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축소’에 나선 유럽국가들은 국민의 저항에 몸살을 겪고 있다. 지난 2023년 11월 연금 혜택을 깎겠다는 정부정책에 반대해 거리로 나온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민이 시위를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복지에 ‘톱니 효과(ratchet effect)’라는 용어가 있다. 톱니바퀴가 역진하지 않는 것처럼 한번 복지를 확대하면 정치·사회적인 부담 때문에 축소하기 어려운 것을 가리킨다. 수혜자들은 한 번 높아진 복지나 혜택을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연금은 혁명기 아니면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리스가 2010년대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하자 연금 액수를 최대 44% 깎은 것이 거의 유일한 큰 규모 복지 축소라 할 수 있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2023년부터 연금 받는 나이를 62세에서 64세로 늘리려 했지만 총리가 5명 바뀌는 진통을 겪고도 아직까지 해결을 못 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얼마 전 “노인 빈곤을 줄이려면 기초연금을 좀 바꿔야 할 것 같다”며 ‘하후상박(下厚上薄) 증액’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지금까지 지급하는 것은 그냥 두고 향후 증액만 하후상박으로 하는 것도 방법일 듯하다”고 했다.

기초연금은 2008년 약 10만원을 지급한 기초노령연금 시절부터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65세 이상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대상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그러나 소득 하위 70%에 같은 액수를 주는 방식 때문에 노인 빈곤율은 여전히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에 머물러 있다. 반면 선정 기준이 해마다 오르면서 중산층 이상, 형편이 괜찮은 65세 이상까지 기초연금을 받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동안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이어졌지만 누구도 듣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통령 언급이 나오자 ‘연금연구회’라는 연구 단체는 ‘적극 지지’ 성명까지 했다. 이 단체는 재정 안정성을 중시하는 학자가 많아 그동안 정부의 연금 정책에 주로 까칠한 논평을 내왔다. 다른 보수 연금 전문가도 “선거를 앞두고 기초연금을 받는 사람 중 상위 절반쯤은 혹시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불안하게 생각할 만한 언급”이라며 “선거에 영향이 있을 수 있는데 저렇게 얘기하니 고마울 정도”라고 말했다. 60% 중반의 높은 지지율에다 야당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 대통령도 여유가 생긴 것 같다.

65세 이상 전철 무임승차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은 얼마 전 “(고령층의) 무료 이용을 출퇴근 피크 시간에 한두 시간만 제한하는 것은 어떠냐”고 말했다. 역시 1984년 이 제도를 도입한 이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많았지만 누구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고 하지 않았다. 대통령 언급 이후 관련 부처가 부산해졌다.

다만 기초연금의 경우 하후상박도 필요하지만 이번 기회에 중대한 설계 결함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무조건 소득 하위 70%에게 주는 방식 때문에 문제점이 명백하게 드러나 있다. 기초연금을 도입할 즈음엔 국민연금을 못 받는 65세 이상이 70%쯤이라는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절반 이상이 국민연금을 받고 있다. 왜 70%에게 주어야 하는지 정책적 근거가 전혀 없다. 신규 수급자를 대상으로라도 수급자 비율을 줄여나가거나 아예 기준을 ‘중위소득의 몇 %’로 바꾸어 점차 대상자를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

역대 대통령들은 복지 수준을 높이는 정책만 썼다. 이 대통령이 기초연금과 전철 무임승차 제도를 개선하면 의미 있게 복지를 축소한 첫 케이스가 아닐까 싶다. 기초연금은 근 20년, 전철 무임승차는 40여 년을 운영했으니 현실에 맞게 제도를 개편할 때도 됐다. 그래야 통합 돌봄, 청년 지원 등 더 필요한 복지를 늘릴 수 있다. 이 대통령이 부동산 정상화 의지를 밝히며 얘기한 “표 계산 없이 국민을 믿고…”가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