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김종철 대표가 ‘연금 개혁’과 ‘저소득층 증세(增稅)’를 꺼내는 걸 보고 놀랐다. 지금보다 더 내고 덜 받는 ‘연금 개혁’이나 가난한 사람들도 세금을 내야 단단한 복지가 가능하다는 ‘증세’에 손뼉 칠 사람은 없다. 표도 안 되고 욕만 먹을 이야기다. 공무원 노조, 전교조를 포함해 민주노총을 기반으로 하는 정의당으로선 자해(自害)에 가깝다. 그러나 정치 지도자로서 피해선 안 될 과제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가 21일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창당 8주년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0.10.21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연금의 미래는 명확하다. 지금 손보지 않으면 거덜 나거나 미래 세대가 모든 부담을 져야 한다. 2055년에는 국민연금 적립금 740조원이 고갈된다. 2060년부터 30년 동안은 국내총생산(GDP)의 4% 이상을 연금 적자를 메우는 데 쏟아부어야 한다. 김종철은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의 통합을 주장하며 “공평한 노후를 이야기해보자”고 했다.

이런 문제가 김종철 대표에게 ‘금기(禁忌)’에 도전하는 일이라면 문재인 대통령에겐 당장 숙제이자 의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이런 표 안 되고 욕먹는, 그러나 국가의 미래와 직결된 난제는 회피하거나 침묵했다. 2018년 11월 복지부가 보험료율을 11~13%까지 인상하는 안을 포함한 국민연금 개혁안을 올리자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퇴짜를 놨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부담을 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국민연금 개혁이라는 ‘시한폭탄’은 정부로, 국회로 이리저리 뒹굴다 지금은 ‘정치적 미아’가 됐다.

문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재정 건전성을 지키겠다”고 했지만, 나라 곳간을 무슨 수로 채울지는 한마디도 안 했다. 말만 안 했지 이 정부는 그동안 법인세, 상속세, 취득세, 재산세 명목으로 20조원을 더 거둬 ‘소리 없는 증세’를 했다.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키더니 이제는 공시지가까지 올려 ‘서민 증세’에 나섰다. 그러나 문 대통령 어휘에서 ‘증세’는 사라진 지 오래다. 증세를 하면서 증세라고 하지 않는다. 기막힌 기술 아니면 대국민 사기다. 김 대표는 여당이 병 주고 약 주는 식으로 공시지가를 올리며 재산세 일부 인하를 추진하자 “비판이 두려워 지지층이 듣고 싶은 말만 할 수는 없다. 정치는 엔터테인먼트 사업과 다르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에게 들어야 할 말을 왜 6석 정당 대표에게 대신 들어야 하나.

노무현 대통령은 지지층의 반발에도 한·미 FTA를 추진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공기업 개혁 카드를 꺼냈고, 박근혜 대통령도 공무원 연금을 손봤다. 지지율 하락, 선거 패배 같은 대가를 치렀다. 문 대통령이 재난지원금을 두고 ‘위로’를 말할 수 있는 것도 전직 대통령들의 결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회 절대 다수를 가진 여당이라면 연금 개혁 같은 인기 없는 정책도 해야 한다. 하지만 청와대와 여당은 막강한 힘을 갖고도 국회 독식, 공수처 같은 권력 게임에만 몰두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욕먹는 일을 외면만 하진 않았다. 가끔 욕먹을 작정 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때가 있었다. 우리 국민을 총살하고 남북 연락사무소를 폭파해도 김정은에게 “생명 존중의 의지”라고 했다. 인권 변호사 출신이 방역을 앞세워 자신이 한때 촛불을 들었던 광화문광장을 원천 봉쇄했다. 지지층의 인신공격성 ‘댓글’을 ‘양념’이라고 감쌌다. 이런 대통령이라면 “미래 세대에게 빚을 떠넘길 수는 없다. 고통스럽지만 연금도 세금도 더 내자”고 설득 못 할 이유가 없다. 어느 영화 주인공처럼 ‘나는 오늘만 살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