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제80차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지난 9월 22일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왼쪽은 환송나온 정청래 민주당 대표. /뉴스1

방글라데시에 가본 적이 있는데 시내 교통이 엉망이었다. 신호등을 보니 파란불과 빨간불, 노란불이 동시에 들어와 있었다. 운전자는 신호를 무시하고 제각각 핸들을 돌렸다. 서로 모순되는 신호가 동시에 들어오니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추석 직전 식료품 물가 급등을 지적하며 “조선 시대에도 매점매석한 사람을 잡아 사형하고 그랬다”고 했다. 기업 독과점 문제에 대해 ‘사형’이란 말까지 써가며 공정 거래를 강조한 것으로 해석됐다. 그런데 같은 날 정부는 ‘시장 지배 사업자가 가격을 부당하게 올리는 등 독과점 지위를 남용할 때 징역 3년까지 처할 수 있는 공정거래법의 형벌 조항을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민주당은 “과도한 형벌이 기업 혁신을 막는다”고 했다. 문제 본질은 유사한데 대통령은 ‘사형’이고 여당은 ‘형벌 폐지’라고 한다.

이 대통령은 “검사들이 기소해 무죄를 받고 나면 면책하려고 항소하고, 또 상고하면서 국민에게 고통을 준다”고 했다. 그러자 다음 날 민주당 의원이 ‘검찰이 1·2심에서 무죄가 난 사건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를 아예 못 하게 하겠다’는 내용의 법을 발의했다. 이 법이 통과될 경우 대법원의 재판 부담은 자연히 준다. 그런데 민주당은 대법원의 재판 과중 등을 내세우며 대법관 수를 14명에서 26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사법 개혁’이라고 밀어붙이고 있다. 대법원 재판을 줄이는 법과 대법관 숫자를 늘리는 법을 동시에 올려놓은 것이다. ‘일감이 줄어드니 근로자를 더 고용하는 게 맞는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이 대통령은 노골적인 입시 비리를 저지른 조국 전 장관 부부와 관련자를 모두 사면했다. 그런데 다음 날 국무회의에선 선생님의 입시 비리에 대한 징계 시효를 3년에서 10년으로 늘리는 법안을 공포했다. 우리 편 입시 비리는 괜찮고 선생님은 엄벌 대상인가.

최근 우리 군은 한미 훈련과 실기동 훈련을 줄줄이 연기·축소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은 “자주국방은 필연”이라고 한다.“외국 군대 없으면 자주국방이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하는 굴종적 사고”라는 글도 올렸다. 자주국방을 하려면 강한 군대가 기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실전처럼 훈련하지 않는 군대는 오합지졸이다. AI 첨단 무기일수록 맹훈련이 필수다. 제대로 훈련하지 않으면서 자주국방을 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부동산 정책도 서민·무주택자를 위한다면서 결과적으론 현금 부자만 집을 살 수 있게 됐다.

대선 후보 때도 “주 4일제 근무 사회로 가야 한다”와 “(주 52시간 예외 허용도)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말을 같이 했다. 노동시간을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국민은 헷갈린다. 이 대통령은 “사람이 왼쪽도 보고 오른쪽도 봤다고 해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아니다” “꼭 흑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좌파 정책이든 우파 정책이든 국리민복에 도움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대통령과 민주당은 ‘실용’이라고 한다.

그런데 좌우 정책을 고르게 쓰는 것과 모순되는 정책을 동시에 내놓는 것은 얘기가 다르다. 집권 세력의 법안·정책 추진은 야당 때처럼 단순한 ‘의사 표현’이 아니라 행동의 약속이자 신뢰의 담보이다. 모순과 상충이 이어지면 국민과 시장, 국제사회는 믿음을 거둔다. 영국은 브렉시트 당시 보수당 내각에서 ‘탈퇴’와 ‘잔류’ 신호가 동시에 나왔다. 결국 정권 교체와 국가 신용도 하락으로 이어졌다. 정부가 ‘방글라데시 신호등’ 같은 행태를 반복하면 국민과 시장의 신뢰를 잃는 것은 순식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