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HD 사령탑에서 경질된 신태용 감독./한국프로축구연맹

감독 교체는 비상사태다. 시즌 도중에 감독을 바꾸는 건 팀이 응급 환자라는 소리다. 이런 팀이 두 달 만에, 여전히 시즌 중에 또 감독을 교체한다면 어떨까. 중병(重病)인 환자의 회복 여부도 걱정스럽지만, 의사의 처방이 과연 적절했는지 의구심이 든다. 프로 축구 K리그를 대표하는 명문 구단 중 하나인 울산 HD 얘기다.

울산은 추석 연휴 때인 지난 9일 신태용 감독을 경질한다고 발표했다. 구단이 ‘짧은 동행’이라고 표현한 대로 재임 기간은 고작 65일이었다. 경질 이유는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이라고 했다. 울산은 신 감독이 지휘한 첫 경기에서 1대0으로 승리했지만, 이후 K리그 7경기(3무 4패)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현재 승점 37(9승 10무 13패)로 1부 리그 12팀 중 10위다. 두 달 사이 순위가 3계단 더 미끄러졌다. 내년 시즌 1부 리그에 남기 위해 2부 팀과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할 처지다. 2022년부터 작년까지 3년 연속 K리그 챔피언을 차지한 팀이라고 믿기 어려운 충격적인 추락이다.

선수 시절 뛰어난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신태용은 은퇴 후 성공적인 지도자 이력을 쌓았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선수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는 ‘형님 리더십’으로 팀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특기였다. K리그 성남 감독으로 우승컵을 들었고, 2016년 리우 올림픽, 2017년 U-20 월드컵,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대표팀을 이끌었다. 러시아 월드컵 당시 세계 최강이던 독일을 2대0으로 격파한 ‘카잔의 기적’이 하이라이트였다. 이후 5년 넘게 인도네시아 대표팀을 지도하며 성과를 냈다. 8월 초 김판곤 감독과 결별한 울산이 며칠 만에 ‘소방수’로 신태용을 낙점하자 대다수 팬은 납득할 만한 인사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적으로 울산의 신태용 감독 영입은 대실패로 끝났다. 신태용 정도 이름값을 가진 감독을 두 달 만에 갈아치우는 건 구단 입장에서도 모험이다. 성적 부진이라는 외상(外傷)보다 내부 구성원끼리 반목하는 ‘속병’이 말도 못 하게 심각한 것을 세상에 광고한 꼴만 됐다.

사실 감독 경질 발표 전부터 망조(亡兆)가 새어 나왔다. 하나는 구단 버스 짐칸에 덩그러니 실린 신 감독의 골프백 사진이 유출된 일이다. 당사자가 골프를 쳤느냐 마느냐를 따지기 전에 의도적으로 감독을 흠집 내는 시도가 팀 안에서 버젓이 일어난다는 게 문제였다. 또 하나는 이달 초 신 감독이 기자회견장에서 “시즌 후 선수들을 대폭 물갈이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리더답지 못한 경솔한 발언에 가뜩이나 엉망인 선수단 분위기는 최악이 됐다.

울산은 신 감독을 내보내고, 구단 책임자인 대표이사까지 물러나는 것으로 수습하려 했다. 하지만 신 전 감독의 입을 통해 ‘막장 드라마’ 같은 내부 사정이 계속 까발려졌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일부 고참 선수가 감독을 무시하며 쫓아내려 했고, 심지어 구단 수뇌부가 이를 용인했다는 내용이다. 울산의 추락은 리더십을 잃은 감독, 본분을 잊은 선수들, 갈등 조정은커녕 선수에게 휘둘리기까지 한 무능한 프런트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위기에 빠진 조직은 새로운 리더십을 찾기 마련이다. 전임자에게 책임을 돌리고 새 리더를 앉히는 것이 가장 쉬운 처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부의 진짜 문제점을 외면한 채 개인의 책임만 따지는 인사(人事)는 조직을 더 심한 혼란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울산도 지도자와 선수 간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구단 운영 시스템을 점검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울산은 오늘 오후 2시 노상래 감독 대행 체제로 광주와 맞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