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부시 대통령 집권 시절 미국의 ‘네오콘’들은 이라크 다음으로 이란을 치자고 주장했다. “악마와 같은 이슬람 율법 정치가 지배하는 광신적 국가는 외부의 힘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해 미국 도시에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는 일을 두고 볼 텐가”라고 했다.
이런 네오콘을 ‘전쟁광(warmonger)’이라고 비판하며 뜬 사람이 트럼프 대통령이다. 끊임없는 해외 개입에 지쳐 있던 미국인들은 그에게 표를 던졌다. 그는 1기 고별 연설 때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지 않은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게 자랑스럽다”고 했다. 지금 트럼프 행정부의 부통령은 지난 대선 전 트럼프 지지 선언을 하면서 “그가 무모하게 미국인들을 해외 전투에 보내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가정보국장(DNI)은 ‘이란과 전쟁은 없다(No war with Iran)’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린 적이 있다. 이런 트럼프 행정부가 ‘전쟁광’들도 차마 실행에 옮기지 못한 이란 공격을 전격적으로 감행했다.
트럼프에게 붙어 있던 ‘전쟁 반대’ ‘불개입주의’ 수식어는 큰 오해였던 것 같다. BBC에 따르면 오바마가 8년 임기 동안 드론 공격을 1878회 승인했는데, 트럼프는 1기 첫 2년 동안 2243번 드론 공격 명령을 내렸다. 2020년 이란 혁명수비대장 사살은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 부담이 큰 작전이었다. 트럼프는 2기 들어 국방부 간판을 ‘전쟁부’로 바꿨고, 예상을 깨고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작전을 벌였다.
트럼프는 전쟁 자체가 아니라 ‘손해 보는 전쟁’을 싫어할 뿐이다. 그가 ‘재앙’이라고 부른 이라크전을 예로 들면, 후세인을 제거한 후 석유를 취하고 빠지는 게 그의 방식이다. 그러지 않고 ‘국가 건설(nation building)’에 막대한 돈과 인력을 투입한 게 바보짓이었다는 것이다.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최근 브리핑에서 “어리석은 교전 규칙도, 국가 건설의 수렁도, 민주주의 구축 운동도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트럼프의 전쟁 철학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실제 트럼프는 이란 국민에게 폭압적인 체제에 맞서 들고일어나라고 촉구했지만, 그 이후 계획은 보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이란 다음 정권이 민주체제가 아니라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대표적 네오콘 더글러스 페이스 전 국방부 차관은 언론 기고에서 “트럼프는 폭격 이후 혼란엔 관심이 없다. 과거 부시는 사악한 지도자들과 싸우는 것과 별개로 그 나라 국민을 도울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트럼프는 다르다”고 했다.
지금 호르무즈 문제로 미국이 예상보다 고전하는 분위기지만, 결국 미국 안보와 이익을 해칠 수 있는 이란의 핵·미사일 능력을 박탈하겠다는 목표는 어느 수준 달성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압도적 화력으로 적국 수장을 제거함으로써 ‘까불면 죽는다’는 공포도 심어줬다. 여기까지만 해도 트럼프는 충분히 ‘승리’ ‘성공’으로 포장하고 빠져나올 수 있다.
다만 트럼프의 ‘손해보지 않는 전쟁’ 이후 이란 국민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최악의 경우 ‘87세 하메네이’가 ‘57세 하메네이’로 바뀌는 것뿐일 수 있다. 수천~수만 명 시위대를 학살한 혁명수비대는 더 가혹한 통제를 할 것이고, 무너진 인프라에 경제난은 더 심해질 것이다. 지금이야 전 세계가 이란에 촉각을 곤두세우지만, 유가 문제 등이 해소되면 국제사회의 관심도 급격히 식는다. 우크라이나에서 본 대로다. ‘자국 우선주의’가 지배하는 새 국제 질서의 밑바닥은 이토록 냉혹하고 잔인할 수 있다. ‘먼 나라 얘기’라고 마음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