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도심에 내걸린 ‘이게 동맹인가?’라는 정당 현수막을 보면서 한 사람이 떠올랐다. 이석기씨다. 2030세대는 누군지 모를 사람이 더 많을 테지만 2013년 한국을 뒤흔든 통진당 ‘내란 선동’ 사태의 장본인이다. 공교롭게 현수막을 건 정당은 통진당의 후신인 진보당이다.

필자가 이씨를 처음 본 건 2003년 6월. 북한의 대남 지하당 ‘민혁당(민족민주혁명당)’ 사건으로 대전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이씨는 귀휴(歸休)를 얻어 투병 중인 서울의 팔순 모친 집을 찾았다. 당시 상당수 언론은 그를 ‘마지막 양심수’라 불렀다. 그는 귀휴 두 달 후 석방됐다. 노무현 정부의 첫 8·15 특별사면 덕이었다. 노모를 바라보는 눈이 선해 보였던 이씨는 그로부터 10년 만에 무시무시한 내란 선동의 주동자로 대중 앞에 다시 나타났다.

이씨가 내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을 때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검사가 이씨에게 믹스 커피를 권했더니 “나는 아메리카노만 마신다”고 하더란 얘기였다. 그 얼마 전 통진당에선 지도부가 회의 때 당직자에게 아메리카노를 배달시켜 마신다고 해 착취 논쟁이 일었다. 취향을 계급적 문제로 연결시키는 건 비약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NL계에서 “미제(美帝)의 똥물”이라 부르는 아메리카노를 반제·반미(反帝反美)의 선봉들이 즐겨 마시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들의 실체와 연원을 되짚어보게 됐다.

이씨가 가담한 민혁당의 리더는 ‘강철서신’의 김영환이었다. 그는 북한에 잠입해 김일성을 만났다. 하지만 그 뒤 북 체제에 환멸을 느껴 민혁당 해체를 조직원들에게 지시했다. 정작 경기동부연합을 이끄는 이씨는 오히려 민혁당 재건 운동을 하다가 적발됐다. 민혁당 서열 2위로 꼽힌 하영옥과 함께였다. 이석기·하영옥은 북한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전향한 김영환은 그를 추종하던 이석기·하영옥에게 사실상 적이 됐다. 반제·반미가 자생적으로 싹틀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여기엔 역사적 연원도 있다. 구한말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식인들은 소셜 다위니즘(사회적 진화론)에 매료됐다. 소셜 다위니즘은 국제 질서를 ‘우승열패(優勝劣敗)’로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일제는 ‘우승’, 한국은 ‘열패’가 된다. 좌절한 한국의 지식인 중 일부는 ‘백마 탄 초인(超人)’을 기다렸다. 김일성은 이 초인주의를 교묘하게 활용해 수령론을 만들었다. 반제·반미 같은 설탕을 입혀서다. 여기에 빠져든 사람들이 자생적 반제·반미의 한 뿌리라는 것이다.

이석기의 내란 선동 사건이 불거진 지 10여 년 만에 서울 도심에서 “양키 고홈”을 외치는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무기로 한국을 전례 없이 압박하면서다. 여당 중진 의원 입에서 “미국은 날강도”란 말이 나왔다. 미국에서 유학한 유명 좌파 인사는 “제국주의의 아가리”를 언급했고, 한 좌파 인플루언서는 “주한 미군 빼도 별로 상관없다”며 가세했다. ‘트럼프의 3년은 너무 길다’는 정당 백드롭도 등장했다. ‘트럼프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의 깃발을 들 기세다.

한국엔 반제·반미의 DNA를 뼛속 깊이 이어받은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이 20~30% 정도 될 것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이 DNA가 활성화하면 과학·지성도 속수무책이다. 2008년 한국을 휩쓴 ‘뇌송송 구멍탁’ 광풍을 보지 않았나. 관건은 대통령이다. 과거 주한 미군을 “점령군”이라 불렀던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추석에 “간과 쓸개를 다 내어주더라도…”란 각오로 국정에 임하고 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인내심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냉철한 지도자라면 바람이 불어올 때 그 방향으로 침을 뱉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