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우영 의원의 질의 중 국민의힘 박정훈 의원의 문자메시지 공개와 관련해 여야 의원들이 설전을 벌이고 있다. /남강호 기자

올해 국정감사의 수식어는 ‘저질’이다. 최근 수년간 국감 앞에는 ‘최악’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이젠 그 표현조차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내용이 없는 건 둘째치고, 품격 없는 언어가 난무했다. 국회의원 간 고성과 반말이 예삿일이 되는가 하면 ‘찌질한 ×’ ‘한심한 ××’ 같은 욕도 매일같이 나왔다. 화를 참지 못해 “옥상으로 따라오라”고 하자 “너는 내가 이긴다”고 의원들끼리 맞붙은 일도 있었다. 요즘 초등학생도 이런 싸움은 안 할 것이다.

그나마 지금과 비슷한 저질 국회를 찾는다면 18대(2008년) 정도가 거론될 수 있다. 많은 이가 잊었지만, 그때는 ‘동물 국회’였다. 여당이 회의장 문을 걸어 잠그자, 야당 의원들이 해머로 문을 부쉈다. 어떤 의원은 국회 사무총장 집무실 원탁에 뛰어오르는 ‘공중 부양’으로 이름을 날렸다. 여야 의원들이 주먹질을 해 피를 흘리기도 했고,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의원도 있었다. 18대와 지금 모두 극심한 여대야소(與大野小)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국감에서는 달랐다. 시민단체 ‘국정감사NGO모니터단’은 이명박 정부 1년 차인 2008년 첫 국감 점수로 ‘C-’를 줬다. 당시엔 낮은 점수였다. 주된 지적은 국감이 ‘재탕’으로 치러졌다는 점이었다. 거친 언사와 정쟁도 언급됐지만, 최종적으로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여야의 대립은 극심했지만, 국감은 생산적으로 치러진 면이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이 같은 평가는 올해 이재명 정부의 첫 국감에 비하면 상당히 준수하다. NGO모니터단은 중간 점수로 ‘F’를 줬다. 국감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주요 이유로는 개별 의원들의 일탈이 꼽힌다. 추미애 법사위원장, 최민희 과방위원장 등 몇몇 상임위원장의 발언 시간은 개별 의원 질의 평균보다 3배 이상 길었다. 무소속 최혁진 의원은 조희대 대법원장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빗댄 합성 사진을 회의장에 들고 나오더니, 다른 의원의 국감 질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몸을 틀어 뚫어지게 쳐다보는 기행도 벌였다. 국감을 자신들 선전장으로 사유화한 것이다. 정치 양극화와 유튜브 ‘쇼츠’ 붐은 이런 국감 저질화를 부추기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저질 국감이 개선될 거란 희망이 없단 것이다. 18대 국회에선 여야 모두 동물 국회가 문제라는 걸 알았고, 소장파 의원들의 만남도 잦았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2012년 국회 선진화법이다. 그러나 지금 여야, 특히 지도부는 서로 비난할 뿐 자신들은 문제가 없다고 하고 있다. 가끔 여야 의원들이 만남을 시도하지만, 발각되면 바로 취소한다. 만나더라도 몰래 만나고, 그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한다. 국감 직전인 지난 추석 여야 의원들은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같이 하자고 의기투합했는데, 강성 지지층이 반발하자 일부 의원이 불참했다. 게임조차 같이 못 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 국회의원들의 임기가 앞으로 2년 반이나 남았다.

여야 정치권은 이제라도 국감 정상화를 논의해야 한다. 회의장에서 욕을 못 하게 하는 법을 만들든, 국감을 개별 의원 ‘장사’에 이용하지 못하도록 법·제도를 개선하든, 뭐라도 해야 한다. 올해 기후노동위의 기상청 국감은 1시간 47분 진행됐는데, 피감기관 17곳 중 16곳은 질문을 못 받았다고 한다. 모든 상임위에서 별다른 이유 없이 기업인을 불렀는데, 대부분 회의장에 앉아만 있다 갔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처럼 기간을 정해두고 국감을 하는 나라도 드물다. 이미 국회는 수시로 사안이 있을 때마다 상임위를 열고 활동한다. 개선이 어렵다면 저질로 변질된 국감을 없애는 것도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