속 확산됐다.
외교부는 이날 오전 설명 자료를 통해 “한·일 간 실시되는 다양한 고위급 교류도 외교부와의 사전 정보 공유 및 협력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또 “표면적 요소에만 근거한 단정적·추측성 기사는 국익 수호·증진 노력에 보탬이 되지 않고 저해할 수 있다”며 “우려의 뜻을 표한다”고 했다. 이를 두고 외교부가 언론 등에서 공론화하는 외교 정책 논쟁에 대해 조금이라도 불리하면 적극 유감을 표명하며 반박부터 하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