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자유의 영웅 7인 /IPI홈페이지

창립 75주년을 맞은 국제언론인협회(IPI)는 지난 24일 오스트리아 빈 총회에서 세계 ‘언론 자유의 영웅’ 7인을 발표했다. 진실을 향한 집념이 탄압과 폭력, 감옥과 죽음 앞에서 어떻게 빛났는지 보여주는 이름들이다.

우크라이나 기자 빅토리아 로쉬나(27)는 2023년 러시아가 점령한 자포리자 지역에 잠입해 현지인들의 참혹한 삶을 세상에 알리던 중 러시아군에 붙잡혔다. 그녀는 1년 뒤 러시아 감옥에서 주검이 돼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45kg이던 몸은 15kg이 빠진 앙상한 몰골로 변해 있었다.

팔레스타인 가자 전쟁을 취재하던 마리아 아부 다가(33) AP통신 사진기자는 지난 8월 이스라엘의 폭격에 목숨을 잃었다. 전쟁의 참상을 세계에 타전하던 그녀는 가자 병원으로 밀려드는 부상자들을 취재하던 중, ‘병원 지하에 하마스 지도부가 숨어 있다’며 이스라엘군이 퍼부은 폭격에 쓰러졌다.

홍콩의 지미 라이(77)는 ‘지오다노’를 일군 억만 장자 기업인이다. 1960년 광저우에서 홍콩으로 넘어가 의류 공장 일용직으로 시작해 자수성가한 그는 1989년 천안문 사태 때 중국의 잔혹한 진압을 보며 언론 자유에 눈을 떴다. 언론 자유가 정보의 흐름을 보장하고, 그래야 기업이 자유로운 활동으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그는 ‘빈과일보’를 창간해 홍콩의 언론 자유를 위해 헌신했지만 외세와 협력했다는 허위 혐의로 체포돼 복역 중이다. 아들 세바스찬은 “아버지는 감옥에 있지만 언론 자유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조지아 기자 지아 아마글로벨리는 진보 언론사 ‘가제티 바투멜레비’의 사장이다. 올해 1월 반정부 시위 현장에서 경찰과 말다툼 중 경찰관을 폭행했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체포돼 2년형을 선고받았다. 부정부패를 파헤치던 그녀의 보도들은 권력의 눈엣가시였다. 구금한 이유는 뻔했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지난 6월 테스팔렘 왈디에스 ‘에티오피아 인사이더’ 사장을 허위 정보 유포 혐의로 체포했다. 법원의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지난 20여 년간 구속과 석방을 밥 먹듯 겪어 왔다. 그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제지만 언론 자유를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페루 기자 구스타보 고리티는 후지모리 전 대통령 측근들의 마약 거래 연루 기사를 특종 보도하며 탐사 보도의 진수를 보여줬다. 부정부패를 폭로할수록 정권의 탄압도 심해졌다. 페루 정부는 그를 부패 혐의로 조사 중이라고 발표한 뒤 취재원들과 대화한 기록까지 확보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고리티는 “가짜 뉴스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안타깝게도 훌륭한 저널리즘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 됐다”고 비판했다.

퓰리처상 수상 보도를 이끈 마틴 배런 전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장도 7인에 포함됐다. 보스턴글로브 편집국장 시절 가톨릭 교회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과 이를 은폐하려는 교회의 비행을 폭로한 그는 “전 세계 언론 자유 영웅들에게 무한한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언론 자유를 위해 투쟁한 기자는 이들만이 아니다. 올해에만 세계 언론인 80여 명이 취재 중 목숨을 잃었고, 360여 명은 구금돼 있다.

이런 가운데 IPI가 영국 세인트조지 대학과 함께 발표한 해외언론자유지원(IMFS) 지수에서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슬로베니아와 공동 29위였다.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과 방송법 개정 논의 등 국내 언론 자유 환경이 갈수록 위축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해외 언론 자유 지원은 언감생심이다. ‘언론 자유의 영웅’이 탄생할 수밖에 없는 열악한 언론 환경이 한국에 조성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진실의 등불을 밝히는 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