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젊은 층이 즐겨 입는 편안한 스타일의 옷)와 한정판 운동화를 착용한다’ ‘IT 기기 흐름을 빠르게 따라가며 적극 소비한다’ ‘최신 유행어를 잘 안다’….
요즘 인터넷에 돌고 있는 ‘영포티 자가 진단 리스트’의 일부다. 영포티는 ‘젊은(young) 40대(forty)’라는 뜻이다. 자가 진단 결과 높은 점수가 나온 40대는 ‘내가 젊게 살아가는 중년이구나’라며 좋아해야 할까. 아니다. 오히려 반대일 수 있다. 영포티라는 말은 10년 전쯤 처음 등장했다. 기존 중년과 달리 트렌드에 민감하고 젊은 취향을 즐기는 40대를 긍정적으로 일컫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제 ‘젊은 척하는 꼰대’라는 의미로 쓰인다. 사이버 공간에는 영포티를 조롱하는 콘텐츠가 넘쳐난다. 자가 진단 리스트도 그중 하나다. ‘영포티’가 많이 입는 브랜드를 배 나온 중년 남성과 합성한 AI(인공지능) 이미지도 돌아다니고 있다.
영포티에 대한 조롱은 MZ 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MZ 세대가 느끼는 좌절과 상대적 박탈감의 반영”이라고 분석한다. MZ 세대는 고용 불안과 집값 급등, 저성장 속에서 기회의 문이 닫힌 시대를 살고 있다. 그들 눈에 영포티는 상대적으로 운이 좋았던 세대다. 사회에 진출하던 시절 지금보다 일자리 구하기가 쉬웠고, 부동산 가격이 지금처럼 치솟기 전이었으니 내 집 마련의 기회도 있었다. MZ 세대에게 영포티는 오늘날 누리기 힘든 기회를 활용해 사회적·경제적 기반을 다진 기득권 세대다. 그런 영포티가 젊은 취향을 좇는 모습이 자기 과시처럼 비치면서 MZ 세대의 반감을 불러일으켰다는 분석이다.
상당수 4050은 적극적인 커리어 개척과 철저한 자기 관리로 긍정적 이미지를 쌓고 있다. 영포티들도 할 말이 있다. 이들은 IMF 외환 위기와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었다. 그 과정에서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졌다. 끝없는 자기 계발과 갱신이 생존 조건이 됐다.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 ‘낡은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현실 속에 산다. MZ 세대를 향해 “나이가 죄냐”는 항변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겉으로만 젊은 감각을 내세울 뿐 실제론 ‘꼰대’의 면모를 보이는 영포티가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주목할 점은 ‘영포티 논란’이 세대 갈등을 넘어 사회 전반의 긴장과 불안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MZ 세대가 영포티라고 비꼬는 것은 단순한 세대 공격이 아니라, 자신들이 겪는 현실적 제약과 기회 부족에 대한 불만 표출의 성격이 크다. 이들의 불만은 더 고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3분기까지 청년 실업률이 4개 분기 연속으로 나빠졌다. 올해 연간 청년 실업률은 코로나 위기 이후 처음으로 상승할 전망이다. 집값 급등에 부동산 규제로 청년들의 ‘주거 사다리’가 사실상 끊겼다. 한편으로 중년층은 AI가 몰고 오는 격변 속에서 도태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생존경쟁의 압박 속에 청년층의 현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세대 간에 서로 손가락질하는 모습은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신호다. 과거에도 세대 갈등이 있었지만 남은 것은 사회적 피로와 분열뿐이었다. 갈등 완화를 위해 세대 간 이해와 공감이 필수적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각 세대가 직면한 구조적·현실적 어려움을 줄여야 하고 실질적인 지원이 마련돼야 한다. 청년층에게는 안정된 일자리와 주거가, 중년층에게는 지속 가능한 삶의 기반이 필요하다.
정치권 역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세대를 편 가르기 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모든 세대가 손을 맞잡아도 버거운 시기다. 사회 전체의 연대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