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류'의 대명사 오타니 쇼헤이. /AP 연합뉴스

2012년 말, 열여덟 살 오타니 쇼헤이가 미국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대신 일본 프로야구 니혼햄 파이터스 입단을 결정했다. 프로에서도 고교 때처럼 투수와 타자로 모두 출전하는 ‘투타 겸업’을 보장하겠다는 파이터스의 제안이 오타니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다음 날 일본 신문들이 ‘오타니에게 이도류를 명하다’ 같은 제목으로 그의 프로 진출을 대서특필했다. 사무라이를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 만화에서나 나오던 ‘이도류’란 단어가 야구라는 스포츠를 통해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 순간이었다.

이도류(二刀流)는 ‘두 자루 칼을 쓰는 검술 유파’라는 뜻이다. 양손에 크기가 다른 칼을 하나씩 들고 싸우는 방식이다. 일본 막부 시대의 전설적인 검술가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가 긴 칼과 짧은 칼을 같이 쓴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주인공인 각종 대중문화 매체에 빠지지 않고 이도류가 나오지만, 일상에서 흔하게 쓰는 말은 아니었다. 2016년 오타니가 리그 MVP에 일본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하자 이도류란 말이 바다를 건너 한국에도 본격적으로 상륙했다.

오타니 같은 선수를 미국에선 ‘투웨이(two way) 플레이어’라고 부른다. 오타니가 2018년 LA 에인절스 유니폼을 입고 데뷔했을 때만 해도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은 이도류에 대해 시큰둥했다. 뉴욕타임스는 “일본에선 특별한 선수였겠지만, 오타니는 베이브 루스가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오타니는 보란 듯이 현대 야구의 상식을 파괴하며 수퍼스타가 됐고, 이도류에 대한 전 세계의 인식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오타니가 스포츠계의 아이콘이 되자 다른 종목에서도 ‘제2의 오타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다음 달 개막하는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 올림픽에서도 주목할 만한 이도류 스타가 있다. 미국의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조던 스톨츠는 단거리(500·1000m), 중거리(1500m), 장거리(매스스타트) 레이스에서 모두 금메달 후보로 꼽힌다. 실제로 지난달 노르웨이에서 열린 ISU(국제빙상경기연맹) 월드컵에서 5관왕에 올라 세계를 놀라게 했다. 육상의 우사인 볼트(자메이카)가 주종목인 100m와 200m 외에도 중장거리인 800m와 3000m까지 우승한 셈이다.

미국의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조던 스톨츠./AFP 연합뉴스

이미 올림픽 금메달 3개를 딴 빙상 스타 쉬자너 스휠팅(네덜란드)은 밀라노에서 쇼트트랙 여자 1500m와 스피드스케이팅 1000m에 출전하는 파격적인 도전에 나선다. 한 바퀴가 111.12m인 쇼트트랙과 400m 트랙에서 펼쳐지는 스피드스케이팅은 얼음 위를 달린다는 것만 같을 뿐 완전히 다른 운동이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최민정과 김길리, 스피드스케이팅에선 김민선과 이나현이 ‘빙상 이도류’ 스휠팅과 메달을 다퉈야 한다.

비주류 검술 용어였던 이도류는 오타니의 인기 덕분에 스포츠에 한정되지 않는 일상의 찬사가 됐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뛰어난 성과를 내는, 다재다능(多才多能)한 멀티 플레이어의 상징으로 자리를 잡았다. 가령 건설사가 IT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면 ‘이도류 기업’이고, 인문학적 소양과 이과적 재능을 모두 갖춘 학생은 ‘이도류 인재’로 통한다. 본업에 충실하면서 부업까지 뛰며 열심히 삶을 꾸리는 이웃에게 이도류 수식어를 붙여도 어색하지 않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두 자루 칼로 생전 목숨을 건 60여 차례 대결에서 한 번도 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병법서인 ‘오륜서’에서 칼 쓰는 기술보다 승리를 위한 마음가짐이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쁜 마음을 경계하고, 쓸데없는 행동을 하지 않고, 넓은 시야로 사물의 진실을 분간할 수 있으면 혼자서도 수십 명을 이긴다고 했다. 크고 작은 승부의 연속인 일상에서 자신만의 이도류를 단련하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