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7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참석자들과 중대재해 반복 발생 근절 대책 관련 토론을 하고 있다. /뉴시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한국은 ‘민주주의의 새 무기고’라는 별명을 얻었다. 폴란드·호주·핀란드·노르웨이 등 민주주의 국가들에 막대한 물량의 K9 자주포, K2 전차, 천궁 미사일 등을 수출한 덕분이다.

원래 ‘민주주의의 무기고’는 미국이었다. 2차 대전에서 연합국의 승리는 미국의 압도적인 제조업 생산력 덕분에 가능했다. 디트로이트의 크라이슬러 공장 한 곳에서 생산한 전차가 독일 전체 전차 생산량과 맞먹었다. 1944년 1년간 생산한 항공기는 일본이 전체 전쟁 기간 생산한 것보다 많았다. 전쟁 초기 항공모함이 7척뿐이었으나 전쟁 기간 141척이나 건조했다.

지금 미국의 제조업은 사양화됐다. 인터넷·IT 산업이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관련 제조는 대부분 외국에 맡긴다. 첨단 제조 공장을 건설할 변변한 기술 인력조차 없다는 게 조지아 공장 한국인 구금 사태로 드러났다. 한국이 ‘새 무기고’라는 별명을 얻은 것은 1940년대의 미국처럼 강력한 제조업 역량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철강·자동차·조선·기계·전자·반도체 등 제조업 거의 전 분야에서 고르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민주 진영에서 이런 국가의 예를 찾기 쉽지 않다.

그런데 최근 대통령과 정부, 국회가 내놓는 메시지와 조치들은 마치 한국 제조업을 결딴내려고 작정한 듯하다. 기업을 향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그 취지의 선함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강하고 모질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주가가 폭락하게(만들어야)”라고 언급하는데, 거의 해당 기업을 망하게 하겠다는 분노가 느껴진다. 국회는 기업들의 읍소에도 불구하고 끝내 노란봉투법을 통과시켰다. 하청 업체 노동자들도 원청 업체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수 있고, 신규 투자와 사업 재편 등 경영상 결정까지 쟁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다 정부는 주 4.5일제 도입 작업에 착수했고, 똑같은 산재 사망 사고라도 기업 규모가 크면 수십~수백 배의 과징금을 물 수도 있는 산재 대책도 발표했다.

이런 조치들이 불과 1~2개월 사이에 다 나왔다. 마치 기업을 상대로 ‘이지메’라도 하는 것 같다. 공교롭게 이 시기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장벽을 쌓고 외국 기업이 미국에 직접 공장을 짓도록 압박했다. 한국에서 기업을 밀어내는 ‘척력(斥力)’이 작용할 때, 미국은 강하게 끌어당기는 ‘인력(引力)’을 발휘하고 있다. 이참에 새 공장은 미국에 지으려 고민하는 기업이 없겠는가.

미국이 제조업 각 분야 공장을 미국 땅에 짓도록 압박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제조업 기반 없는 군사력과 국력이 얼마나 허망한지, 강력한 제조업 국가로 부상한 중국의 도전으로 새삼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US뉴스&월드리포트는 한국의 국력을 세계 6위로 평가했다. 글로벌 파이어파워는 한국 군사력을 세계 5위로 평가했다. 이런 평가의 기반도 우리의 강한 제조업 덕분일 것이다.

국제 질서는 신냉전이라 할 만큼 권위주의 국가들과 민주주의 진영 국가들 간의 대립이 심해지고 있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그 위험한 단층선에 위치해 있다. 제조업을 지원하고 더 강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은 단순히 경제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국력과 군사력 유지와 발전을 위한 당위의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