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마트산업노동조합, 전국택배노동조합,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형마트 새벽배송 허용을 추진하는 정부와 여당을 규탄하고 있다./뉴스1

무슨 사건이 터지면 “선진국은 이러저러하다”는 비교가 붙는다. 대개 현실을 건너뛰고 결론만 들여오는 진부한 참조다. 그럼에도 이번 쿠팡 사태에선 필요해 보인다. 감정이나 도덕에 치우쳐 시장 질서를 어떤 원칙으로 다룰 것인가란 본질적 질문을 빠뜨린 듯해서다.

유럽은 거대 플랫폼을 ‘게이트 키퍼(Gate Keeper)’로 규정한다. 시장 출입구를 쥔 주체가 경쟁 방향을 자의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자사 서비스에 대한 특혜, 데이터의 무차별적 결합, 거래 조건의 남용 같은 구조적 행태를 사전에 묶는다. 미국은 다르다. 활동의 자유는 보장하되, 문제가 불거지면 단호하다. 어떤 경로로 독점이 형성됐고 유지됐는지, 시장과 소비자가 입은 손실이 뭔지 끝까지 추궁한다. 영국은 절충이다. 사전 규율과 사후 개입을 함께 운용한다. 제각각이지만 지향은 같다. 기업을 응징하는 게 아니라, 시장이 작동하도록 여건을 정비한다.

쿠팡을 향한 맹공에 처음엔 냉소가 앞섰다. ‘자업자득이지…’ 그러나 ‘새벽 배송 금지’라는 규제의 날 위에 “회사가 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한다”는 고위층 분노가 얹히자 불편했다. 이어 ‘(쿠팡을 견제하려면) 대형 마트에도 새벽 배송을 허용하자’는 얘기까지 나오자 허탈하면서 불안했다. 또 ‘선의로 포장한 지옥길’을 깔려나 싶었다.

새벽 배송을 금지해 건강권을 보호하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야간 근무가 수면 장애 위험을 1.4~1.6배 높인다는 연구도 뒷받침한다. 개인정보 유출 역시 데이터를 핵심 자산으로 삼는 플랫폼 기업에 치명적 잘못이다. 신뢰를 저버린 기업은 책임을 져야 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 선의를 정책과 규제의 문법으로 옮길 때 접근 방식이다. 플랫폼 산업은 단순한 노사 대립이나 대기업 대 소상공인 구도로 환원하기 어렵다. 속도와 규모, 데이터와 네트워크 효과가 서로 얽혀 돌아가는 복합한 지형이다. 이런 구조에서 상징적 금지나 감정적 제재는 자주 의도하지 않은 결과(unintended consequences)를 낳는다.

2007년 비정규직 보호법(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노동자 보호를 내세워 도입했지만 ‘2년 쪼개기 계약’이라는 변칙 고용을 고착화했다. 노동 약자들을 더 불안정한 운동장으로 내몬 셈이다. 보호막은 족쇄로, 안전망은 덫으로 바뀌었다. ‘선의로 포장된 단두대’라는 비유도 있었다. 선의는 결과를 담보하지 않는다.

새벽 배송은 배달 기사들에게 이념도 기업에 대한 충성심도 아니다. 계산이고 선택이다. 야간 노동 보상은 크고, 교통 체증 비용은 줄어든다. (쉽진 않겠지만)낮 시간을 다른 활동이나 돌봄에 쓸 수 있다는 부수 이익도 고려된다. 힘에 부칠지라도 주어진 조건에서 소득을 극대화하려는 합리적이면서 절박한 판단이다. 정부는 이를 막아설 자격도 권리도 없다.

‘대형 마트 새벽 배송 허용’ 논의는 희극이면서 자기모순이다. 얼마 전까지 의무 휴업과 영업시간 제한을 앞세워 대형 마트를 옥죄던 주체들이, 이젠 쿠팡을 견제하겠다는 일념으로 규제 완화를 꺼낸다. 어제의 공정 논리를 오늘은 장애물로 취급한다. 정책의 나침반이 이렇게 흔들리면 신뢰는 사라지고, 남는 건 시장의 혼선이다. 그 (혼란)비용은 결국 소비자가 감당한다. 기업을 몰아붙이면 속은 시원할지 몰라도, 그 기업은 방어와 로비에 자원을 쏟기 마련이다. 나중에 가격 인상이나 서비스 질 저하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쿠팡 역시 성찰할 필요가 있다. 성장 속도에 중독된 탓에 노동 안전과 상생,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투자가 충분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다만 심판은 분노가 아니라 규칙, 보복이 아니라 절차로 이뤄져야 한다. 정부는 응징을 대행하는 기관이 아니다. 쿠팡과 무관하게 시장이 제 궤도를 유지하도록 하고 그 질서를 지켜내는 일, 그게 본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