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국회의장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그 날 12·3 다크투어'에서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당시 계엄 해제를 위해 직접 월담했던 현장을 탐방하고 있다. /뉴스1

청와대 정무비서관이 새로 임명됐다. 김병욱 전 비서관이 성남시장 출마를 위해 나오고 민주당 정을호 의원이 들어갔다. 국회의원은 차관급이고 비서관은 1급이다. 의원이 비서관으로 가려면 배지도 떼야 한다. 선거에 떨어진 전직 의원이 비서관 된 경우는 있어도, 임기가 2년 남은 현역이 의원직을 버리고, 그것도 수석이 아니라 비서관으로 간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당초 청와대에서 내정한 인사는 민주당 K 전 의원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지명했다고 한다. 대통령과 거리가 있는 의원들과도 잘 통하고 야당도 거부감 없는 사람으로 꼽혔다. 통합과 협치를 위한 인사로 해석됐다. K도 인사 검증에 동의해 절차를 밟고 있었다. 그러나 발령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어느 날 정 의원이 임명됐다.

그 배경에 우원식 국회의장이 있다고 들었다. 우 의장은 K와 같은 지역 출신이다. 오랜 세월 인연과 악연이 두 사람을 교차했다. 이 지역은 원래 갑을병 3개 선거구였다가 지난 총선 때 2개로 통합됐다. 둘의 지역구가 겹치게 된 것이다. 민주당에선 “우 의장이 오랜 경쟁자 K가 각종 선거에 영향력을 미치는 자리에 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그의 임명에 반대했다”는 말이 나왔다. 우 의장은 K에 대한 비토 의사를 청와대에 전한 뒤 동남아시아 출장을 떠났다고 한다. 청와대도 부인하지 않는다. 정무비서관은 국회의장이 주요 ‘고객’인데, 의장이 원치 않는 사람을 시키기는 부담스럽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국회의장은 대통령과 더불어 정치인이 갈 수 있는 마지막 자리다. 이 둘은 ‘임기 후’를 고민하지 않고 은퇴하는 게 불문율이다. 하지만 우 의장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우 의장은 국회에서 노골적으로 민주당 편을 들었다. 관례를 깨고 법사위를 여당에 넘겼다. 민주당이 야당을 무시하고 폭주할 수 있었던 것은 우 의장에게 힘입은 바 크다. 그는 자신에게 인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제한 토론 중인 야당 의원의 마이크를 끄기도 했다. 계엄 때 자신이 담을 넘은 국회 울타리에 국민 세금으로 표지석을 세우려고도 했다. 민주당을 기반으로 다음 자리를 노린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퇴임 후 정치를 계속하는 것은 우 의장 자유다. 당대표나 대통령에 나설 수 있고, 다시 국회의원에 출마할 수도 있다. 우 의장이 쌓아온 경륜과 그를 따르는 의원들을 감안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문제는 현직에 충실하라고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자신의 퇴임 후를 위해 쓰고 있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이 집권 후 한 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검찰 폐지와 법 왜곡죄, 4심제, 대법관 증원 등 이른바 ‘사법 개혁’을 달성했다. 핵심은 하나같이 대통령 퇴임 후 안전 보장이다. 상식에 어긋나고 염치없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대통령은 말리는 척하다가 말았다. 거부권을 행사하지도 않았다.

민주당은 다음 당대표 선거에 모든 관심이 가 있다. ‘명·청 갈등’이 여기서 비롯됐다. 재선에 도전하려는 정청래 대표와 그 자리를 노리는 김민석 총리가 대립하고 유튜버 김어준까지 가세했다. 전당대회 1인 1표제, 조국혁신당 합당, 검찰 보완 수사권, 공소 취소 음모론을 둘러싼 당내 갈등은 본질이 차기 당권 다툼이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장동혁 대표가 ‘윤 어게인’ 청산을 망설이고 오세훈 서울시장, 한동훈 전 대표와 각을 세우는 것은 당 대표를 또 하고 싶기 때문이다.

자리에 따르는 권력은 그 직무를 수행하는 데 쓰라고 유권자가 위임한 것이다. 그런데 맡고 있는 일보다 다음 자리를 도모하는 데 그 힘을 쏟고들 있다. 다음 자리에 가면 또 그 다음 자리만 신경 쓸 것이다. 앞만 보고 가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퇴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