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작가들 소설을 읽다 보면 그들이 부모 세대를 어떻게 보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난봄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예소연의 단편 ‘그 개와 혁명’은 86세대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그렸다. 아버지는 운동권 출신이고 딸은 적은 연봉에 직장 그만두기를 반복하는 30세다. 아버지는 틈만 나면 노동의 가치를 얘기하지만 부엌엔 들어오지도 않는다. 자녀 눈에 비친 86세대는 위선적인 데다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모양이다.
지금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층(15~29세)은 86세대의 자녀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86세대는 집에서 자녀의 취업을 걱정하는지 몰라도 자신의 직장 생활과 자녀 취업의 상관관계는 잘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다. 여전히 자신들 기득권 강화에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현대차와 금융권 등 좋은 일자리일수록 노조가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것도 ‘임금 삭감 없는’이란 조건이 붙어 있다. 주 4.5일제 도입 요구도 마찬가지다. 정년을 늘리거나 주 4.5일제를 시행해 기업 부담이 늘면 기업은 신규 채용을 줄일 가능성이 크다. 두 제도는 현 정권의 대표 공약이기도 하다. 로봇·AI만이 아니라 이런 제도가 자녀 세대의 취업 여건을 더 나쁘게 할 가능성이 높다.
86세대가 만들어 놓은 기득권 틀에 갇혀 자녀 세대가 허덕이는 것은 취업 문제만이 아니다. 젊은 층과 얘기하다, 국민연금 고갈 문제를 정말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난 3월 보험료율 13%, 소득 대체율 43%로 올리는 ‘더 내고 더 받는’ 연금 개혁안을 처리했지만 기금 고갈 시점을 2064년으로 8년 늦춘 데 불과하다. 국민연금을 못 받을 수 있다고 보고 일찍부터 개인 투자로 노후 준비를 하는 MZ세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진보 정부, 보수 정부를 가리지 않고 주저 없이 늘리는 나랏빚도 결국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안기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가다 우리도 프랑스처럼 고령자 소득이 현역 세대 소득을 넘어서는 ‘소득 역전’까지 생기는 것 아닌지 걱정이 생긴다. 프랑스는 연금액은 늘고 현역 세대 급여는 그만큼 늘지 않아 현역 세대 평균 소득이 100이면 65세 이상 고령자의 평균 소득은 105 수준에 이르렀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충격적인 뉴스다. 최근 프랑스 시위 격화의 배경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소설에서 딸은 그래도 아버지의 암 투병을 옆에서 돕고, 결국엔 상주로 장례식까지 치른다. 마지막은 딸이 아버지의 반려견을 데려와 장례식장을 말 그대로 난장판으로 만드는 장면이다. 죽기 전 아버지가 장례식장에 반려견을 데려와 달라고 부탁하긴 했다. 작가에게 꼭 개판까지 만들어야겠느냐고 항의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러다 ‘꼰대’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단다.
최근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필리핀·네팔·동티모르 등 아시아 국가에서 대규모 시위가 잇따랐다. 기성세대 부패와 경제적 불평등에 분노한 젊은 세대가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결과다. 가난한 나라에서 생기는 일이라고 치부할 것만은 아닌 듯하다. 양극화와 일자리 문제는 우리에게도 핵심 이슈이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