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검찰총장은 23일 “우리 사회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퇴임 후 방법을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퇴임 후 정계 진출 가능성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정치권에선 그동안 차기 야권 대선 주자로 윤 총장을 거론했지만, 본인이 관련 발언을 한 것은 처음이다. 여야는 윤 총장의 거취와 진로를 놓고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윤 총장은 이날 새벽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퇴임 후 거취에 대해 “저도 살아오면서 우리 사회의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이 “(봉사) 방법에 정치도 들어가느냐”고 묻자 “그건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했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윤 총장이 내년 7월 말 임기를 마친 뒤 정계에 진출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 총장은 국감에서 “임기는 국민과 한 약속”이라며 “아직 임면권자의 말씀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사퇴하라’는 메시지를 보낼 경우 임기 전에도 사퇴할 수 있다. 윤 총장과 가까운 법조계 인사는 “검찰 인사 파동이 다시 일어나면 조기에 총장직을 그만둘 수 있다”면서 “윤 총장이 ‘임면권자’를 말한 것은 ‘자를 테면 자르라’고 문 대통령에게 공을 던진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치를 하고 싶으면 당장 옷 벗고 여의도로 오라” “인격의 미숙함과 교양 없음이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윤 총장이 야권 주자로 올 수 있다며 기대감을 보였다. 다만 공식적으로는 “공직에 계신 분의 정치 가능성을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23일 새벽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를 마친 뒤 국회 본청을 나서고 있다. 대검찰청에 대한 법사위 국감은 22일 오전 10시부터 23일 새벽 1시까지 약 15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연합뉴스

野일각, 윤석열 기대감... 지도부는 선긋기

윤석열 검찰총장이 23일 “퇴임 후 국민에게 봉사하겠다”고 발언하면서 윤 총장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정치권에 들어설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간 윤 총장이 직접 대선 출마 가능성을 언급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작년 ‘조국 사태’ 이후 야권에선 그를 유력 대선 주자로 주목해왔다.

◇내년 7월 임기 마치고 나설 가능성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윤 총장이 내년 7월 임기를 마치고 정계에 나설 가능성이 거론된다. 윤 총장을 잘 아는 전직 고위 검찰 간부는 “윤 총장의 성향상 총장직에 있는 동안엔 절대 ‘정치’를 입 밖에 내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검찰 선배·동료들은 윤 총장이 정치에 뜻이 있다는 것을 ‘이심전심’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제1 야당인 국민의힘 입당 여부도 관심사다. 한 전직 검사장은 “윤 총장이 정치를 한다면 정치 신인이기 때문에 독자 세력을 구축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국민의힘 입당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윤 총장이 ‘공정한 시장 경제’를 강조한다는 점도 ‘경제 민주화’를 내세우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국민의힘 입당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말도 나왔다. 대검찰청은 지난해 7월 윤 총장 취임 자료에서 “윤 총장은 시장경제의 성공 조건으로 ‘공정한 경쟁’이라는 룰을 중시하고, 룰을 위반하는 반칙 행위는 묵과할 수 없다는 투철한 신념을 갖고 있다”고 했다. 윤 총장 부친은 경제학계 원로인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로 김 위원장과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퇴임후 국민의힘 입당 여부 주목

국민의힘 일각에선 벌써부터 당 영입 추진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 한 재선 의원은 “문재인 정권과 맞섰고, 대선 주자 중 새로운 인물로 통하는 윤 총장이 온다면 반가운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일단 ‘선 긋기’에 나섰다. 김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퇴임하고 봉사 활동 한다는 것을 반드시 정치하겠다는 뜻으로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 없지 않냐”며 “변호사들 사회 활동으로 봉사 활동 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했다. 김 위원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 등에선 윤 총장의 정치 입문 가능성에 대해 “본인의 의사에 달렸다”고 해왔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검찰총장은 정치와는 사실 담을 쌓아야 되는 사람인데 오해받을 수 있는 해석의 여지를 남긴 발언은 좀 잘못됐다고 본다”며 “검찰총장은 그 직무에 충실해야 한다”고 했다.

◇주호영 “검찰총장 직무 충실해야”

윤 총장이 기존 여야(與野)가 아닌 아닌 제3 지대를 통해 정치에 뛰어들 가능성도 제기된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등 이른바 ‘조국 흑서’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윤 총장에 대해 지속적으로 우호적 입장을 밝혀왔다. 진 전 교수는 지난 1월 리서치앤리서치 여론 조사에서 윤 총장 지지율이 10.8%로 2위를 차지하자 페이스북에 “정치할 분은 아니다”라면서도 “추미애 장관, 행여 이분이 대통령 되시면 너희 다 죽을 것”이라고 했다. ‘조국 흑서’의 한 저자는 본지 통화에서 “윤 총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반문(反文)을 기치로 뭉친 뒤 야권이 연대해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윤 총장은 올해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야권 대선 주자 선호도 1위를 차지해왔다. 한국갤럽 조사에선 지난 8월 9%대 지지율을 기록했다가 최근 다소 주춤한 상황이었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윤 총장이 이번 국감을 계기로 반문·반추(反秋) 중도층 지지까지 흡수할 수 있어 당분간 상승세를 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