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난 1월 말 신규 원전 2기 건설 계획을 발표한 것은 의외였다. 윤석열 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한 결정이기 때문이다. 김 장관은 탈원전을 당론으로 삼았던 민주당 현역 의원이다. 일각에선 김 장관을 ‘에너지 탈레반’이라 불렀다. 그런 그를 돌려세운 건 이재명 대통령의 설득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 여권 인사는 “대통령은 AI 전력 수요에 맞춰 원전 추가 건설까지 생각했으나, 참모들이 다음 계획으로 미루자고 말렸을 정도”라고 전했다.
이렇게 국정 운영에 실용적이며 유연하고 자신감 넘치는 대통령을 근래에 보지 못했다. AI 전력 수요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최근 이란 전쟁으로 에너지 위기까지 촉발됐다. 그러자 대선 때 이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지만 그에게 기대감을 갖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심심찮게 본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도 다시 멈칫하고 있다. 민주당이 밀어붙인 이른바 ‘사법 3법’(대법관 증원·재판소원·법왜곡죄)을 승인한 이 대통령을 보면서다.
현 여권이 뭐라고 설명하든 사법 3법은 ‘사법 파괴법’이란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파괴는 필연적으로 카오스를 부른다. 법 시행 첫날부터 확정 판결을 무효로 해달라는 재판소원이 쇄도했고, 범죄자들은 판검사를 상대로 고소·고발을 시작했다.
민주당은 사법 3법을 밀어붙이면서 “국민 인권 보호”라는 명분을 내걸었다. 하지만 5건의 형사재판이 계류 중인 이 대통령이야말로 사법 3법의 최대 수혜자라는 사실을 가릴 순 없다.
이 대통령의 심중(心中)은 어떨까. 권력의 속성은 비슷하다는 차원에서 과거로 돌아가 보자. 2024년 4월 치른 22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한 직후 일이다.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의 측근 A는 “윤석열 대통령 측과 물밑 협상을 타진했다”고 했다. A는 윤 대통령과 통하는 국민의힘의 B에게 ‘이재명 수사 중단’과 ‘김건희 공격 중단’을 맞바꾸는 협상을 제안했다고 한다.
결과는 결렬이었다. A는 윤 대통령이 거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사석에서 이 대통령을 “중범죄자”라고 불렀다. 일종의 경멸적 적대감이었다.
하지만 권력자의 적대감에는 ‘불안’과 ‘공포’가 숨어 있다. 윤 대통령 취임 석 달 만인 2022년 8월 거리에선 퇴진 요구 집회가 시작됐다. 당시 집회엔 30명 정도가 모였다. 윤 대통령은 그런 ‘한 줌 퇴진 집회’를 보며 “저들이 나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토로했다고 한다. 그런 ‘탄핵 포비아’가 적대 세력을 쓸어버리겠다는 파괴적 판타지로 이어진 것 같다고 옛 참모들은 말한다.
이 대통령 역시 거꾸로 칼을 쥐자 특검과 사법 3법을 동원해 자신을 기소하고 유죄 판결을 내린 검찰과 사법부를 무력화하고 있다. 이런 이 대통령에게서 한번 달을 얻은 사람이 달 없는 세계에서 살게 됐을 때 느낄 불안과 공포 같은 게 어른거리는 것을 본다. 권력을 놓았을 때의 불안에 사로잡힌 것 아닌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전쟁의 원인을 인간의 불안과 공포에서 찾는다. 이 책을 영어판으로 처음 번역한 홉스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을 다룬 ‘리바이어던’을 쓴 것은 우연이 아니다. 권력자의 불안과 공포가 ‘내가 죽지 않으려면 복수하라’는 판타지로 이어져 공동체를 파괴하는 게 카오스의 본질이란 것이다.
지금 이 대통령은 ‘개혁’의 탈을 쓴 ‘질서 파괴’를 묵인하고 있다. 그 목적이 사법 리스크 돌파 때문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를 풀 정치적 해법은 얼마든지 열릴 수 있다. 법 질서를 존중하면서 성공한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무리하는 게 해법일 수 있다. “사법 질서가 나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란 불안과 공포에 갇혀 국가 시스템을 카오스로 몰아넣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족쇄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