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왼쪽) 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와 김성식 신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이재명 대통령이 결국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지명을 철회했다. 예고된 낙마였다. 이로써 한국식 ‘부도덕 교육 강좌’의 한 챕터가 추가됐다. 강좌 주제는 ‘정치인의 위선과 거짓’ 정도가 될 것이다. 며칠 전 국회 인사청문회는 이 강좌의 저자 직강 같았다. 지명이 철회돼 사필귀정의 교훈도 줬다.

사실 이 후보자의 도덕성 검증은 청문회까지 갈 것도 없었다. 인턴 직원에게 “야! 야!” 괴성을 지르는 녹음이 공개됐을 때 국민적 판단은 끝났다. 이 후보자가 버티는 바람에 반포 아파트 부정 청약, 아들 부정 입학 의혹에 대한 수사 가능성만 초래했다.

오히려 이 대통령이 ‘오른쪽’ 사람을 잘 모른다고 느낀 건 이 후보자 능력에 대한 세간의 평가 때문이다. 경제학 박사,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이력만 놓고 보면 이 후보자는 경제 전문가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한국에서 찾기 어렵지 않다. 일각에선 2020년 3월 이 후보자가 코로나 재난 지원금을 주제로 이 대통령과 벌인 방송 토론이 발탁 계기가 아니냐고 한다. 토론에서 이 후보자는 중소 자영업자를 선별 지원하자는 주장을 반복했다. ‘기본 시리즈’의 이 대통령이, 이런 ‘진부한’ 주장에 감복했을 리 없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필자가 보기에 이 사람이 장관으로 지명됐더라면 하는 인사도 동시에 했다. 김성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임명이다.

김성식은 원래 보수 진영의 소장 개혁파였다. 정무보다 정책을 우선하는 정치인이었다. 그는 이 후보자와 같은 서울대 경제학과 학사 출신이다. 하지만 현역 의원 시절 그의 방을 찾으면 박사인 이 후보자에게서 들을 수 없었던 깊이 있는 정책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후보자가 한때 친박 핵심으로 불리며 정파 싸움의 선봉에 섰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택시 기사의 아들인 김 부의장은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여러 차례 감옥을 다녀왔다. 하지만 여느 운동권과 달리 합리적이라는 평을 들었다. 그는 2007년 동지 손학규가 한나라당을 탈당해 시베리아로 나갈 때 따라가지 않았다. 그래도 동지들은 그를 탓하지 않았다. 그의 품성과 노선의 견실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 뒤 그는 3수 끝에 2008년 총선에서 집권 한나라당 후보로 당선됐지만, 정권 주류에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스승 정운찬이 이명박 정부의 총리가 됐을 때도 비판적 태도를 견지했다.

이 후보자는 2020년 이후 두 차례 총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는 4선 출신 시아버지의 정치 가업을 승계한 맏며느리다. 그래서 정치적 활로를 찾아 여러 선거구에서 재기를 도모한다는 말이 나왔었다. 그가 지난 총선 때 국힘 공천장을 거머쥐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아는 이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김중배의 다이아가 탐나더냐”는 힐난으론 그의 출사(出仕) 욕망을 꺾을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2020년 이후 김 부의장의 언론사 인물 데이터베이스는 공란이다. 그 시기 그가 벤처 창업자들을 찾아가 “통상이 나라의 미래”라며 토론을 자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여야를 넘어서자”며 청년 정치학교도 열었다. 앙숙 번(藩)의 통합을 이끌어 일본 메이지 유신의 물꼬를 튼 사카모토 료마는 대업을 이루고선 출사 대신 상선을 타고 통상에 나서려 했다. 김성식은 료마적 성취에 이르진 못했다. 하지만 깔끔하게 정치를 접었다는 점에서 이혜훈보다는 료마적이다.

이 후보자는 이번에 정치인의 속물성을 국민에게 보여줬다. 그래서 김성식을 청문회가 필요 없는 자문역에 기용하면서 이혜훈을 청문회에 내세운 이 대통령의 선택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 대통령이 통합형 인재를 구한다면 희생과 헌신의 흔적이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