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1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에서 “우리 정부의 권력기관 개혁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진척을 이루고 있다”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조속한 출범을 주문했다. 이런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공수처장 후보 추천과 관련해 이른바 ‘야당 비토권’을 무력화하는 공수처법 개정안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했다. 추미애 법무장관도 법사위에서 공수처장 추천 요건을 ‘추천위원 7명 중 6명 이상 동의’에서 ‘5명 이상 동의’로 완화하는 데 공감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국민의힘은 “여권이 자기들 입맛에 맞는 공수처장을 앉히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고 반발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전략회의에서 “공수처는 입법과 행정적인 설립 준비가 이미 다 끝난 상황인데도 출범이 늦어지고 있다”며 “조속히 출범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당·정·청(黨政靑)이 합심하고 공수처장 추천 등 야당과 협력에도 힘을 내주기 바란다”고 했다. 민주당도 이날 오전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공수처법 개정안을 상정하며 국민의힘 압박에 나섰다. 국민의힘이 자기들 몫 공수처장 추천위원 2명을 추천하지 않자, ‘야당 추천권’ 자체를 무력화하는 법 개정에 돌입한 것이다. 민주당은 “법 집행 차질 책임은 전적으로 국민의힘에 있다. 협조하지 않으면 개정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날 법사위에 상정된 공수처법 개정안은 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발의했다. 현행 공수처법은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를 여당 교섭단체(민주당) 추천 2명, 야당 교섭단체(국민의힘) 추천 2명을 포함해 총 7명으로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김 의원 개정안은 여야 구분 없이 국회가 4명을 추천해 7명을 구성하도록 했다. 또 7명 중 6명 이상이 동의해야 하는 공수처장 후보 추천 요건도 7명 중 5명 이상만 동의해도 되도록 바꿨다. 사실상 야당의 ‘공수처장 후보 비토권’을 없앤 것이다.
민주당은 작년 말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 반대에도 공수처법을 강행 처리하면서 ‘야당의 비토권을 보장하는 법’이란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개정안을 발의한 김 의원은 이날 법사위에서 “(추천위원 7명 중 6명 이상 동의는) 만장일치에 가까워 과도하게 엄격한 요건”이라고 했다. 그러자 추미애 장관도 “'소수의 의견으로 다수가 배제되는 것 또한 비(非)민주'라는 말에 크게 공감한다”며 “공수처가 신속 출범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민변(民辯) 출신인 김 의원이 발의한 공수처법 개정안에는 야당과 법조계 일각에서 “민변 공수처가 현실화할 것”이라고 우려해온 내용도 다수 포함됐다. 공수처 수사 검사의 자격 요건을 현행법에서 정한 ’10년 이상 변호사 자격'에서 ‘5년 이상’으로 완화하고, 공수처 검사의 임기·연임 조항도 ‘3년·3회 연임 가능’에서 ‘7년·연임 제한 없음’으로 바꾼 것이다. 공수처 인력 규모도 2배 가까이 늘렸다. 법조계 관계자는 “젊은 민변 변호사들의 공수처 진입을 쉽게 해 사실상 친여(親與) 성향의 민변이 공수처를 장악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민주당에선 박범계·백혜련 의원도 각각 공수처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두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여야 중 어느 한쪽이 국회의장이 요청한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공수처장 추천위원을 선정하지 않으면 국회의장이 법학교수회장과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을 추천위원으로 임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수처법에 위헌 소지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한 국민의힘은 “헌재 결정이 나온 후 공수처 구성에 들어가야 한다”며 추천위원(2명) 선정을 미루고 있다. 그러나 박범계·백혜련 안으로 개정될 경우 국민의힘 측 추천위원 선정 여부에 관계없이 공수처장 추천 절차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민주당 관계자는 “공수처법을 개정하더라도 최소한의 부분만 고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그러면서도 이날 법사위 회의에서 박종문 헌재 사무처장에게 “생각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조속히 (국민의힘이 낸 헌법소원 사건에 대한) 결과를 내라”고 했다. 국민의힘 측은 “헌재는 정치적 압력에 휘둘리지 말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