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여야 지도부 오찬 회동에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중도가 어디 있느냐”는 말을 처음 들은 건 민주당 의원에게서였다. 정청래 대표가 강성 지지층만 보는 것 같다고 하자 돌아온 답이었다. 그는 “무당층도 어차피 선거 때가 되면 한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평소에는 중도층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요즘 국민의힘에서도 ‘중도 허구론’이 나온다. 장동혁 대표와 당 주류가 주장한다. 지금은 보수의 정체성을 걸고 민주당과 ‘체제 전쟁’을 할 때인데, 신기루 같은 중도를 좇느니 ‘윤 어게인’ 같은 집토끼를 잡는 게 옳은 전략이라는 것이다. 여야 모두 중도를 없는 사람 취급한다.

현실은 어떤가. 지난 16일 발표된 갤럽 조사에서 응답자 1000명 중 자신의 성향이 ‘중도’라고 답한 사람이 333명이었다. ‘보수’라는 사람이 283명, ‘진보’ 277명, 모름·응답 거절 107명이었다. 중도 응답자가 보수나 진보보다 많이 나오는 흐름은 꾸준하다. 바로 전주 조사에서도 중도 324명, 보수 287명, 진보 285명이었다. 물론 응답자가 자신의 성향을 객관화하는 데 실패했을 수 있고, 감췄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도는 없다”고 하기엔 너무 많다.

누가 중도인가. 2022년 대선 때 윤석열 전 대통령을 찍었지만 갑작스러운 계엄에 놀라고 그에 따른 탄핵이 불가피했다고 수긍하는 이들이다. 또 2025년 대선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찍었지만 대장동 일당에게 범죄 수익을 그대로 넘겨주는 검찰의 항소 포기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무턱대고 한쪽 편을 들지 않는다. 사안별로 상식과 합리의 잣대로 시비를 가려 찬반을 정하는 수고를 감수한다. 이석연 국민통합위원장이 여기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재명 정부를 위해 일하지만 민주당의 2차 특검은 “정치 보복”이라며 반대한다. 판·검사를 처벌하는 법왜곡죄는 “문명국의 수치”라고 했다.

민주당도 김대중·노무현 정부까지는 중도를 끌어안는 모습을 보이려 노력했다고 본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문빠’와 이재명 정부의 ‘개딸’을 거치며 노골적으로 지지층만 바라보는 정치를 하고 있다. 지금 정청래 대표는 회의 때마다 국민의힘 해산을 거론한다. 25~30% 정도 국민이 지지하는 정당을 아예 없애겠다는 것이다. 그만큼의 국민을 국정 운영에서 지우겠다는 말과 같다.

국민의힘은 중도를 수렴하고 진보까지 포용하려던 정당이다. 이명박 정부는 ‘중도 실용’을, 박근혜 정부는 ‘경제 민주화’를 내걸었다. 그런데 윤 정부 계엄과 탄핵을 거치며 변했다. 중도까지 가지도 못하고, 보수 안에서 윤 어게인이냐 아니냐로 애국자, 배신자 다툼을 한다.

중도층은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은 견제받기 싫다는 뜻이다. 중도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권력은 절제를 잃고 폭주한다. 지금 민주당이 그렇다. 이런 경우 야당이 중도를 흡수해 정권을 바꿔 온 것이 우리 역사다.

다시 선거의 계절이다. 민주당은 벌써 시동을 걸었다. 이 대통령은 “나는 민주당이 아니라 전 국민의 대표”라고 한다. 논란이 많아도 국힘 출신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를 지명했다. 이석연 위원장도 이명박 정부 법제처장을 지낸 사람이다.

반면 국힘은 선거를 앞두고 중도를 거부하는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장 대표는 쇄신과 변화보다 ‘당성’이 중요하다고 한다. 중도를 놓고 민주당과 경쟁하는 게 아니라 보수 주도권을 놓고 ‘아스팔트 우파’와 경쟁한다는 말이 나온다. 이런 와중에 장 대표가 단식을 시작했다. 심정이 복잡하겠지만, 중도의 실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