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감사를 앞두고 재외공관의 도덕적 해이가 드러나 연일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본지가 재외공관 115곳을 전수 조사한 결과 ‘외교관의 꽃’이라 불리는 공관장 10명 중 1명은 외교적 전문성이 떨어지는 ‘낙하산' 출신으로 분류됐다. 현 정부 외교·안보라인의 핵심 축으로 꼽히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출신, 이른바 ‘연정 라인’ 비율은 10%가 넘었다.

◇ 친문·친노 낙하산 15명... 하루 6시간 근무하는 대사관

6일 본지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재외공관(대사관) 115곳 중 친문(親文) 정치인 등 이른바 ‘낙하산’으로 분류되는 공관장은 15명으로 전체의 13.0%에 달했다.

올해 6월 임명된 문재인 대통령의 ‘운동권 동지’ 장경룡 주캐나다 대사가 대표적인 낙하산 공관장으로 꼽힌다. 장 대사는 경희대 정치학과 출신으로 동 대학 법학과 출신인 문 대통령과 총학생회 임원으로 활동했다. 2014년 11월부터 3개월 간 캐나다 맥길대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김대중·노무현 청와대에서 활동했던 이들도 상당수 포진해있다. 이치범 주말레이시아 대사는 노무현 정부 때 환경부 장관을 지냈고, 선미라 주폴란드 대사는 대통령 비서실에서 해외언론비서관으로 일했다. 윤현봉 주브루나이 대사는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 제2부속실 행정관을 지낸 경험이 있다.

(왼쪽부터) 이치범 주말레이시아 대사, 이백만 주교황청 대사. /조선일보DB·노무현재단

이백만 주교황청 대사는 노무현재단 노무현시민학교 교장, 국정홍보처 차장과 홍보수석을 지낸 원조 친노(親盧)로 꼽힌다. 2013년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4주기를 앞두고 분야별로 노 대통령의 어록을 정리한 ‘노무현이 우리들과 나누고 싶었던 9가지 이야기'를 펴내기도 했다. 이번 국정 감사를 앞두고 이 대사가 근무 중인 바티칸 대사관은 주재국 관공서보다도 2시간 짧은 하루 6시간을 근무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16·18대 민주통합당 의원 출신인 정범구 주독일 대사, 17·18대 열린우리당·민주통합당 의원으로 활약한 최규식 주헝가리 대사, 17대 열린우리당 의원 출신 양형일 주엘살바도르 대사 등은 정치권 출신 낙하산으로 분류된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문 대통령을 지지했던 군인 또는 외교관 출신 등도 한자리씩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봉길 주인도 대사는 그해 2월 출범한 문 대통령의 외교자문그룹 ‘국민아그레망’의 일원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 장하성 주중국 대사는 문재인 정부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설계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는 공관장 인사가 있을 때마다 직업 외교관, 이른바 ‘커리어 디플로맷(career diplomat)’ 중심의 순혈주의를 타파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임기 중 외부 출신 공관장 비율을 최대 30%까지 늘리겠다는 방침도 세워놨다. “국정 철학에 맞고 능력을 갖춘 인사를 배치하겠다”는 취지이지만, 보은성 또는 코드(code) 인사라는 비판도 없지 않다.


◇ 열에 하나... 수치로 확인된 ‘연정’ 파워

이런 가운데 공관장 10명 중 1명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출신, 이른바 ‘연정 라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 특별보좌관(연세대 정외과 명예교수)을 필두로 강경화 장관, 최종건 1차관, 김준형 국립외교원장 등 연정 출신이 외교 라인을 장악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와중에 재외공관장 인사에서도 ‘연정 파워’가 수치로 확인된 것이다.

(왼쪽부터) 강경화 외교부 장관, 최종건 외교부 1차관,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 특보. /조선일보DB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출신 공관장은 ▲최종문 주프랑스 대사 ▲정연두 주네덜란드 대사 ▲박종대 주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 ▲정병화 주슬로바키아 대사 ▲김용호 주루마니아 대사 ▲김동찬 주크로아티아 대사 ▲구홍석 주카자흐스탄 대사 등 14명으로 집계됐다.

연세대까지 범위를 넓히면 수치는 18명으로, 전체의 15.6%까지 올라갔다. 조현 주유엔대표부 대사, 박용민 주센다이 총영사도 같은 학교 같은 학과 출신이다.

이렇게 특정 라인 또는 정치권 낙하산 출신들이 공관장 요직을 독식하면서 외교가에선 전문성을 좀먹고 직업 외교관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외교부 직원은 “저연차 외교관 중에선 기업이나 로스쿨 등으로의 이탈이 지속되고 있다”고 했다.

또 일부 재외공관의 경우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다. 민주당 김영주 의원실에 따르면, 일본에서 근무하는 한 외무공무원이 자녀의 한 학기 학비로 최고 3만5277달러(약 4123만원)까지 지원 받은 것으로 나타나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또 무소속 김홍걸 의원실에 따르면, 2012년 이후 발생한 성 비위 사건 25건 중 전체의 80%에 해당하는 20건이 재외공관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외교관이 현지어로 의사 소통이 가능한 재외공관은 3곳 중 1곳에 불과했다. 외교부가 재외근무수당 가산금을 지급하며 외교관의 현지어 학습을 독려하고 있지만, 나머지 110개 공관은 행정직원이나 현지인에게 통역을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