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재명 대통령을 만들어 준 헌법 조항을 하나만 꼽는다면 제27조 4항이라고 생각한다. ‘형사 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조항이다. 이 대통령은 대법원에서 선거법 유죄 취지 판결을 받았지만 파기환송심이 끝나지 않은 탓에 대선에 출마할 수 있었다. 무죄 추정 원칙의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만약 벌금 100만원 이상 판결이 확정됐다면 선거 출마는 당연히 불가능하고, 민주당은 2022년 대선에서 받은 보조금 434억원을 국고에 반납해야 했다. 이 조항 하나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은 지옥에서 천당으로 올라왔다. 민주당은 지금도 이 대통령이 받는 5개 재판 12개 혐의에 이 원칙을 철저히 관철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무죄라는 가정하에 국정을 통치한다.
무죄 추정 원칙이라는 뿌리에서 뻗어 나간 가지가 불구속 수사 원칙이다. 유죄가 확정될 때까지는 죄인이 아니므로 형벌에 해당하는 인신 구속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당대표 시절 체포동의안이 통과돼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가 기사회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영장 전담 판사는 “위증 교사 혐의는 소명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죄가 있어 보인다면서도 “불구속 수사 원칙을 배제할 정도로 구속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만큼 무죄 추정 원칙은 강력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그 덕을 봤다. 지귀연 판사는 무죄 추정 원칙에서 나온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의 이익으로’ 원칙에 따라 구속 기간을 계산했다. 덕분에 윤 전 대통령은 일시 석방됐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뒤로는 ‘유죄 추정’이 원칙이 된 것 같다. 윤 전 대통령은 1심 재판 중인데 내란범 확정 취급을 받는다. 내란 극복이 정부의 국정 과제가 됐다. 기소조차 되지 않은 추경호 의원도 이미 내란 공범이다. 국민의힘은 ‘내란당’이 됐고 해산 위협을 받는다.
야당뿐 아니라 공무원, 군인도 일단 유죄로 본다. 이른바 ‘헌법 존중 TF’는 48개 정부 기관 75만여 명의 공무원을 잠재적 내란 협조·종사자로 간주해 휴대전화를 열어보겠다고 한다. 전 정부에서 승진하거나 주요 보직을 맡은 간부들, 전 대통령과 같은 고교를 나온 사람은 거의 유죄 확정이다. 4성 장군과 육군 중장 전원이 교체됐고, 이른바 ‘계엄 버스’에 30분 탑승했다는 이유로 대령으로 강등된 장군도 있다. 이 중 누구도 재판에서 유죄가 판명되지 않았지만 민주당 법정에선 이미 확정 판결을 받았다. 법관도 유죄로 추정한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대선 개입 유죄, 지귀연 판사는 탄핵 방해 유죄다. 지금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제대로 누리는 것은 이 대통령과 검찰이 항소를 포기해준 대장동 일당뿐인 것 같다.
민주당이 만든 특검은 ‘구속 수사 원칙’을 적용한다. 한 사람에게 여러 번 영장을 청구한 적도 있다. 3개 특검이 청구한 영장이 50건에 가까운데 절반이 기각됐다. 일반 형사 사건 영장 기각률이 20%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두 배가 넘는다. ‘혐의 소명 부족’ ‘다툼의 여지가 있다’ 등의 사유가 반복됐다. 그만큼 영장이 남발된 것이다.
12·3 계엄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법적으로 책임질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들도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받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 여야를 떠나 모든 국민이 갖는 기본권이자,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보편적 인권이다. 이 정부 들어 이런 기본적 권리가 무시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민주당이 이러는 이유는 내년 지방선거까지 ‘내란 정국’을 유지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에게 기사회생의 기회를 준 헌법 조항은 다른 국민에게도 똑같이 적용돼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