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추석 즈음 여야 초선 의원들이 식사 회동을 가질 것이란 보도가 나왔다. 모임 이름도 ‘정치를 위한 식사를 합니다’라는 뜻으로 ‘정식합니다’라고 지었다고 했다. 모처럼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다음 날 민주당 측이 “전혀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문을 내며 없던 일이 됐다. 당시 모임을 추진했던 국민의힘 김대식 의원은 “그쪽 지지자들 눈치가 좀 보이는 것 같더라”고 했다. 그는 이후에도 민주당 의원과 식사를 시도했는데, 중진은 만나줬지만 초선은 거의 없었다고 했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지금 우리당 초선은 물론, 일부 재선 의원도 야당과 사적으로 만나면 큰일 나는 줄 안다. 밥 먹는 건 고사하고 과거 흔했던 여야 공부 모임도 없어졌다. 이들이 3선, 4선 될 때쯤엔 교류가 완전히 끊길 수도 있다.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면 이게 정말 큰일 아니냐”고 했다. 상대방과 만나면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예전 정치권 표현으로 ‘사쿠라’, 요즘 민주당 말로 ‘수박’으로 찍히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찍히면 더 이상 공천을 받기 어렵고, 초선으로 정치 인생이 끝날 수도 있다. 그래서 여야 공통으로 선수가 낮을수록 지지층 눈치를 더 많이 본다고 했다.
계엄 이후 분위기가 한층 냉랭해졌다. 민주당은 국힘 의원 107명 중 48명에 대해 제명 촉구 결의안을 냈다. 절반 가까운 의원을 국회에서 ‘제거’하자는 것이다. 대부분이 윤석열 전 대통령 체포에 항의하며 한남동 관저 앞에 모였던 사람들이다. 민주당은 “체포영장 집행 방해는 대한민국 법치주의와 헌정 질서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중대한 반(反)헌정 범죄”라고 한다. 국민의힘도 민주당 의원 12명에 대해 제명 촉구 결의안을 냈다.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와 ‘정치검찰 조작 기소 대응 TF’ 소속 의원들이다. “헌법기관의 지위를 악용해 검찰의 정당한 수사와 사법부의 최종심 판결까지 부정하고 있다”는 이유다. 여야를 합치면 의원 60명을 국회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제명은 의원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중한 징계다. 그래서 절차가 헌법에 직접 규정돼 있다. 재적 의원 3분의 2가 찬성해야 한다. 대통령 탄핵과 같은 엄격한 조건이다. 우리 헌정사에서 제명된 의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이 일은 부마 사태로 이어졌고 결국 유신 정권의 몰락을 불렀다.
제명까지는 아니지만 품위 실추 등을 이유로 상대 당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낸 것도 36건에 이른다. 현재 국회의원이 298명인데 제명과 징계안을 합치면 96건이다. 역대 국회에 이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국민을 대신해 나라의 갈등을 해소하고 문제를 해결하라고 뽑아 놓은 사람들이 되레 갈등을 조장하고 없던 문제를 새로 만들고 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올 추석에는 여야 의원이 만나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 초선이 많이 끼면 좋겠다.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동료끼리 밥 한 끼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것도 이해 못 하는 지지자가 있다면 진정한 지지자가 아닐 것이다. 또 지지자 무서워 밥도 못 먹는다면 의원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대표도 야당과 식사하고 대화했다. 대통령이 그런 자리를 마련하면 더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