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주제가 ‘골든(GOLDEN)’을 작사·작곡하고 노래까지 부른 이재(EJAE)의 골든글로브 수상 소감은 남달랐다. 트로피를 손에 든 그녀는 자신을 ‘거절(rejection) 당했던 사람’이라고 했다. 화려한 무대를 꿈꾸며 10년을 연습생으로 버텼지만 끝내 데뷔하지 못했다. 가수의 꿈을 접던 날, 훗날 ‘케데헌’의 주인공 루미가 되어 ‘골든’을 부르고 골든글로브 트로피까지 거머쥐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빛나는 성취를 이룬 이들이 삶을 들여다보면 이재처럼 좌절과 낙담을 겪은 사례가 적지 않다. 지난주 타계한 국민 배우 안성기의 젊은 날도 그랬다. 안성기의 출세작은 이장호 감독의 1980년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이다. 이 작품으로 대종상을 받으며 스타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그 과정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아역 배우 출신이었지만 성인 안성기는 회사원으로 살 생각이었다. 대학에서 베트남어를 전공했고 취직이 잘된다는 ROTC 장교로 병역을 마쳤다. 하필이면 졸업할 때쯤 베트남전이 끝났고 당시만 해도 적성국 언어였던 베트남어로는 취직문이 열리지 않았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나” 싶어서 배우의 문을 다시 두드렸다. 그런데 주어지는 작품이 국가 시책이나 병영 미담을 홍보하는 이른바 ‘우수(優秀) 영화’뿐이었다. 성인 배우로 출연한 첫 우수 영화는 극장에 걸리지도 못했다. 안성기는 자신의 20대를 “고독과 무력감에 시달렸던 시기”라고 했다.
그러나 이재와 안성기는 경력의 바닥까지 추락해도 그 바닥이 인생의 끝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한 이들이다. 이재는 “거절을 당한 것은 방향 전환(redirection)의 기회였다”고 했다. K팝 아이돌의 꿈은 무산됐지만 대신 작사·작곡가로 새 경력을 쌓았다. 안성기도 한때 시나리오 작가로 방향을 틀었다. 작품 네 편을 써서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충무로 다방에 앉아 있던 이장호·배창호 두 감독을 만나 읽어보라고 꺼내 들었다. 받아서 훑어보던 이장호 감독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시나리오는 나중에 쓰고 내 영화에 출연하지.” 그렇게 해서 찍은 작품이 ‘바람 불어 좋은 날’이었다.
이재와 안성기, 두 사람이 지나온 궤적은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는 자명한 진리도 새삼 곱씹게 한다. 이재는 어느 인터뷰에서 “걸그룹 아이돌이 되지 못했을 때는 다시 노래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런데 작사·작곡 능력을 인정받으며 ‘케데헌’ 팀에 합류했고 “루미가 되어 골든을 부르라”는 제안까지 받았다. 10대 소녀 시절 그토록 갈망한 K팝 가수의 꿈을 30대 중반에 마침내 이뤘다. 연습생 때 피나게 갈고닦은 경험이 이재에게 선사한 마술같은 선물이었다.
안성기도 열정을 다 바쳐 시나리오를 썼고 그 경험은 헛되지 않았다. 그는 훗날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화 전반을 통틀어 보는 시각이 생겼고, 감독들도 함께 작품을 논할 수 있는 배우로 나를 대해줬다”고 했다.
노래를 포기하고 악보를 쓰기 시작했을 때의 이재에게도, 연기의 꿈을 잠시 접고 시나리오를 쓰던 시절의 안성기에게도 ‘내일’이라는 단어는 불안의 동의어였을 것이다. 성년이 되어 세상에 나온 젊은이들이 가혹하게 좁아진 취업문 앞에서 좌절한다. 그래도 안성기 아저씨, 이재 누나(언니)처럼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처럼 새롭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열정을 다해 미래를 준비했으면 한다. ‘골든’은 노래로 쓴 이재의 자서전이다. 그 가사처럼 ‘더는 움츠러들지 않고/ 마치 태어날 때부터 그랬던 것처럼/ 환하게 빛나는 존재’가 되어주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