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 인기가 잦아들자 ‘봄동비빔밥’이 뜨는가 싶더니 ‘버터떡(찹쌀가루 등으로 만든 반죽에 버터를 넣고 구운 디저트)’이 치고 나왔다. 그렇게 유행이 옮겨가는 자리마다 한바탕 난리가 난다. 두쫀쿠를 없어서 못 팔 때는 핵심 재료인 피스타치오의 국내 유통 가격이 두 달 새 5배 넘게 폭등했다. 봄동비빔밥이 인기를 모으자 봄동 가격이 30% 올랐고, 최근에는 대형마트에서 버터떡 재료인 찹쌀가루 판매량이 작년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유행의 수명은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SNS를 도배하는 음식이 다른 것으로 바뀌어 있어도 이상할 게 없다.
이처럼 사람들의 관심이 한 곳으로 몰렸다가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는 집단적 쏠림의 반복에는 여러 이유가 겹쳐 있다. 한국인의 대세추종주의, 확산을 부추기는 SNS 알고리즘, 경험을 중시하는 소비 성향 등이 얽혀 작동한다. 그중에서도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것은 소외되는 데 대한 두려움,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다. 최소한 남들만큼은 해야 한다는 강박 말이다.
여기에서 초점은 디저트 트렌드가 아니다. 다른 사람을 좇는 심리 자체다. 디저트 유행 좀 놓친다고 삶이 흔들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만 뒤처질 수 없다’는 조급함은 큰 기회 비용이 따르는 선택의 순간에까지 깊숙이 침투한다. 증시가 불붙자 너도나도 빚을 내 주식 투자에 뛰어들고,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을 땐 줄줄이 ‘영끌’에 나서는 식이다. 학부모들이 사교육에 시간과 돈을 쏟아붓는 첫 번째 이유로 “남들이 하니까 불안하기 때문”이 꼽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심리의 기저에는 저성장과 양극화가 굳어지고 기회의 사다리가 점점 사라지는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 이 열차에 올라타지 않으면 영영 낙오될 것’이라는 압박이 사람들을 같은 방향으로 몰아간다. 소수의 성공담만 남고, 다수의 실패는 빠르게 잊힌다. 그 결과 남들의 성공 방식은 ‘정답’처럼 굳어진다. 그 궤도에서 이탈하는 순간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공포가 엄습한다.
문제는 이 과정이 거듭될수록 불안과 긴장이 누적된다는 점이다. 끊임없는 비교 속에 피로감이 쌓이고, ‘대열’에 끼지 못했을 때의 박탈감은 ‘나만 빼고 다 잘나간다’는 불만으로 이어진다. 그 끝은 대개 비슷하다. 성급한 판단과 무리한 실행이 뼈아픈 손실로 돌아오곤 한다. 유행만 믿고 창업했다가 재고와 빚만 남거나 충동적인 주식·부동산 투자가 발목을 잡는 경우가 흔하다. ‘묻지 마 쏠림’ 이후 거품이 꺼질 때 치러야 할 비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반복되는 실패와 불신의 구조는 개인을 넘어 사회 전체로 번진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남들과 같아지기 위해 자신의 4분의 3을 잃는다”고 했다. 타인의 선택이 나의 기준이 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판단하는 주체가 아니라 흐름에 휩쓸리는 객체가 된다. 뒤처지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남들 등만 보고 달리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모르게 되는 상태다. 방향을 완전히 잃는 순간 앞으로 나아가기도, 제자리로 돌아가기도 어려워진다. 포모의 늪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자기 결정권부터 회복해야 한다. 자신의 속도와 방향을 지키며 끝까지 견뎌내는 힘이 필요하다.
다만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실패의 위험을 나누고 다양한 삶의 경로를 포용하는 사회적 여건이 갖춰져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불안에 떠밀려서가 아니라,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기준에 따라 경로를 선택할 용기를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